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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6일 18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6일 18시 36분 KST

낙태죄 개정 목소리, 당사자인 여성 시각 존중해야 한다

온라인은 낙태죄 폐지 찬반으로 들끓고 있다.

huffpost

여성 4명 중 3명이 형법과 모자보건법상 ‘낙태죄’ 개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다. 낙태죄 폐지 여론에 힘을 싣는 결과다. 때마침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4월 11일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이 쏠렸다. 임신 초기부터 말기까지 모든 기간 낙태를 금지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낙태죄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단 얘기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낙태 건수 자체는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2017년 추정 건수 5만건으로, 2005년 조사의 7분의 1 수준이다. 피임 실천의 증가, 15~44세 여성의 지속적 감소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래도 성 경험 여성의 10.3%, 임신 경험 여성의 19.9%가 낙태를 경험했다. 전체 건수가 줄어도 임신 여성 5명 중 1명꼴로 낙태를 했다는 얘기다. 의료계는 실제 낙태 건수가 3배는 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법은 사문화돼서, 최근 5년간 실형은 1건에 그쳤다.

온라인은 낙태죄 폐지 찬반으로 들끓고 있다. 역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맞붙었다. 여성들은 부정적 어감의 ‘낙태’라는 말부터 내 몸에 대한 내 선택을 강조한 ‘임신중단’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종교계는 ‘태아도 생명’이란 반대 입장이 굳건하다. 물론 이때도 태아를 어느 단계부터 생명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종교계와 의학계의 입장이 엇갈린다.

세계적으로도 낙태죄 존치의 배경에는 출산장려책 등 인구정책을 통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국가(개도국)란 존재가 있었다. 여성들의 ‘성적 문란함’에 대한 징벌적 성격도 숨어 있다. 일부 남성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려면 성매매를 합법화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댓글을 다는 이유다. 그러나 성적 문란함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순 있어도 국가가 개입할 대상이 아니며, 반드시 남성 파트너가 있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 법은 낙태죄에 대해 여성과 시술 의사에게만 책임을 물으며, 장애나 강간 등 예외적으로 허용된 낙태의 경우 남성의 동의를 받게 돼 있다. 한마디로 남성은 낙태에 대해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상황이다.

일부의 턱없는 우려와 달리 어떤 여성도 낙태를 죄의식 없이 남발하지 않는다. 뱃속의 생명을 지운다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크다. ‘준 출산’이라고 할 정도로 몸도 타격을 받는다. 낙태가 불법이고 산부인과를 가는 일은 망설여져 정체 모를 약물로 건강을 상하는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OECD 회원국 중 미국· 프랑스·호주·체코·멕시코 등 25개국은 낙태를 허용하고, 영국·일본·핀란드 등 4개국은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한다. 이들 나라가 우리보다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 낙태를 허용했다고 해서 이들 나라의 출산율이 우리보다 낮은 것도 아니다.

사실 이번 조사에서 제일 눈길을 끈 대목은 낙태 경험을 한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이유였다. 대부분 질외사정법 등 불완전한 피임을 하거나(47.1%), 피임하지 않은 경우(40.2%)였다. 피임만 제대로 했더라면 90% 가까이 낙태를 피할 수 있었단 얘기다. 낙태는 대부분 원치 않는 임신에서 비롯된다. 낙태를 징벌로 다스리며 범죄자를 양산하기보다, 원치 않는 임신 자체를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다. 제대로 된 피임 교육, 피임 문제에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다. 그런데 (여자는) 임신을 원치 않았는데 불완전한 피임방법을 사용하거나 아예 피임을 안 했다? 그 책임이 남녀 중 어느 쪽에 더 많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성관계 중에도 작동하는 권력의 문제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