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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아이의 대화 몰래 녹음한 남성에게 내려진 판결

남편은 2가지를 주장했다.

ⓒnatrot via Getty Images

40대 남성 A씨가 이혼 소송 중인 아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찾아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현관 앞에서 아내와 27개월 된 아이의 대화를 녹음했다. 5개월간 모두 11차례다. 그러다 발각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듣는 것은 금지돼 있다. A씨는 무죄일까 유죄일까. 

A씨는 주장했다. 첫째, 자신이 녹음한 내용은 아직 의사 능력이 부족한 딸에게 아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신비밀보호법이 보호하는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다. 둘째, 아내가 딸을 학대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학대를 막을 목적으로 녹음했기 때문에 ‘녹음행위’에 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원은 그러나 A씨의 두 가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는 아내와 3살 아이가 주고받은 말은 충분히 ‘대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화’는 반드시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말에 이성적·논리적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듣는 사람이 말하는 이의 말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해 의사 표현을 하는 방식도 대화에 포함한다. 

아이가 비록 완전한 표현능력을 갖추진 못했어도 엄마에게 짧게나마 의사 표현을 하고 엄마의 묻는 말에 긍정이나 부정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녹음행위’에 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A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녹음내용에 학대 정황이 없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피고인과의 관계에서는 아내뿐 아니라 아이 역시 ‘타인’에 해당한다. 미성년자인 딸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녹음에 딸의 동의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피고인이 대화를 녹음한 장소는 그들의 주거로서 다양한 사생활이 전개되는 공간이고, 녹음 행위도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

법원은 A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가 아이가 학대당한다는 의심 때문인 점 등을 참작해 1심처럼 징역 6개월의 형 선고를 유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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