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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6일 12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6일 12시 26분 KST

‘불타는 청춘’…중년 싱글이 열광한 ‘따로 또 같이 인생’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준다.

SBS

<불타는 청춘>(SBS)은 중년의 싱글 출연자들의 여행기를 담은 관찰 예능이다. 특별한 설정도 없다. 출연자들이 곧 콘텐츠인 셈인데, 그마저도 고정 멤버 없이 회차에 따라 합류하거나 빠지는 식이다. 개중에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사람도 있고, 1980~90년대에 스타였으나 잊힌 사람들도 있다. 잘 아는 사이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이도 있다. 가끔 어색한 기류가 흐를 때도 있지만, 금세 동창모임처럼 편안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 5년째 장수하는 비결이 뭘까. 일단은 출연자들을 보며 반가움과 정겨움을 느낄 시청자들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동일세대 시청자들은 출연자들과 공유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같이 늙어가는 자기의 현재를 비춰본다. 이쯤에서 인구학적 분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출연자들 중 다수가 1965년생부터 1974년생을 이르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다. 당시 한해 약 100만 명이 태어났다. 지금 한해 출생자 수가 약 30만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이다. 이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386세대’ 끝자락으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문화적으로는 1990년대 대중문화 붐을 이끈 주역이다. 양현석, 박진영, 배용준, 이병헌, 유재석 등 대중문화 산업의 중심을 장악한 이들도 1970~1974년생들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에서 보듯이, 이 세대의 대중문화 소비력이 엄청나다.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있는데다, 문화적인 욕구나 정보력도 뒤처지지 않는다.

SBS

<불타는 청춘>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시청자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잘 기억나지 않는 출연자가 나와도 상관없다. 곧바로 검색을 통해, 그의 과거와 현재의 가십을 훑으며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실제로 정보통신 기술은 중년을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저하된 체력과 기억력을 보강해주어 경쟁력을 높였다. 1955년생부터 1964년생을 이르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를 통해 은퇴 시기를 몇년 미루었던 반면,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예 은퇴를 하지 않는 길을 모색 중이다.

<불타는 청춘>의 주목할 만한 국면들이 있었다. 서정희의 출연은 ‘새로 시작하는 중년’의 의미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절대 동안에 완벽한 살림꾼으로 이름을 날린 서정희가 2014년에 폭로한 젠더폭력의 실상은 끔찍했다. 미성년자 성폭행과 납치로 시작되어 강압과 복종으로 유지되어 온 결혼이건만, 잉꼬부부로 이미지화되었다는 사실은 결혼이 얼마나 젠더불평등을 은폐하는 제도인지를 말해준다. 그가 2017년에 <불타는 청춘>에 출연하여 자유로운 인간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중년 이후 진짜 인생이 남아 있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김국진과 강수지가 <불타는 청춘>을 통해 재혼한 것도 기념비적이다. 각자 이혼의 아픔과 인기의 부침을 경험한 두 사람이 조심스레 진심을 확인하는 과정은 여느 청춘로맨스 못지않게 달달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들이 훗날 부부가 되리라 예측한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인생은 길고, 중년은 젊은 시절의 실패를 만회하고 2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는 시기임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재혼으로 출연하지 않게 되자, 제작진들은 시청률 반등을 위해 또 다른 커플을 만들려는 속내를 은근히 내비쳤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은 의외의 지점에 꽂혔다. 최근 최민용의 합류와 김도균의 건강검진이 화제가 되었다. 최민용은 수렵면허, 자연인 생활, 수맥 찾기 등 독특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독자적인 관심분야와 취미활동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개인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된다.

김도균이 대장내시경을 받는 장면은 찡한 감동을 안겼다. 수면내시경을 받는 장면은 <나혼자 산다>(MBC)나 <미운 우리 새끼>(SBS)에서도 나왔었다. 김도균의 대장내시경이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우정의 연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후배가 선배에게 건강검진을 선물하고, 병원에 동행하여 곁을 지키고, 의사의 말에 함께 걱정하고 환호하는 모습은 중년 싱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

이제 싱글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돌싱’이란 말의 뜻처럼 연애와 결혼은 끝이 있으며, 해로한다 해도 수명차이로 언젠가는 싱글이 된다. 언제 어떻게 싱글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늙고 병들고 외로울 때 누가 나를 보살펴줄 것인가. 이런 난제 앞에서 흔히 로맨스와 결혼이 해법인 양 제시된다. 하지만 보살핌의 문제가 더 이상 가족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일례로 이제 노인들은 가정이 아닌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낸다. 따라서 로맨스와 결혼으로 보살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으며, 타인과의 교류와 연대를 늘리는 방향의 해법이 추구되어야 한다.

최근 <불타는 청춘>이 중년 싱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이와 같다. 혼자서도 재미있게 사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가족이 아니어도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선후배 친구 등과 보살핌의 연대를 강화하여,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로맨스보다 값진 교훈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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