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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수긍 말고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중요한 감정을 숨기면서 세상과 단절되지 않기를.

ⓒnadia_bormotova via Getty Images
ⓒhuffpost

심리상담센터 혜운에서 진행하는 집단상담은 개방형 집단이다. “개방형”이라 함은 집단상담이 진행되는 도중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형태를 말한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이 만나는데 그중 누구라도 원할 때 언제든지 집단상담을 그만 둘 수 있다.

그날도 한 집단원이 종결회기를 가졌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집단원이었는데 집단상담에 대한 회의감을 안고 몇 번의 번복 끝에 종결을 결정했다. 종결회기 동안에는 종결하는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만 진행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종결을 결정한 그 집단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종결회기 마지막 즈음이 되어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시간이 oo님의 장례식장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oo님의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요. 오늘 함께 한 시간 동안, 내내 참... 씁쓸했어요. 마음이 많이 무겁더라고요. oo님이 그동안 겁내느라 관계 속에 들어가지 못하다 보니 오랫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했구나, 저렇게 존재감 없이 그저 스쳐지나는 사람으로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어요. 나는 oo님이 죽을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내 장례식장에 누가 어떤 생각으로 오기를 바라는지 생각하면서 oo님 삶의 색깔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좁은 시야로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것만 보며 살아가는 거 말고, oo님 삶에는 뭐가 중요하고 뭐가 의미 있는지 삶의 방향성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다만, 그게 돈이 아니라 사람이기를 더욱 바라고요... 부디 오늘 이 장면을 꼭 기억하길 바랄게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가까이하기에 겁내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누군가 내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다가오면 배시시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관심받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새어 나오는 속마음을 완전히 숨기지도 못한다. 대놓고 표현하지 못한 그 미끼를 덥석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횡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 한다. 돌아오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금세 관계에 대한 노력을, 상대에게 들이는 관심을 줄이게 된다. 관계는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절대로 혼자 애쓴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항상 쌍방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마다 상대는 수긍만 한다면 서글픔이 생기게 된다. 나 혼자 관계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애정 받는다는 확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상대의 표현에 “나도” 그렇다고 수동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비겁하게 숨지 말고, 어영부영 우유부단하게 쟤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겁나고 비겁한 이기적인 마음이 든다면 “죽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내일 죽는다면, 네가 내일 죽는다면 지금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별게 아니게 된다.

나중에 표현해야지. 나중에 챙겨줘야지. 나중에... 나중에... 우선은 돈 벌고 나서, 우선은 공부 좀 하고 나서, 우선은 용기부터 낸 후에 표현해야지. 그렇게 미루는 동안 상대는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다. 순간의 비겁함으로 내 앞에 현존하는 그 상대를 외면한다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금을 놓치게 된다.

죽음의 관점으로 생각하니 별거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관심 없는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도 쪽팔리지 않고, 갈등 상황에서 자존심 굽히는 것도 분하지 않고, 이해 안 되고 화나는 상대 행동도 큰일이 아니게 된다. 그와 내가 지금 아니면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죽음의 순간이 느껴질 때 우리는 지금까지 이뤘던 성공들을 추억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하지 못했던 말, 하지 못했던 행동들 때문에 후회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조금 더 다가가보자. 또다시 관계에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조금 더 열어보자. 대신, 가까이하기에 어떤 게 두려운지 표현을 하면서 다가가자. 당신의 마음을 상대도 알 수 있게끔. 그래서 당신의 마음을 상대도 돌봐줄 수 있게끔 말이다. 이는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애착 이론의 대가 존 볼비(John bowlby)는 이런 말을 했다. “남들(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즉, 내 마음이 어떠한지 상대에게 말하지 못하면 나 또한 내 마음을 달래주고 보살펴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다면 관계 또한 유지될 수 없다. 무조건 용기 내어 다가가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중요하니 무조건 표현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중요하니, 상대가 내 마음을 돌봐줄 수 있게 상대에게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도 존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해 보자는 말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감정을 숨기면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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