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출산 후의 불안 때문에 아기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

ⓒd3sign via Getty Images

내가 아들을 낳은 2018년 5월 18일, 나는 온갖 감정에 압도당했다. 나와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름다웠다. 이거야, 사람들이 다들 내게 말했던 감정이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기간은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임신오조(姙娠惡阻) 진단을 받았다. 심각한 메스꺼움과 구토를 경험했다. 그래서 아기를 낳자 안도감이 들었다.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회복실로 옮겨지고 나니 병원 직원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왔다. 내가 슬픈가? 무가치한 기분이 드는가? 내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인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그러나 기쁨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모든 감정을 압도하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공포가 나를 내리눌렀다. 작고 무력한 아기가 있었다. 이 아이의 생명은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유아 돌연사 증후군, 질병, 미숙 면역계 등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메웠다.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는 늘 긍정적이고 밝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계획적이고 가끔 작은 일로 걱정하긴 했지만, 그 순간 이전에는 불안으로 괴로움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리 잡아둔 제왕절개술 시간에 맞춰 새벽 5시에 병원에 들어갔다. 그 날 밤 늦게까지도 나는 깨어있었다. 간호사는 내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몇 번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감히 눈을 감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간호사가 들어와 왜 잠들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너져 내렸다. 흐느껴 가며, 내가 잠들면 내 아기가 죽을 텐데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퇴원 후에도 나는 밤을 샜다. 아기를 살려둘 수 있도록 숨쉬는 것을 계속 지켜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심박과 호흡을 체크하기 위해 전자 모니터도 (내가 우겨서) 샀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한밤중에 일어나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출혈이 많아 몸도 약해졌다. 나는 거의 밤마다 좌절, 외로움, 무력함, 절망감을 느끼며 몇 시간씩 울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집에서 많이 도와줄 수 있었지만 나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나만큼 내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모두 오전에는 깨어서 아기를 지켜봐 주어야 했다. 그때 내가 잠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면 아기를 맡았고, 나는 몇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아기가 죽는 꿈을 꾸다 패닉에 빠져 일어나, 다시는 잠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낮에는 방에서 파워 펌핑과 수유를 했고, 아기가 이상한 소리를 낼 때마다 오열했다. 노력했지만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절망적이었다.

아기는 젖을 잘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크고 튼튼했고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협조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을 하기를 거부했다. 모유 수유 지지자들은 분유는 최고가 아니며 차선, 차차선도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다. 모유 지지 단체들은 모든 어머니들은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으며, 그러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내가 아기에게 해를 주고 있는 거라고 외쳐댔다.

모유 기부를 받아보려 했지만 내 아기는 건강해서 우선 순위에 오를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상한 분유를 먹고 죽은 미숙아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내 아기가 그렇게 될 것 같아 겁에 질렸다. 하지만 내 아기는 미숙아가 아니었다. 거의 41주만에 태어났다. 내가 왜 그토록 걱정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설명하지 못했다. 아기가 젖병을 빨 때 나는 배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곤 했다. 꼴깍꼴깍 삼키는 소리 하나하나가 내 배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모유 수유 컨설턴트, 파워 펌핑, 체중 측정, 심지어 모유생성유도기(supplemental nursing system)까지 시도해 보았다. 효과는 없었다.

내 자신이 막 세상에 내놓은 죄없는 아기에게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나는 울어댔다. 울 이유가 없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 나는 신생아가 죽을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알고 보니 정말 끔찍한 엄마였다고 생각했다. 기쁨, 아기와의 연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임신 기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했다. 자연분만을 하지 못했다는 것, 내 몸이 내 아기에게 젖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내가 결코 엄마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곧 모성본능이 발동하고, 직감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내 본능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외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로 인해 내 결혼 생활이 박살날 것이고, 나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내가 모두의 삶을 망쳤다고 느꼈다. 출산 휴가가 끝날 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아기를 즐기지 못하고 다시 출근해야 하겠구나 싶었다. 내 아기가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내가 지켜보지 못하는 가운데 집에서 죽을 게 분명했다.

막 아기를 낳은 여성들이 너무나 기쁘다며 올린 포스트들을 보았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나는 그들과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지, 왜 그들은 나처럼 걱정하는 것 같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기를 어르며 정말 사랑한다고 계속 말했던 걸 기억한다. 남편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음과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이는 고통스럽고 참담한 감정이 내가 느꼈던 전부였다. 남편이 우리 아기가 곧 죽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내겐 좌절감을 주었다.

남편은 내가 걱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니는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6주 후 검사를 받던 중 의사가 어머니가 되고 나서 가장 놀라운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더 나은 답을 할 수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조용히 “압도적인 불안감.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의사는 미소지으며 그건 정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울며 의사에게 도와달라고 빌고 싶었다. 의사에게 나는 엄마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아기가 죽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미소지으며 어쩌면 원래 이런 건가보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가슴이 죄어들고 호흡이 짧아지는 이런 고통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사람들은 나중엔 갓난아기 시절이 그리워질 거라고 장담했다. 반면 나는 내내 아기가 얼른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손대면 부서질 것 같은 신생아 상태에서 얼른 벗어나길 빌었다! 어느 정도 보호해 줄 첫 백신을 맞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날이 되자 나는 옳은 결정이 맞을까 싶어 울음을 터뜨렸다. 소셜 미디어에서 보았던 백신에 대한 경고들이 몰려들었다. 백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읽어보았나? 내 아기에게 독을 주사하는 거라면 어쩌지? 나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는지 호흡을 듣고 판단해 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하려고 아기가 자는 동안 전화기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가 겪었던 힘든 임신 기간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라, 찾아온 내 어머니가 기침을 한 번 했다고 쏘아붙일 정도였다. 나는 어머니가 되기로 했던 결정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예전에는 행복했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왜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이토록 심한 불안을 가져온 거지? 내가 아이를 낳게 하자는 게 누구 생각이었지? 훈련, 경험, 지식이 아무도 없는 나에게. 아기를 데리고 퇴원하게 해준 이유는 뭐야? 안전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 이 아기가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 손 안에서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랐나?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돌아보면 내가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비이성적인 불안이 많았지만 내겐 절실하게 느껴졌다. 내 아기는 이제 8개월이고 엄청나게 행복하다. 이젠 내 몸이 이렇게 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떻게 해서 나아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아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도움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세라피와 약물 치료까지 받아야 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이를 과잉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고 있다. 아직 가끔은 패닉에 빠지고 과잉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매일 나아지려 노력한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일어나서 내가 아기를 껴안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았다. 남편은 “당신 많이 나아졌지. 아이에 대한 기분도 달라졌고. 그렇지?”라고 말했다. 정말 안도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내 나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내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여성 #육아 #아기 #엄마 #불안 #양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