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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깎는 구조조정: 한국 조선업계에 미래는 있을까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 양승훈
  • 입력 2019.02.14 15:13
  • 수정 2019.02.14 15:39
ⓒhuffpost

 

 

 유튜브 채널 ‘크기로 보는 TOP’은 시간에 따른 각종 지표나 수치 변화를 그래프의 움직임으로 보여준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수치와 그에 따른 각 국가, 기업 등의 흥망성쇠는 매우 흥미롭다.

지난 8일, 이 채널에는 ‘그래프로 보는 TOP10 한국을 먹여 살린 10대 수출품 순위 1988~2018’이 올라왔다. 보다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80년대에만 해도 의류나 가구 제품이 수출품의 주요 순위를 차지했는데 2018년에는 반도체, 석유, 자동차, 평판 디스플레이 등 상당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상품들이 순위를 대체한다.

그리고 반도체가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만큼 2018년 반도체의 수출액은 2~5위 수출액 품목을 합친 것만큼 많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이 있다. 바로 조선업이다. 2007년부터 조선업 수출액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더니 2010년에는 한국 최고의 수출품목으로 자리 잡는다. 반도체와 자동차, 무선통신기기를 눌렀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 이후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하던 조선품목은 2017년부터는 TOP5 자리를 내줬다. 그래프가 보여주듯 조선업 수출액이 한창 떨어지던 2015년, 정부는 국내 조선 BIG3 중 하나인 대우조선에 4조 2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2017년에도 2조 9천원을 추가 투입했다. 그리고 2019년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에 최종 인수됐다. 대한민국 조선업을 이끌던 BIG3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래 글은 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내용이다. 이를 살펴보면 조선업이 ‘수출 효자’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좀비 기업’이 되어버린 조선사

한국은 196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경공업을 성장시켰고, 1970년대부터는 중공업을 집중적으로 성장시켜왔다. 전태일이 일하던 봉제 공장부터 울산의 대공장까지 많은 일터가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졌다. 2018년 현재, 반도체와 스마트폰, 자동차로 대표되는 한국의 제조업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산업의 흥망성쇠와 국가 경제를 종종 연결 지어 생각하곤 한다. 태극기가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가는 장면과 삼성전자가 매출과 영업이익 신기록을 세우며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등극하는 장면을 중첩해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뭇 다른 경제 위기 장면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극적으로 입장을 바꿔 ‘좀비 기업’을 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조선산업이 바로 그 청산해야 할 대상이었다.

 

ⓒAdie Bush via Getty Images

 

2010년대 중반. 매출 50조 원을 벌어주던 수출 대기업이자 10만 명을 직접고용하고 십수만 사내하청 노동자와 수십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던 제조업의 선두주자인 조선산업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전도되어 “기회는 위기”로 돌아왔다.

대형 조선소들이 찾은 ‘기회’는 바로 해양플랜트 수주였다. 유가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빅 3’는 낯선 고객들과 조우했다. 원유 시추, 운반, 정제를 담당하는 기능을 제외한 플랜트의 몸체인 헐hull 부분의 건조 계약을 따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박 건조와 해양플랜트 건조가 유사하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가 시대에는 해상에서 원유를 캐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오일 메이저(주요 석유회사)들의 사업 계획이 밑바탕에 깔렸다. ‘빅 3’는 드릴십, 고정식 플랫폼,리그선, 해양원유생산설비FPSO 등 다양한 품목의 제품들을 수주하기 시작했다. 애초 전체 제품군 중 10% 내외를 차지했던 해양 부문의 비중은 2013~2014년을 경유하며 70%까지 올라갔다. ‘최고의 조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양플랜트 시장을 선도하고 석권한다는 비전이 주요 언론 산업면 기사를 채웠다. ‘기회’의 꿈을 안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해양플랜트는 ‘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대우조선의 부실이 공공연히 드러난 직후, 산업과 경제에 대한 주요한 의사결정을 다루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는 전운이 감돌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드러난 부실 앞에서 정부는 곧바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잡지 못했다. 중소 조선산업계 전체가 워크아웃, 채권단 자율협약, 법정관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빅 3 중 하나인 대우조선까지 구조조정이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최종적으로 공적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B&M Noskowski via Getty Images

 

하지만 한 번의 공적자금 지원으로 대우조선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2016년 여름, 앙골라 국영 에너지 회사인 소난골Sonangol은 인도 예정이었던 드릴십에 대해 인도 유예를 요청했다. 대우조선은 납기일까지 공정을 마쳐 최종 인도를 성사하려 했지만, 공정 지연과 법적 리스크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손실을 쌓아야만 했다. 공정 지연으로 인해 대금 결제가 밀리자, 곧이어 채무 상환과 하청업체 대금 지급에 문제가 생겼다.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정권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행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의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산업자원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역시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신문, 방송, SNS 등 모든 채널에서 ‘대우조선 위기론’이 새어 나왔다. ‘좀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다시 한 번 대우조선은 구조조정 계획(자구안)을 제출하고 2차 희망퇴직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위기와 터져 나오는 부실 속에서 야드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식어갔다. ‘주니어’(사원~과장)들이 먼저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선배와 나가려는 후배의 대조적인 풍경. 흉흉한 공기를 쓸어버릴 바람은 불지 않았다.

 

전무후무한 조선업계 위기, 정말 끝났나?

한때 조선산업에 닥친 위기가 지나간 지도 2년이 흘렀다. 2015~2017년을 들쑤셨던 위기설이 잦아든 듯하다. 더 이상의 공적자금 지원도 없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산업도시 거제와 중공업 가족들은 숨을 죽이면서 위기를 수습하는 중이다.

 

ⓒparanyu pithayarungsarit via Getty Images

 

해양플랜트는 유가가 회복되지 않은 탓에 신규 수주가 없는 상태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안겨줄 LNG 선박 수주가 늘어났고, 2018년 조선 3사의 수주는 전성기의 60~70% 수준으로 회복됐다. 7년 만에 한국은 선박 수주 1위를 중국에게서 탈환했다. 주문주에게 인도되지 않고 조선소에 계류되어 대우조선의 속을 썩였던 앙골라 소난골 드릴십은 결국 주인을 찾아 떠났고, 잔금도 받았다. 거제의 양대 조선소는 2017~2018년에 대부분 흑자를 기록했다.

절박한 위기는 넘겼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산업도시 거제를 지탱하는 조선산업이 수주를 통해 일감을 얻었지만, 그 일감이 다시금 모두의 부유함을 담보해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악화된 시장에서 수주한 선박들은 예전처럼 10%에 달하는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게다가 한 기 한 기에 선박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을 투입하는 해양플랜트를 건조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숙련된 직영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이룩했던 왕년의 높은 생산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혁신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원하게 될 것이다. 회사 역시 더 이상 대량으로 정규 생산직을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 당시의 업체 폐업 조치와 임금 체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제 회사의 타이트한 관리를 잘 수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시장이 살아나자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조선산업의 기반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 11월 경남 지역의 중소 조선소를 살리기 위해 LNG 연료추진선 140척 발주, 7,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 1조 원 규모 부채의 만기 연장 등을 포함한 지원안을 발표했다.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화의 핵심 산업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수출과 고용을 창출해온 조선업을 쉽사리 놓을 수 없다는 게 국가의 입장일 것이다.

 

ⓒanucha sirivisansuwan via Getty Images

 

그러나 중소 조선소를 살리려는 이러한 정책이 과연 유효한지는 따져볼 구석이 많다. 높은 생산 효율을 갖고 있는 조선 3사도 견고한 수익률을 자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선수금 환급보증을 발급받는다고 중소 조선소가 선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들이 당면한 진짜 과제는 높지 않은 생산 효율과 어정쩡한 임금으로 낮은 선가의 중국과 동남아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적절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 대통령조차 고용 보장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사례가 떠오른다. 고용 문제의 불부터 끄겠다는 정책 당국의 조급함만 엿보인다. 신규 수주 선박들의 수익률이 저하되어 공적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해야 하는 순간을 맞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미 지나가버린 후일 것이다.

조선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GDP의 12% 이상을 담당하며 전체 국토의 주요 축을 구성하는 동남권 벨트의 모든 제조업이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다. 조선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한국 제조업을 혁신하고 진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현장에는 작은 개선점을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다.

 

*이 글은 필자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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