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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 죽어간 자매들을 기억하다

밴쿠버의 여성 추모 행진이 올해로 28주년을 맞는다.

  • 백영경
  • 입력 2019.02.14 15:11
  • 수정 2019.02.14 15:13
ⓒPacific Press via Getty Images
ⓒhuffpost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한국에 알려진 발렌타인데이는 더러 그런 의미로 지내는 지역도 없지는 않으나, 세계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날로 알려져 있다. 북미, 유럽 일부 나라, 그리고 아시아 많은 나라에서 꼭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카드나 하트 모양의 선물을 주고받으며 제법 떠들썩하게 이날을 보낸다. 요즘에야 발렌타인데이를 핑계 삼아야만 여성이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니 좀 덜하지만 한국에서도 한때는 그 열기가 꽤 대단했고, 여전히 초콜릿을 팔기 위한 상술로 굳세게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몇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알게 된 발렌타인데이행사는 달랐다.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여성 폭행·실종·살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그리고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추모의식과 거리행진이 발렌타인데이 행사가 될 수 있다니 근사했다. 그후로 발렌타인데이는 내게 낯간지러운 사랑고백의 날이 아니라 죽은 자매들을 기억하는 자매애의 날이 되었다.

올해로 28주년을 맞는 밴쿠버의 여성 추모 행진은 해마다 2월 14일에 열리는데, 수천명의 여성들이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지역에 모여 먼저 추모의식을 가지고 주변 지역을 행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지역에서 행진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곳에 피해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밴쿠버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대부분 들렀다 가는 개스타운(Gastown) 증기시계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지만, 관광지의 흥청거림과는 대조되는 대표적 빈곤지역이다.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라고 하면 대부분 마약과 성매매, 범죄를 먼저 떠올리며, 원주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2년 첫번째 행진은 사체가 훼손된 채 발견된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추모의식을 거행한 데서 시작됐다. 1970년대 이후 공식 보고된 것만도 이 지역에서 60여명의 여성들이 납치 혹은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캐나다 전역에서는 천명에서 최대 4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원주민 여성이었던 점, 그리고 신고를 해도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중 성매매 여성이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피해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렌타인데이 여성 추모 행진은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피해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밴쿠버에서 시작된 발렌타인데이 여성 추모 행진은 이후 에드먼턴·토론토·캘거리·오타와·몬트리올·빅토리아·위니펙 등 캐나다 주요도시는 물론, 덴버와 미니애폴리스 등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행진은 원주민 여성들이 조직하고 이끌지만 이들만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원주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의 피해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빈곤지역에서 취약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나 성소수자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면모는 이른바 ‘눈물의 고속도로’라 불리는 16번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여성 연쇄 살인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1969년부터 2011년까지 이 도로 근처에서 최소 18명의 여성이 희생되었지만 경찰의 수사는 미온적이었다. 여성들이 추모집회를 열며 시신 수색과 범인 체포를 촉구한 결과 범인이 잡혔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범죄가 벌어져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또 있음이 분명해졌다.

범죄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범인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201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 납치·살해 사건을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는 국가 방침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6년에 과거 범죄들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꾸려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주민 여성을 포함하여 취약한 지역에 사는 여성을 특정해서 노리는 범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피해 여성이 범죄 경력이 있거나 약물에 중독되어 있거나 성매매를 한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는 등 경찰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다.

30년 가까이 여성 추모 행진이 이어지면서 이 행진이 열리는 지역들의 여성 간 연대가 싹텄다. 특정 지역에 범죄가 집중되는 현상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초반 이래 부모로부터 원주민 어린이를 강제 격리하는 기숙학교정책이 시행됐고, 1960대 이후에는 원주민 어린이를 강제로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는 사회복지정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여성 어린이들은 학교나 위탁가정에서 자주 성폭력에 노출됐다. 이러한 식의 과거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자각이 생겨났고, 피해 여성 가운데 원주민이 많다는 사실에 지역적·역사적 문제가 개입돼 있음이 공유되었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와 식민역사 청산이라는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납치되고 살해되었지만 그에 대한 진실도 규명되지 않았고,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시신도 찾으려 하지 않으면서 피해여성을 모욕하고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만을 비난해온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지금 우리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여성들이 손수 만든 퀼트를 들고 추모 행진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얼마 전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를 배웅하던 노란 나비들의 행렬과 겹쳐 보인다. 생각해보니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여성주의적인 자매애를 기념하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일인 것 같다. 선생님이라고 부를지 할머니라고 부를지 설왕설래하던 분을 이제 마음속의 페미니스트 큰언니로 모셔도 좋을 것 같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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