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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영국이 브렉시트 협상을 '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라고 본다

메이 총리가 위험한 '브렉시트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추가 정황.

  • 허완
  • 입력 2019.02.14 16:31
  • 수정 2019.02.15 16:07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2월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2월7일.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브렉시트 재협상을 추진하겠다던 영국 정부가 2주가 넘도록 유럽연합(EU) 측에 어떠한 새로운 제안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라는 소식이다. 한 EU 관계자는 영국이 ”협상하는 척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13일(현지시각) 전했다.

시간 끌기. 벼랑 끝 전술. 인질극. 미치광이 전략. 치킨게임. 뭐라고 부르든,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를 놓고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추가 정황이다.

영국 하원은 지난달 말 재협상안을 통과시켰다. 압도적으로 부결됐던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에 담긴 ‘아일랜드 백스톱’ 조항을 ”대안적 방식들”로 대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후 메이 총리를 비롯한 영국 정부 협상단은 유럽연합(EU) 측과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다. 가장 최근의 대화는 이번주 월요일(11일)에 벨기에 브뤼셀의 영국 대사관저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협상이라고 부를 만한 대화는 전혀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과의 회담을 마친 테레사 메이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벨기에 브뤼셀, 2019년 2월7일.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 상임의장과의 회담을 마친 테레사 메이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벨기에 브뤼셀, 2019년 2월7일. ⓒBloomberg via Getty Images

 

EU 측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는 다음날 오전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담당 기 베르호프스타트와의 통화에서 전날의 회동이 ”기껏해야 의례적인 방문이었고, 새롭게 말해줄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영국 측)은 협상을 하는 척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협상을 할 의사가 있지만, 영국 측에서 협상 테이블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다.”

베르호프스타트는 영국 국무조정실장 데이비드 리딩턴에게 영국의 제안이 무엇이냐고 ”네 차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도날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화요일 저녁 트위터에 ”무소식이 항상 희소식인 것은 아니다. (영국을 뺀) EU 27개 회원국은 여전히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깨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런던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한 EU 외교관은 메이 총리가 3월21~22일로 예정되어 있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협상단을 여기 저기에 보내”면서 시간을 끄는 게 메이 총리의 전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재협상이 '중대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지만, EU는 영국이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탓에 '협상다운 협상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재협상이 "중대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지만, EU는 영국이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탓에 '협상다운 협상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ASSOCIATED PRESS

 

메이 총리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12일 하원에 출석한 메이 총리는 EU와의 협상이 ”중대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도 의원들이 바라는 수정안을 EU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2차 승인 투표(meaningful vote)도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메이 총리가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3월 말까지 최대한 시간을 끈 다음 ‘최후의 순간’에 승인 투표를 실시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브렉시트 날짜(3월29일)를 코앞에 두고 의원들은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통과시키거나, 이를 부결시켜 손 쓸 틈도 없이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맞이하거나.

메이 총리의 이같은 압박(‘my deal or no deal’) 전략은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우려와 공포를 최고 수위까지 끌어올려 결국 자신의 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게 한다는 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통과를 압박하기 위해 '미치광이 전략'을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통과를 압박하기 위해 '미치광이 전략'을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RIS OIKONOMOU via Getty Images

 

그러나 메이 총리의 이같은 ‘위협’이 가짜일지 모른다는 정황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평소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해왔던 올리 로빈스 영국 브렉시트 협상 대표가 바에서 나눈 대화를 한 영국 기자가 우연히 엿듣게 된 덕분이다.

로빈스는 의원들이 3월 중으로 ‘브렉시트 재협상안 또는 브렉시트 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영국 정부가 애초부터 노딜 브렉시트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메이 총리가 줄곧 ‘브렉시트 연기는 어렵다‘고 말해왔던 것과도 배치된다. 총리실은 ”노딜 브렉시트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이다”라며 해명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 부주필 필립 스티븐스는 ”영국은 더이상 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브렉시트를 중단 또는 연기하기 위해 의회가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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