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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자가 우연히 엿듣게 된 메이 총리의 '진짜 브렉시트 플랜'

메이 총리가 그동안 '블러핑'을 해왔다는 유력한 증거.

  • 허완
  • 입력 2019.02.13 16:06
  • 수정 2019.02.13 16:08
ⓒASSOCIATED PRESS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브렉시트 ‘치킨게임’의 결말이 우연히 공개됐다. 한 영국 기자가 벨기에 브뤼셀의 한 바에서 관련 대화를 엿듣게 된 덕분이다. 

우선 간략하게 배경을 살펴보자. 그동안 메이 총리는 ‘내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결말은 노딜(no deal) 브렉시트 뿐’이라며 의원들을 압박해왔다. 브렉시트 날짜(3월29일)가 40여일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양자택일을 사실상 강요해온 것이다.

이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과 EU의 합의안이 또다시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기본 옵션’은 하나 뿐이다. 영국은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다. 경제적·사회적 대혼돈과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나, 메이 총리의 ‘진짜 계획’은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측 브렉시트 협상대표 올리 로빈스.
영국 측 브렉시트 협상대표 올리 로빈스. ⓒReuters

 

벨기에 호텔 바에서의 대화

우연히 ‘특종’을 하게된 영국 방송사 ITV의 앵거스 워커 기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11일 밤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된 영국과 EU의 회동을 취재하고 있었다. 영국 대사관에서 열린 회동에는 EU 측 브렉시트 협상대표 미셸 바르니에와 영국 브렉시트부 장관 스티븐 바클레이 등이 참석했다. 저녁 만찬이 이어졌고, 영국 측 협상대표인 올리 로빈스 등도 합류했다.

워커 기자와 일행은 대사관 바깥에서 생방송 리포트를 마친 뒤 숙소인 호텔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한 잔 하기 위해 호텔 바로 향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로빈스 협상대표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바에 있었고, 브렉시트, 내각, 의원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는데 분명 다른 손님들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굳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될만큼 (큰 소리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워커 기자는 ”모든 단어를 다 듣지는 못했지만 대화의 상당 부분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로빈스는 의원들이 3월 중으로 ‘브렉시트 재협상안 또는 브렉시트 연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메이 총리가 여러 차례 단호하게 밝혔던 입장과 달리 노딜 브렉시트는 옵션이 아니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블러핑’, 즉 가짜 위협을 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빈스는 ”문제는 브뤼셀(EU)가 (브렉시트) 연기 조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며 ”아마도 결국 그들은 연기를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결말은 노딜 브렉시트 뿐'이라며 의원들을 압박해왔다.
그동안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결말은 노딜 브렉시트 뿐'이라며 의원들을 압박해왔다. ⓒARIS OIKONOMOU via Getty Images

 

브렉시트 연기는 안 된다더니...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연기(리스본조약 50조 연장) 가능성을 일축해왔다. 이는 ”그저 결정 시점을 늦추는 것일 뿐”만 아니라 “EU가 그냥 연장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대화에 따르면, 로빈스 협상대표는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브렉시트는 상당히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 장기 지연에 대한 우려가 의원들의 마음을 돌려세울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3월 마지막주 시작할 때... 브렉시트 연기도 가능하지만, 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연기될 것이라고 의원들이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브렉시트 연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 보수당 내 강경파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마지못해 ‘차악(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메이 총리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양자택일’ 압박이 통하려면 노딜 브렉시트라는 위협 카드가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애초 그 카드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예기치 않게 드러난 셈이 됐다. 

가디언은 이같은 대화가 공개됨에 따라 일부 내각 각료들의 ‘반란’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막판까지 최대한 시간을 끈 다음 의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메이 총리의 ‘치킨게임’을 저지하기 위해 집단 사임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것.

친(親)EU 성향의 각료들은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서라면 사임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의회에서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친유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이 다시 준비되고 있다. 지난달 의회에서 한 번 부결되긴 했지만 보수당 내각에서 이탈표가 나온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영국 정부 대변인은 ”사적인 대화에서 나왔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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