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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특집_3편] 사립유치원은 ‘밑 빠진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빨랐던 사회 변화, 늦었던 정부 대응, 구멍 난 보육 재정 ①

  • 백승호
  • 입력 2019.02.12 10:02
  • 수정 2019.03.29 15:26

한국의 유아보육시설은 크게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나뉜다. 둘은 운영 방향, 소관 부처도 다른 완벽히 ‘별개’의 기관이지만 대부분은 별 구분 없이 쓰인다. 유치원은 교육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시설로 만3세부터 만5세까지 이용이 가능하며 교육부 소관이다. 어린이집은 교육보다는 보육에 중점을 두었으며 만0세부터 만5세까지 이용이 가능하고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교육부 소관인 유치원의 교육과정이 조금 더 전문적일 수는 있으나 대부분은 운영시간이 어린이집보다 짧다.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는 조금 더 긴 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누리과정의 도입으로 만3세~5세의 교육과정이 통일됨에 따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차이가 크게 줄었다. 따라서 많은 학부모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운영시간이 긴 어린이집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이는 시설 현황으로도 나타난다. 2017년 현재, 전체 보육시설 중 어린이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82%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사설’이란 점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한 전체 보육시설 중 국공립 시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14.8%에 불과하며 어린이집중 국공립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보다 더 적은 6.2%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진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은 ‘사립 보육시설이 난립했지만 이들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허프포스트는 앞선 기사에서 출산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출산 여성들이 겪는 일상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시급한 문제를 꼽으라면 단연 ‘보육’이었다. 아이를 맘 편히 제대로 맡길 수만 있다면 경력단절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육아의 피로 또한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여성의 삶을 옥죄던 족쇄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보육에 투자하는 돈은 연간 14조에 이른다. 보육을 시급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단 의미다. 하지만 돈을 투자한 만큼의 체감효과가 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산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걸까? 한국의 보육 정책 흐름을 살펴보면 그 윤곽이 보인다.

허프포스트코리아의 저출산 특집기사는 총 5회로 나누어 게재됩니다. 1편과 2편에서는 육아와 출산에 대한 부담이 거의 대부분 여성에게 지워진 사회에서, 출산을 결심한 여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담았으며 3~5편에서는 국가의 저출산 대책, 특히 보육과 관련한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저출산특집_1편] 아이 낳기로 결심한 여성이 앞으로 7년간 겪게 될 일 ①

[저출산특집_2편] 아이 낳기로 결심한 여성이 앞으로 7년간 겪게 될 일 ②

[저출산특집_3편] 빨랐던 사회 변화, 늦었던 정부 대응, 구멍 난 보육 재정 ①

[저출산특집_4편] 빨랐던 사회 변화, 늦었던 정부 대응, 구멍 난 보육 재정 ②

[저출산특집_5편] 출산은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쩌다가 사립 유치원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한국 보육정책의 흐름

‘보육’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던 시기에 한국 사회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게 되는데, 이때 이 법 서두에는 “보호자의 보호가 어려운 영유아를…. 사회성원으로 육성”하고 “보호자의 사회경제적 활동 지원을 통한 가정 복지의 증진”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법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그대로 그린다. 맞벌이가 보편이 아니었던 시기, 맞벌이가 대체로 가난과 같은 의미이던 시기, 보육은 이들의 자녀 양육을 지원하며 부모들이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이었다.

보육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보육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임기가 시작되자 95년부터 97년까지 보육시설확충 3개년 계획을 통해 3년간 7590개의 보육시설을 증설하겠다고 공약을 구체화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7년 보육시설 수는 1만5357개로 임기 초와 대비해 8400여개소가 증가했다.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보육시설 증가가 민간시설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간시설이 4121개소, 가정시설이 3023개소로 목표달성에 크게 기여한 반면 국공립은 175개소, 법인은 827개소로 증가수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약 5500억원의 기금을 활용해 보육시설 확충을 원하는 사람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줬다. 민간이 시설을 증설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그 결과 93년에 약 15%를 차지하던 국공립 어린이집 시설이 7.5%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이 같은 추세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의 영향에 있던 시기라 보육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국가재정의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2000년에는 처음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개수가 감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도 민간어린이집은 늘었다. 김대중 정부가 민간 어린이집 설립 절차를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결 간소화된 절차로 인해 민간 시설은 계속 늘어났다.

ⓒpaulaphoto via Getty Images

 

뒤이은 노무현 정부에서는 선거공약으로 ‘보육’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던 때이기도 했으며 IMF 후유증으로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 합계출산율이 1.05(2005)까지 떨어지는 등 한국 사회의 저출산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노무현정부는 보육을 처음으로 ‘공공’ 차원에서 논의한 정권이기도 하다. 아이의 보육을 국가가 맡아서 한다는 의미를 제시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보육료 지원이었다. 이전까지 보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시설 위주, 그러니까 보육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부터 소득에 따른 차등보육료를 부모들에게 직접 지급했다. 어린이집 설립절차도 신고제에서 다시 인가제로 전환했다.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설치기준을 강화했다. 노무현정부는 국공립시설 확충에도 신경 썼다. 당시에도 민간 어린이집이 증가했지만 그 추세가 다소 완화됐으며 국공립 어린이집은 임기 초에 비해 31% 늘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보육에 대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공공성을 도입했다. 날로 높아져가는 보육수요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무상보육을 이어받아 이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정했다. 무상보육 지원대상 가정을 80%까지 끌어올리고 보육시설에 다니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도 양육수당을 지급했다. 육아공백을 채우기 위한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자 수요도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시설 수도 증가했다. 이명박정부 5년간 늘어난 보육시설은 총 1만2000여곳이다. 대부분이 민간시설이다. 2012년 민간, 가정 어린이집의 비율은 87.9%로 역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보육정책을 이어받은 박근혜정부에서 드디어 100% 무상보육이 실시됐다. 한국의 공공보육정책은 이때 1차적으로 완결됐다. 그 액수가 충분치는 않았지만 모든 가정에 보육과 관련된 돈이 지원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공공성’을 갖췄다.

 

반쪽짜리 공공성이 만든 결과

2000년대 들어서부터 한국의 저출산 추세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막 결혼한 커플들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며 정책적 해결을 요청했다. 보육의 부담이 개인에서 국가로 넘어가고 있었다. 보육에 대한 공공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노무현 정부가 대선 공약에 보육을 전면으로 세우고 또 당선된 이후 ‘보육 공공성 강화’라는 말을 공식문서에 처음 사용한 것도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들이 내민 ‘보육 공공성’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앞선 세 정부는 공공성에 대한 의미를 거의 ‘무상보육’과 ‘시설확충’으로만 채웠다.

당시 정부의 생각은 이랬다. 시설에 직접 지원하지 않고 부모에게 보조금을 주게 되면 부모는 임의대로 보육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민간 보육시설 간의 경쟁이 촉발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수요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높은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에 ‘유권자에게 직접 금액을 지원하면 정책 체감도가 높고 유권자 지지 확보에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렸다.

 

그러나 이 판단은 틀렸다. 사립보육시설은 밑 빠진 독이 되었다.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린이집은 몇억에서 몇십억 정도의 권리금을 덧붙여 사고 파는 물건이 되었다. 여기에 ‘공공’이라는 단어가 들어설 곳은 별로 없었다.

 “(보육 공공성을) 재정지원으로 접근하여 무상교육의 실현이라는 ‘공교육화’를 이루려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유아교육을 사적인 거래로 둔갑시켰다”

- ‘영유아보육, 교육에서의 공공성의 의미 탐색(2013, 김희연)’

 

민간보육시설은 어쩌다 ‘밑 빠진 독’이 됐을까?

2013년의 ‘원비 인상’은 유독 심했다

2013년은 이상한 해였다. 민간 어린이집 원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원비야 물가상승률에 따라 조금씩 오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해의 상승률은 유독 컸다. 한겨레21은 이 해의 민간 어린이집 보육료에 대해 “자료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인상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대비 2013년 민간보육시설 교육비는 평균 16.2% 인상됐다. 경기도의 경우 무려 32.3%에 달했다.

 

 

왜 이렇게 올랐을까? 이 해는 정부가 추진하던 누리과정이 모든 만3~5세 아동에게 확대되던 해였다. 누리과정은 ‘미취학 영유아가 어린이집·유치원에서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통일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부모들에게 누리과정은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그들에게 누리과정은 월 22만원(2019년 현재는 29만원이다)의 보육지원금을 의미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유치원은 지난 3일 가정통신문을 보내 한 달 34만 원의 수업료를 내년부터 8만 원씩 올린다고 공지했다. 급식비와 간식비 15만 원, 교재비 10만 원도 각각 3만 원, 5만 원씩 인상했다. 내년부터 한 달에 16만 원의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지원금 혜택은 기대 이하였다.”

- ‘추첨 전쟁’ 뚫었다고 웃던 엄마 지원금만큼 뛴 유치원비에 운다
(서울신문, 2012년 12월8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횡포는 원비 인상이다. 사립유치원을 이용하는 부모들의 원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매월 22만 원씩 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는데, 그것을 반영해 아예 유치원비를 올려버린 것이다.”

- 도 넘은 사립유치원 횡포
(슬로우뉴스, 2013년 1월15일)

 

 

 

즉 2013년의 어린이집 보육료 대폭 인상은, 정부가 지원하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이유로 민간어린이집이 원비를 올린 결과다. 학부모들의 보육료 부담이 줄어든 것을 틈타 이익을 챙긴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우려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물가상승률을 넘는 원비 인상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해 사립유치원의 80% 정도가 교육청의 가이드라인을 어겼다.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 보조금을 더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시 이 자료를 발표했던 정진후 의원은 “교육부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학급당 월 25만원을 지원하도록 했으나 이를 지키는 것보다는 원비 인상이 사립유치원에게는 훨씬 유리한 결과를 낳았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어린이집, 국가 예산은 그야말로 ‘돈줄’이었다

2014년, 프랑스 정부는 한해 50조원에 달하는 주택정책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주택문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그 원인 중 하나를 ‘집세 보조금‘으로 보았다. 프랑스의 주택정책예산 중 절반이 바로 개인 집세 보조금으로 들어가는데 예산기획부는 ‘임차인이 보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집주인은 보조금이 없을 경우 형성될 집세보다 더 올려 받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2016년 프랑스 정부는 집세 보조금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프랑스의 주택보조금 사례와 한국의 민간보육시설 사례는 비슷한 점이 많다. 소규모 민간 사업자가 재화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공급하는 재화가 생활에 필수적이며 공공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공공보육인프라(국공립 보육시설) 구축이 병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자에 대한 배타적인 지원(누리과정 지원금)은 결국 민간보육서비스 공급주체의 시장 규모 확대와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만들고 또 “상대적으로 이윤동기가 높은 민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지원금 위주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보육비용의 전반적 상승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직접 지원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이는 민간어린이집의 공급을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민간어린이집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민간 어린이집이 가격과 시설, 교육품질면에서 우수한 경쟁자를 무시해도 되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민간 어린이집의 이윤추구가 손쉬워진 상황에서 민간어린이집 사이에 네트워크까지 구축되자 국가의 보육비 예산의 상당 부분이 그대로 어린이집 운영자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비효율이 발생했다.

 

 

민간어린이집의 이윤추구는 보육품질 저하로도 이어졌다. 철마다 이어지는 어린이집 부실급식 논란이나 보육교사의 폭행사건 등이 그것이다. 급식 비용을 아끼느라 품질이 낮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사용하는 사건,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리던 보육교사가 아동을 폭행하거나 학대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박용진 의원이 2018년 국정감사에서 전국 사립 유치원 비리 실태를 고발하면서 민간 보육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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