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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되면 안 되는 노래'는 세상에 존재할까?

이건 변진섭의 '희망 사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 박세회
  • 입력 2019.02.11 16:34
  • 수정 2019.02.13 13:42
ⓒMBC 자료영상 캡처
ⓒhuffpost

지나간 시간에는 되돌아봐야 할 일들이 참 많다. 

MBC 라디오의 아침 프로그램 ‘굿모닝 FM’의 사회를 맡고 있는 방송인 김제동 씨는 흘러간 노래를 소개하는 가요톱10 코너에서 가수 변진섭 씨의 노래 ‘희망 사항’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기준으로 비춰 보면 사실 적절치 않은 가사죠. 뭐 지금 기준뿐만이 아니고 그냥 흘려보내는데, 지금으로서는 발표 안 되어야 하는 노래다.”

같이 사회를 본 음악평론가 겸 작가 배순탁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아무리 과거에 유명하고 훌륭한 텍스트였다고 하더라도 재평가받는 것이 숙명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텍스트를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가끔 음악 팬들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를 예로 들자면 단골 바의 사장님께서 AC/DC의 노래 ‘You Shook Me All Night Long’이라는 노래를 틀어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심장은 두근두근하면서도, 드문드문 들리는 가사에 흠칫 놀라곤 한다.

가디언의 문화 담당 기자이자 페미니스트인 피오나 스터지스는 나와 비슷한 사정 탓에 좀 더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12살 때부터 30년간 AD/DC/를 듣고 자랐고 아직도 그 밴드의 노래를 사랑한다. 문제는 10살짜리 딸이 엄마의 음악 취향에 영향을 받아 AC/DC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7월 17일 자 칼럼에 실린 그녀의 고백을 들어보자.

“10살인 내 딸은 나 때문에 ‘Rock’n’Roll Train’을 좋아한다. 이 곡에는 ‘그걸 스팟으로 가져가/그녀는 그걸 아주 뜨겁게 해줄 거란 걸 넌 알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You Shook Me All Night Long’도 좋아하는데, 이 곡에 등장하는 연인은 ‘빠른 기계‘고 ‘자기 모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여성이다. ‘Go Down’(오럴 섹스를 의미), ‘Big Balls’(고환을 의미), ‘Let Me Put My Love Into You’(내 사랑을 네 안에 넣게 해줘)는 아직까지는 안 들려줬지만, 멀지 않아 내 딸이 스스로 찾아낼 것이다.”

AC/DC의 공연 영상을 캡처한 사진. 
AC/DC의 공연 영상을 캡처한 사진.  ⓒAC/DC Official

그녀가 더 깊은 패닉에 빠진 건 AC/DC의 월드 투어 소식을 들은 딸이 공연에 가자고 물어봤을 때다. AC/DC의 공연에서는 ‘Whole Lotta Rosie’라는 노래가 나올 때 거대한 가슴을 드러낸 여성 모양의 풍선이 기차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스터지스는 말한다. ”이 밴드는 똑같은 공연을 30년동안 계속해왔고, 난 두번이나 봤지만 내 딸이 보게 할 순 없다. 아직은 아니다”라고.

익숙했던 노래가 갑자기 복고의 바람을 타고 돌아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유명세를 탔던 tvN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주제곡으로 나오는 바람에 한동안 카페에선 카를라 부르니가 부른 버전의 ‘Stand By Your Man’이 주야장천 흘러 나왔다. 태미 와이넷과 빌리 셰릴이 공동 작곡한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한 남자에게 모든 사랑을 주는 여자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죠…. (중략).... 이해하지 못할 일을 하더라도 진정 사랑한다면 용서할 거예요.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정말 사랑한다면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엔 그냥 한 남자니까요.” 

픽션의 영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가관이다. 가장 가까운 예가 미국 시트콤 ‘프렌즈’다.

1995년부터 시작해 2004년까지 10년 동안 사랑받은 이 쇼가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되자 밀리니얼들은 패닉에 빠졌다. 특히 프렌즈를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모니카가 뚱뚱했던 시절의 비디오를 보며 조이가 외친다 ”어떤 여자가 모니카를 잡아먹었나 봐”. 끊임없이 등장하는 챈들러와 조이의 게이 혐오적인 농담 사이에서 ‘남자 유모‘를 놀리는 로스의 성차별적 장난질이 정점을 찍는다.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모든 금기를 어긴다.

″지금 기준으로 비춰 보면 사실 적절치 않은 가사죠. 뭐 지금 기준뿐만이 아니고 그냥 흘려보내는데, 지금으로서는 발표 안 되어야 하는 노래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AC/DC의 노래들은 발표되어서는 안 될 노래일까? 프렌즈는 정말 찍어서는 안 될 시트콤이었을까? ‘희망 사항’은 정말 발표 안 되어야 하는 노래일까?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영화 중에는 과연 몇 개나 저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에미넴은? 50센트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몇몇 장면은 잘려나가지 않을까?

스터지스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매우 지혜롭다. 

“AC/DC의 노래를 계속 들을 건지 아니면 그녀가 경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로의 끔찍한 퇴보라고 여길지는 내 딸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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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 #김제동 #희망사항 #변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