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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리] 영국 노동당 코빈이 '브렉시트 난국'을 돌파할 제안을 내놨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 정치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9.02.08 17:56
  • 수정 2019.02.08 17:59
ⓒAaron Chown - PA Images via Getty Images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영국 제1야당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이 내놓은 제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브렉시트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영국 정치가 급박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유럽연합 회의론자(Eurosceptics)로 분류되는 코빈은 브렉시트에 대한 어중간한 입장 때문에 여당은 물론 당 안팎에서도 비판을 받아왔다. 그랬던 그가 사실상 처음으로 명확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코빈이 제시한 요구사항 중 일부는 브렉시트에 대한 노동당의 기존 입장에서 변화된 것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도 코빈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테레사 메이 총리와 타협에 이를 가능성도 아주 조금은 높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자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코빈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

지난주 테레사 메이 총리와 비공개 회담을 가진 코빈 대표는 6일(현지시각) 보낸 서한에서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메이 총리가 이를 수락하면 노동당도 하원에서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통과되도록 돕겠다는 제안이다.

가디언이 요약한 코빈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과 그 의미들을 간략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① 영국 전체를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고, EU의 향후 무역협상에 영국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를 맺을 것

= 보수당 중도파 의원들도 주장해왔던 내용이긴 하지만, 보수당 강경파 의원들은 영국이 자체 무역합의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결사반대 해왔던 내용.  

② 무역 분쟁 해결 방안에 대한 분명한 합의를 비롯해 영국-EU 공통의 기구 및 의무들로 뒷받침 되는 EU 단일시장과의 긴밀한 제휴

= 메이 총리의 애초 구상과 흡사한 내용. EU가 ‘체리피킹(cherry-picking)’이라는 이유로 일축했던 부분.

단일시장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노동력 이동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노동당의 기존 입장(2017년 총선 공약)은 언급되지 않았음. 단일시장에 잔류하려면 4대 이동의 자유(상품, 노동력, 서비스, 자본)를 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EU의 확고한 원칙. 

③ 영국의 노동자 권리 보호 규정이 EU의 변화하는 기준들과 연동되도록 함으로써 EU 차원의 규제 수준이 영국에서도 최소 기준으로 적용되도록 할 것

메이 총리가 수용할 뜻을 밝혔고,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노동당 의원들 및 노동조합이 요구해왔던 내용. 코빈의 요구사항은 EU의 안전기준 또는 대기질 기준 분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음.

④ 영국이 환경, 교육, 산업 규제 등의 분야에 관한 EU 기구들 및 기금 프로그램에 계속해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힐 것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영국이 돈을 낸다면 실현 가능한 부분. 메이 총리의 기존 제안에도 영국과 EU가 유럽의약청(EMA), 유럽화학물질청(ECHA), 유럽항공안전청(EASA) 등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음. 유럽경제지역(EEA)에 속한 노르웨이, 스위스 같은 국가들도 투표권은 없지만 다양한 EU 기관에 참여하고 있음. 

⑤ 유럽 체포영장(EAW) 및 (수사 등을 위한) 핵심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영국의 접근권을 포함한 구체적 합의를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안보 분야 합의에 넣을 것 

브렉시트 협상에서 가장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부분이자 영국이 가진 강력한 카드 중 하나. 각종 범죄에 대한 유럽 차원의 대응을 위한 기관들 및 데이터베이스 공유 상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내용.

다만 EU는 영국이 EU의 관련 법률과 유럽재판소(ECJ)의 사법권을 수용하는 회원국이 아닌 한 지금과 똑같은 지위를 누리기는 어렵다는 입장.

ⓒJoe Giddens - PA Images via Getty Images

 

코빈이 원하는 것

코빈이 내놓은 제안은 몇 가지 이유에서 흥미롭다. 그의 메시지와 그 파장을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① 오케이. 브렉시트, 그거 합시다.

기본적으로 코빈은 브렉시트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 없다. 단, 앞으로도 EU와 어느 정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노르웨이 모델 + 관세동맹‘의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노르웨이 모델은 EU에는 속하지 않지만 EU 단일시장에 남으면서 EU의 규제를 따르는 형태다. 여기에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관세동맹’까지 더하면 훨씬 더 소프트한 브렉시트가 되는 셈이다.

코빈의 이같은 입장은 노동당 의원과 지지자들 중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반면 도날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메이 총리에게 코빈 대표의 이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② 2차 국민투표? 그런 건 관심 없는데...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 중 어디에도 2차 국민투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압도적으로 부결된 이후,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상당수의 노동당 의원들은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해야 한다고 코빈 대표를 압박해왔다.

반면 코빈은 2차 국민투표 주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던 지역들 중 상당수는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과 겹친다. 2차 국민투표는 당이 이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2차 국민투표 실시를 위한 동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의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발표된 가디언 주말판 옵저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부결되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43%였다. 반면 합의 없이(no deal) EU를 그냥 떠나야 한다는 응답도 무려 42%에 달했다. 의회에서도 2차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는 잔뜩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노동당 예비내각 브렉시트부 장관인 키어 스타이머는 곧바로 수습에 나서야만 했다. 코빈 대표가 ”국민투표 옵션을 테이블에서 뺀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브렉시트 반대파에 속하는 노동당 예비내각 각료들은 ‘결코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ASSOCIATED PRESS

 

메이-코빈 연합?

코빈 대표의 제안을 메이 총리가 수락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념적으로 정반대편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사안마다 서로를 격하게 비판해왔기 때문 만은 아니다. 최근까지 메이 총리는 보수당 내 강경파와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을 설득하는 작업에 매달려왔다.

코빈이 제안한 ‘영구 관세동맹 잔류‘는 ‘무역 정책의 통제권을 되찾아오자!’고 외치는 이 강경파들의 반발을 부를 게 뻔하다. 메이 총리도 그 가능성을 일축했었다. 만약 메이 총리가 이 제안을 수락한다면 보수당의 분열이 극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이-코빈 연합‘의 위협이 거꾸로 보수당 강경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메이 총리가 (무려) 코빈 대표와 손을 잡고 자신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 만큼은 막으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총리실 관계자는 관세동맹 잔류 등에 있어 ”상당한” 견해차가 있다면서도 코빈 대표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를 실현할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들을 우리가 계속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메이 총리는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지도자들과 회담을 벌였다. 양측은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즉각 재개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EU는 논란의 ‘아일랜드 백스톱’ 조항을 수정해보려는 메이 총리의 시도를 재차 일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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