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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완전한 믿음은 없다

불안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팁이 있다.

  • 곽정은
  • 입력 2019.02.08 14:09
  • 수정 2019.02.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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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fpost KR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보석 같은 사람을 내 곁에 둘 수 있게 됐지 의아해하며 피식 웃음 짓던 그 순간을 나는 참 좋아했다. 하지만 김창완님의 노래에서 그랬던가,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가 풀려버릴 태엽이지’라고.

가슴 터질 듯한 설렘이 문득 ‘이 사람이 언젠가 나를 떠나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으로 대체되고, 시시때때로 연락을 하던 사람이 문득 그러지 않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생겨난 절망을 감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연애와 불안은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의 무엇이라는 것을.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을 온전히 믿기 원하지만, 그러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본다. 밤늦게 술자리가 많은 애인이 종종 밤새 연락두절이 되었다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연락이 닿는 일이 잦아졌다는 호소, 남자친구가 자신보다 ‘여자사람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고백, 함께 있을 때 온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데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고 찜찜하다는 이야기….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다. 완전히 믿고 지내길 원하지만 그러기에는 어딘가 불안하다는 것.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애초에 누군가를 자신의 인생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딱 그만큼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맞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인생에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이 달콤한 말을 하고 달콤한 키스를 전할 때 느껴지는 황홀함은, 언젠가 그 입술이 이별을 말하고 ‘너랑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할 때의 절망으로 얼마든지 대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절망이 오더라도 감당하겠다고,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불안에 대해서도 의연할 수 있다.

상대를 믿지 못하고, 그래서 상대의 일거수일투족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먼저 완전한 믿음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일이다. 100%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거라는 기대를 접는 것이다.

너무 차갑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연인과의 일을 기억해보자. 누군가를 완벽히 믿어준 결과가 어땠는지를. 딱히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중요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기에 그 연애가 끝났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 못 믿는데,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의 모든 불안을 해결해줄 거란 생각을 버리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이 불안을 내려놓는 데에 명상이 도움이 된다. 불안함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게 한다. ‘지금 나는 불안하구나’라고 스스로 알게 하는 기초적인 명상의 주기적 반복만으로도 섣부른 말이나 행동을 차단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늪에 빠지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내가 완벽한 인간일 수 없음을, 이 불안함도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금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나약한 감정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내가 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불안 대신 평온을 선택하는 키워드가 되는 셈이다.

자신의 불안함을 알아차렸고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대화의 힘을 빌려야 할 때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에 대해, 혹여 상대의 특정한 행동이 그런 느낌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 용기 있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중요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당신의 불안함과 서운함 같은 감정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감정에 대한 감정, 즉 ‘메타 감정’은 둘의 관계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란 달래주면 사라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상대방이 좀 달래주길 기대하고 대화를 시작했다고 치자. 그런데 상대는 연인이 불안해하는 건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라 느끼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하다 오히려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어렵게 속내를 꺼냈지만 오히려 더 골이 깊어졌다면, 대부분의 경우 두 사람의 메타 감정이 너무 다른 탓일 가능성이 크다. 경험상 이것은 쉽게 타협이 되지 않으니 애초에 이것이 너무 다르지 않은 사람을 선택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좀더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메타 감정이 다르다는 게 뻔히 보이는 사람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 사람이라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어 눈 감고 명상을 하다가도 내게 불안을 선물한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며 울컥하게 되는 게 또 사랑이라서 말이다.

참으로,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동시에 오는 이 일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그래서 마치 친구처럼 함께 찾아오는 불안에 우리는 압도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까?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삶이 여지없이 좌절을 주니,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부질없는 사랑에 기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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