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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1년 전에 카쇼기 살해 의지를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가 측근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 허완
  • 입력 2019.02.08 15:21
  • 수정 2019.02.08 15:36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그는 지난해 6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왕위 계승자로 책봉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그는 지난해 6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왕위 계승자로 책봉됐다. ⓒANDREW CABALLERO-REYNOLDS via Getty Images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2017년 자신의 측근들에게 언론인 자말 카쇼기를 살해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빈 살만 왕세자와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왔던 카쇼기는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됐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빈 살만 왕세자는 카쇼기가 실제로 살해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제거’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들은 빈 살만 왕세자가 살해를 지시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사우디는 줄곧 이를 부인해왔다.

7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정보기관이 파악한 빈 살만 왕세자와 고위급 측근의 대화에 대해 알고 있는 익명의 전현직 미국 및 해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2018년 10월2일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배후로 의심 받아왔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2018년 10월2일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이후 배후로 의심 받아왔다. ⓒRYAD KRAMDI via Getty Images

 

미국 정보기관들이 확보했다는 이 대화에는 2017년 9월,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유력 언론인 투르키 알다킬과 카쇼기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알다킬은 최근까지 국영 TV방송사 알아라비야에 몸 담았던 인물이다.

당시는 카쇼기가 미국에 머물면서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던 시기였다. 그가 워싱턴포스트(WP)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시점과도 일치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왕위 계승자로 낙점된 지 몇 달 만에 빈 살만 왕세자가 대대적인 권력 공고화 작업을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해 11월의 대규모 숙청이 대표적이다. 

지난 12월 초에 작성된 미국 정보기관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알다킬은 카쇼기에게 알아라비야 내 일자리를 줘서 그를 사우디로 귀국시키자고 제안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카쇼기가 스스로 귀국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둘 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총알로(with a bullet)” 카쇼기를 뒤쫓을 것이라고 빈 살만 왕세자는 말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빈 살만 왕세자가 문자 그대로 ‘카쇼기를 총으로 쏘겠다’는 뜻을 밝혔다기보다는 강한 살해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 ⓒOZAN KOSE via Getty Images

 

같은 보고서에 의하면, 이 대화가 있기 며칠 전에도 빈 살만 왕세자는 또다른 측근인 선임보좌관 사우드 알-카타니에게도 카쇼기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카쇼기가 글과 트위터로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는 바람에 자신의 ‘진보적 개혁가’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으며, 한 때 자신의 정책을 지지했던 언론인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카쇼기의 비판이 더 치명적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알-카타니는 카쇼기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경우 국제적인 반발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의 생각은 달랐다고 한다. 사우디는 자국 시민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국제적인 반응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  

빈 살만 왕세자가 측근들과 이같은 대화를 주고 받은지 며칠 뒤, 카쇼기의 첫 번째 칼럼이 WP에 게재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늘 이렇게 억압적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이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젊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부상해 권력을 잡으면서, 그는 사회 경제적 개혁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것을 언급했고, 여성 운전 금지처럼 우리의 진보를 발목 잡는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최근의 체포 바람이다. 왕세자의 왕위 등극을 앞두고 지난주, 약 30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 중 일부는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며, 이같은 시도는 감히 우리나라 권력자들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지성인들과 종교인들에게 공개 모욕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워싱턴포스트 칼럼, 2017년 9월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끝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두둔했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마주친 두 사람. 2018년 11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끝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두둔했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마주친 두 사람. 2018년 11월30일. ⓒASSOCIATED PRESS

 

지난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CIA 기밀 보고서를 인용해 빈 살만 왕세자가 카쇼기 살해 작전을 총괄한 측근과 사건 전후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 측근이 바로 알-카타니다. 그는 사건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만 당시에는 메시지가 오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보들(발신 시각 등)만 파악됐고 메시지의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NYT는 미국 정보당국이 빈 살만 왕세자와 알다킬의 대화가 최근에 채록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NSA가 동맹국을 비롯한 해외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통상적인 도청 등을 통해 확보·저장해둔 자료를 끄집어내 빈 살만 왕세자의 음성·문자 통신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7일 사우디 정부는 성명을 내고 NYT의 보도를 일축했다.

”우리는 자말 카쇼기에 대한 극악무도한 살해에 왕세자 측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을 다시 한 번 부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이미 범죄에 연루된 여러 당국자들을 기소했다. 우리는 총체적인 진실을 밝혀내고 (범인들에게) 완전한 책임을 묻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엘리트 출신 언론인 자말 카쇼기는 미국으로 '자발적 망명'을 떠난 이후 살해되기 전까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치 방식과 정부의 외교 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엘리트 출신 언론인 자말 카쇼기는 미국으로 '자발적 망명'을 떠난 이후 살해되기 전까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통치 방식과 정부의 외교 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ASSOCIATED PRESS

 

NYT는 이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이 카쇼기 살해 사건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를 끝내 두둔하면서 사우디가 미국에 약속한 투자 계획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우리 정보 기관들은 지금도 모든 정보를 살피고 있지만, 왕세자가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 알았을 수도 있고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직접 구술했다는, 지난 11월에 나온 백악관 성명이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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