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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이 기억하는 윤한덕 “나를 비꼬았으나 진정성 느꼈다”

"중증외상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왼쪽)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왼쪽)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via 한겨레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지난해 10월께 펴낸 수필집 <골든아워>에서 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관해 서술한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교수는 목차 하나를 내어 윤 센터장을 회고했다. 이 교수와 윤 센터장이 중증외상센터의 상황에 대해 함께 절망감을 느끼는 대목도 있다.

설 연휴인 지난 4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 헬기를 도입하고,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응급진료정보망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온 응급의학 전문의다. (▶관련 기사: 응급진료 시스템 구축 앞장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돌연사

이 교수는 <골든아워> 2권 ‘부록’에서 이런 윤한덕 센터장을 두고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 일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며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외상의료 체계에 대해서도 설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했다. 이어 “내가 본 윤한덕은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여 나아갔고, 관계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로 기억했다. 2008년 겨울, 이 교수가 윤 센터장을 찾아갔을 때 윤 센터장은 이 교수에게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 아주대학교병원에 중증외상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 교수는 “그가 나를 보자마자 던진 질문의 함의는 선명했다. ‘외상 외과를 한다는 놈이 밖에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은 환자를 팽개쳐놓고 와 있다는 말 아니냐? 그게 아니면 환자는 보지도 않으면서 보는 것처럼 말하고 무슨 정책 사업이라도 하나 뜯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였다”고 썼다.

이 교수는 “그는 내내 냉소적이었으며 나를 조목조목 비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외상센터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시기에 그를 종종 보았다”고 했다.

이 교수 눈에 비친 윤 센터장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이기도 했다. 2009년 가을, 두 사람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을 쪼개 광주에 내려온 윤 센터장은 발표를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이 교수는 그를 쫓아갔다. 윤 센터장이 도착한 곳은 자신의 모교인 전남대 의과대학 강의실이었다.

계단식으로 놓여 있는 책상을 손으로 쓸던 윤 센터장은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여기서 강의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라나?”라고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교수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 같이 상기되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의 뒷모습이었다”고 했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via 한겨레

2016년 초에는 두 사람이 전국 중증외상센터 병원장 및 센터장들과 함께 세종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절망적인 감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회의에서) 병원 경영자들은 인력과 장비의 ‘효율적 운영’만이 중요해 보였다”며 “대부분의 병원과 중증외상센터는 중증외상센터의 의료진과 장비가 중증외상환자에만 사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썼다.

회의에서 ‘중증외상센터에 환자가 없으니 국가에서 인건비를 지원받는 중증외상센터 전담 의료진을 타 부서 일반진료에 운용하도록 관련 규정을 완화해달라’는 의견이 주로 쏟아져서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공모가 있던 당시 내놓았던 대형 병원들의 말은 지금과 달랐다. 그들은 해당 지역에 중증외상환자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 병원들이 권역별 중증외상센터 사업에서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그랬던 이들이 지금은 외상환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의견대로 가자면 이 사업은 시작된 의미가 없다”며 “중증외상센터 사업의 종료를 생각했다.

‘중증외상센터 무용론’과 함께 국가적 지원이 끊어지면 모든 것은 뜻밖에 쉽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고 썼다. 이 교수와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가던 윤한덕 센터장은 “2018년 이후에 이 사업이 잘도 계속 가겠구나…”라고 읊조렸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윤 센터장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 교수는 “곧 끝나겠구만… 차라리 끝나는 게 좋겠어…”라고 말했다.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윤 센터장은 평소 심정지 환자 생존율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동심장충격기’라는 말 대신 ‘심쿵이’라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10월26일 페이스북에 쓴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젠가는 심쿵이(자동심장충격기)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부착되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당신이 남을 돕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돕지 않게 됩니다.

당신이 할애하는 십여분이 누군가에게는 수십년의 시간이 됩니다”라며 “응급환자에게 이 기계를 사용하면 누구도 당신에게 배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보면 적극적으로 도우십시오. 그로 인해 겪게 될 송사는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한편, 서울 중부경찰서는 7일 윤 센터장 부검 결과 “1차 검안 소견과 같이 고도의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급성 심장사가 1차 소견이며 약물 검사 등 최종 부검 결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회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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