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함께 하는 상호작용이다. 내가 있고 네가 있어야지만 관계가 만들어진다. 나만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관계이다. 겁이 많아서 그럴 수도, 혹은 교만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나’만 있고 ‘너’는 없는 관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지레짐작하고 혼자 판단하며 내 행동과 감정을 선택하는 게 혼자 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혼자하는 관계는 외롭고 서럽다.
상대와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다보면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자연스레 많아진다. 나에게 관심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 서운하다. 어떤 표정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쳐서 차가웠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신경쓰는 것처럼 느껴져서 질투가 났다. 보고 싶은데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해서 기뻤다. 그런데 그 감정들 어떠한 것도 표현하지 못했다.
내 안에 있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았을 때 상대는 내 마음 중 어떤 마음을 알아 차리고 헤아려줄 수 있을까. 나 혼자서 상대에게 삐쳤다가 서운해 했다가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별의별 영화를 찍었을건데, 그 장면 중 어느 한 씬에서도 상대의 역할은 없었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나 혼자다.
그 찰나에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는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혼자서 소외감을 느끼고 그 관계에서 철수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역시 사람을 만나도 외로워. 굳이, 왜 나 혼자 애써야 해. 그럴필요 없어.”라는 생각에 점차 혼자 있기를 선택하게 된다. 허나, 거기에는 상대에게 공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내 행동의 맹점이 있다.
내 마음에도, 상대에게도 기회를 주자. 내 마음을 헤아려 줄 기회를 말이다. 표현해라. 제발 좀 표현해줘라. 그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일단 뭐라도 표현해보자. 그리고 상대에게 물어보자. “내 말이 어떻게 들렸어?” 만약 상대가 내 마음과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다시 또 다르게 표현해보자.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다고 느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표현해봤으면 좋겠다.
혼자하는 관계는 버겁다.
상대와 소통하지 않는 관계에서는 나 혼자 너무 바쁘다. 생각이 많아져서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다. 생각만 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렇다. 상대가 어떤 감정일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무한반복 재생되는 거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그냥 혼자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취미활동만 하면 되고, 상대가 무슨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검열하지 않아도 되니까 세상 편안할 것이다.
그렇지만 편하고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 생활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다.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움이 있지만 그 안에 즐거움과 재미와 행복이 있다. 그 맛을 느껴보지 않았기에 선뜻 그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쳐 놓은 울타리에서 한발짝만 나오면 사람들과 치근덕 거리는 관계를 하며 사람냄새 나는 삶, 무미건조하지 않고 팍팍하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있는데 그 한 수의 용기를 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보다.
물이 있는 곳에 그릇을 갖다 대야 갈증이 해소된다. 나는 너와 직접 소통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이, 내 삶이 촉촉해짐을 느낀다. 애정과 인정에 목 마르고 갈증난다면 사람을 찾아야 한다.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 사람을 필요로 해라. 이는 일이나 문화생활을 통해 느끼는 충족감과 질적. 양적으로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백(monologue)아닌 대화(dialogue)를 하자. 상대에게 묻고 대답을 듣자. 혼자서 온갖 사투를 벌이다 지쳐 떨어져나가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해서 공감과 이해를 받자. 상대에게도 물어보고 그에 맞는 반응과 표현을 해보자.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