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2월 07일 17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07일 17시 35분 KST

미국 여성 정치인들은 왜 흰 옷을 입는가 : 패션 정치의 간략한 역사

여성 의원들이 보여준 것처럼, 때로는 옷이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미국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5일(현지시각)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 흰 옷을 입고 참석한 것은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는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 활동가들과 여성 참정권 운동을 기리는 의미였다. 민주당 여성 하원의원들의 모임인 DWWG(House Democratic Women’s Working Group) 의장 로이스 프랜켈 하원의원(플로리다)은 “우리 이전의 모든 이들을 기리고 힘들게 얻어낸 권리를 후퇴시키지 않겠다는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자”며 여성 의원들에게 흰 옷을 입고 트럼프의 연설에 참석할 것을 권했다.

메시지는 전해졌다. 흰 옷을 입은 여성들의 강렬한 모습을 담은 현장 사진은 무시하기 힘든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흰옷으로 상징적 목소리를 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자.

Tom Williams via Getty Images
민주당 여성 하원의원들은 5일(현지시각)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 흰 옷을 입고 참석했다.

 

1900년대 초반에 영국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던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WSPU)‘은 흰색을 선택했다(어나더 매거진 AnOther Magazine은 이 단체를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한 세력으로 꼽았다). 애초에 흰색이 선택된 이유는 어느 정도 여성적인 동시에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어나더 매거진은 설명한다.

이 단체의 명예 회계 담당자였던 에멀린 페틱-로렌스는 1908년 런던 하이드파크 시위를 준비하면서 이 운동을 상징하고 참가자들을 단합된 세력으로 나타내기 위해 세 가지 색 - 흰색(순수함), 보라색(존엄함), 녹색(희망) - 을 선택했다고 히스토리닷컴은 전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흰색, 보라색, 금색은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단체인 전국여성당(National Women’s Party)의 공식 색상이기도 했다.

어나더 매거진에 의하면 녹색과 보라색은 소규모 행사에서는 사용 가능했지만 큰 집회에서는 흰색이 권장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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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여성 행진(The March of the Women)' 참가자들에게 배포된 가사집. 이 가사집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보라색, 흰색, 녹색이 들어가 있다. 에델 스미스가 가사를 쓴 이 노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에 헌정됐다.

  

수만 명이 참가했던 1908년 런던에서의 시위 이후, 흰 옷을 입은 여성들이 잔뜩 모여있으면 시각적 효과가 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흰색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어나더 매거진에 의하면, 1900년대에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많은 여성들은 흰 옷을 입고 순수하고 여성적인 모습으로 자신들을 드러내면 남성들에게 더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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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멀린 페틱-로렌스(1867-1954)와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는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이끈 두 지도자였다. 1903년 설립된 이 단체는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봉에 섰다. 1908년에 촬영된 이 사진에 두 지도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미국의 여성활동가들도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며 흰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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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의사당 건물 앞에 모여 있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모습.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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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미국 여성권 참정권 운동가들의 모습. 날짜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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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는 한 여성의 모습.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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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페미니스트 앨리스 폴(1885-1977). 전국여성당(National Women’s Party) 대표를 맡았던 그는 성별에 따른 투표권 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9조(1920) 제정 운동을 이끌었으며, 크리스탈 이스트만과 함께 남녀 평등 헌법 수정안(Equal Rights Amendment)을 작성했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다른 많은 유명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 및 여성 인권 운동을 기리는 의미로 흰 옷을 입었다.

예를 들어 1968년에 셜리 치좀은 최초의 흑인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날에 흰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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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뉴욕 제12선거구(브루클린)에서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셜리 치좀(1924-2005)이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 

 

제랄딘 페라로는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할 때 흰 옷을 입었다. 페라로는 미국 주요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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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딘 페라로가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지명을 수락할 때 흰 옷을 입은 것도 유명하다. 그는 여성 최초의 주요 정당 대선후보였다. 선거 당일에 많은 미국 여성들은 흰 옷을 입고 투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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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이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웰스파고센터, 필라델피아. 2016년 7월28일.

 

2017년 1월, 클린턴은 흰 옷을 입고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했다. 트럼프의 여성혐오 전력을 고려했을 때 더욱 의미 깊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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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모습. 2017년 1월20일.

 

2017년에 일부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트럼프의 첫 의회 연설에 흰 옷을 입고 참석했다. 당시 프랜켈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여성들이 지난 세기 동안 만들어낸 놀라운 진보를 후퇴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그 어떤 시도에도 반대”하기 위해 여성들을 단합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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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2017년 2월28일.

 

더 최근의 사례로는 역대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민주당-뉴욕)가 흰 옷 차림으로 취임 선서식에 참석한 바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의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트윗까지 썼다. 그는 “나보다 먼저 길을 닦아준 모든 여성들, 앞으로 올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 흰 옷을 입었다고 적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부터 셜리 치좀까지, 이 운동의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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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과 그의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 선서식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월3일.

 

그리고 5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는 흰 옷을 입은 여성 의원들이 연설 시작 전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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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을 비롯해 흰 옷을 입은 여성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2월5일.

 

이러한 제스처가 사소하고 얄팍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옷이 때로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허프포스트US의 Why Women Wear White, A Brief History Of Political Fashio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