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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주택 우선'(housing first) 정책은 홈리스 문제를 해결했을까?

원룸을 지급하는 정책의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 박수진
  • 입력 2019.02.10 16:45
  • 수정 2019.02.10 23:16
ⓒHuffPost

4년 전, 토마스 살미는 모든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거리에 사는 홈리스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힘들었다. 분노 조절을 하지 못 하고 공격적이 되곤 하는 아버지를 피해 살미는 집을 나왔다. 한동안은 친구 9명의 집을 전전했다. 그리고 십대 후반부터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21세에 홈리스가 되었다.

“정상적인 생활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우울해졌고, 공격적인 성격이 됐으며 항상 화가 났다. 알코올을 남용했다.”

많이 마신 날은 술을 2리터까지 마셨다. 그리고 사고를 쳤다.

“감옥에 간들 무슨 상관인가? 눈 쌓인 추운 바깥에 있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생각이었다.”

어느 날 헬싱키 기차역에서 자고 있던 살미에게 사회복지사가 다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비영리 사회복지 단체 헬싱키디코네스협회(HDI)가 그를 도왔다. 1년 뒤, 그는 HDI가 운영하는 125세대 아파트인 ‘오로라 톨라’에 입주했다.

이제 25세인 그는 자신의 원룸에서 산다. 잡역부로 일하며 삶을 정상 궤도로 끌고 가고 있다.

“내 집에 있으면 아무도 나를 잡으러 오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만약 내가 집에서 춤추고 싶으면, 춤출 수도 있다.”

살미는 이전 입주자가 막 이사했거나 사망한 빈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며 모은 물건들로 인테리어를 했다. 물건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살미는 이전 입주자가 막 이사했거나 사망한 빈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며 모은 물건들로 인테리어를 했다. 물건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HuffPost

살미는 이제 시행 10년을 넘긴 핀란드 정부의 ‘주택 우선’ 프로그램의 수혜자다.

발상은 간단하다.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구 거주가 가능한 집을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싶거나 마약을 하고 싶다 해도 상관 없다. 중독이나 정신 건강 등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한 지원이 이루어지며, 복지 관련 제출 서류 작업을 도와주고 일자리도 알아봐주는 등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핀란드에는 지역 사회 곳곳에 위치한 지정 표준 아파트와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들이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들은 노숙 생활을 오래 한 홈리스들을 위해 새로 지었거나, 수리한 건물들이다. 이들을 위한 기타 생활 지원도 이 건물에서 이뤄진다. 이 중 하나인 헬싱키 구세군빌딩은 원래 250개의 침대를 둔 임시 응급 쉼터였으나, 81세대 아파트로 이루어진 지원 주택 건물로 바뀐 사례다.

홈리스 생활을 접고 이 정부 지원 주택으로 입주하게 되면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대 계약을 하게 된다. 월세는 개인차에 따라 스스로 벌어서 내기도, 비교적 관대한 핀란드 복지 제도 혜택으로 충당되기도 한다.

이 접근법은 효과를 보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홈리스가 늘고 있는 데 반해, 핀란드에서는 줄고 있다. 1987년에는 홈리스가 1만8000명 정도였다. 2017년에는 7112명으로 추산되었으나, 그들 중 거리 또는 쉼터에서 사는 사람은 415명 뿐이었다. 대다수(84%)는 친구나 친척의 집에서 임시로 얹혀 지내고 있었다. 2008년에서 2015년까지 7년 동안 장기적으로 홈리스 상태에 머무는 사람 수는 35% 줄었다.

홈리스 문제를 다루는 유럽 단체 페안차는 핀란드가 홈리스 문제를 “‘구성원 개인의 문제가 사회 문제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 ‘주택 문제이자 기본권 침해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 핀란드 정부는 ‘주택 문제‘와 ‘기본권 침해 문제’ 둘 다 해결 가능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기존의 방법들은 홈리스들에게 머물 집을 제공 받으려면 술과 약을 끊고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거리나 임시 거처에서 지내며 중독을 끊기는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무슨 일만 생기면 다시 술이나 약을 하게 된다. 중독이 원래 그렇다. 그러면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토마스 살미에게 집을 제공한 HDI의 지역 담당자 헬리 아킬라의 말이다. 

응급 쉼터에서 홈리스 주택으로 개조된 헬싱키의 구세군빌딩
응급 쉼터에서 홈리스 주택으로 개조된 헬싱키의 구세군빌딩 ⓒHuffPost

핀란드의 접근법은 결국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의 문제다. 집이 없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이 접근법을 설계한 비영리단체 Y재단의 CEO 유하 코키넨은 “어떤 이유로 홈리스가 되었든, 현재 가장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핀란드 정부의 입장”이라며 ”우리는 홈리스가 되는 주된 이유는 사회 구조에서 온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싱키 남쪽에 있는 도시 에스포의 정부 지원 주택은 호숫가에 있다. 2014년 지어진 33세대 짜리 작은 아파트 ‘바이놀라’에는 홈리스였던 35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는 간호사 8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방식으로 간호 인력이 상주한다. 입주자들을 담당하는 직업 활동 코치와 코디네이터가 있어, 일을 할 수 있고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거리를 주선한다. 요리부터 포장까지 여러 종류의 일자리가 있으며 한 번에 2유로(약 2,500원)가 지급된다.

입주자들은 팀을 짜서 지역 쓰레기 수거도 한다. “지역 주민들이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해졌다며 아주 좋아한다”고 ‘바이놀라’ 운영진 야르코 유라살로가 말한다.

″물론 정부 지원 주택 홈리스 주택이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겪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입주자들은 살면서 다양한 문제를 겪었고, 종종 심각한 경우도 있지만 ‘바이놀라’는 그에 비해 대체로 평화롭다. 유라살로는 입주자들과 직원들이 매주 만남을 갖는 데 비결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주먹다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 후 논의하는 법을 배웠다.”

에스포의 정부 지원 홈리스 주택 '바이놀라'
에스포의 정부 지원 홈리스 주택 '바이놀라' ⓒHuffPost

핀란드의 홈리스 비율이 줄어든 데 대해 국제사회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Y재단의 코키넨은 다른 나라의 정치인과 활동가들 등으로부터 ‘이렇게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사회적 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인의 존재”가 핵심이라고 한다.

현 헬싱키 시장 얀 바포보리는 주택부장관이던 시절 ‘주택 우선’ 방식을 주도했다. 코키넨은 중도우파인 국민연합당 소속 바포보리의 정치 성향이 여기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보수 정치인이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지지하면 여론이 반대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성향의 정치인들이 이후 ‘주택 우선’ 접근법에 찬성했다.

중앙 정부 혼자서 해낸 것도 아니다. 각 도시, 기업, NGO와 수익을 사회사업에 쓰는 국영 도박 기업 베이카우스가 모두 돈을 냈다.

홈리스 ‘주택 우선’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건축비와 임대료만이 아니다. 이들의 생활 지원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핀란드의 정책 설계자들은 이 비용이 홈리스들에게 주택을 제공하지 않았을 때 드는 사회적 비용보다 적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연구 결과 홈리스 1명에게 장기적인 주택을 제공하면 아낄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은 연당 15,000유로(약 1900만원) 정도다. 구체적으로는 병원 응급실 이용, 경찰 출동, 범죄로 인한 사법 서비스 등의 비용들이다. 

'바이놀라' 주택 내부 사진
'바이놀라' 주택 내부 사진 ⓒHuffPost

‘주택 우선’의 방식에 대한 비판도 물론 있다. ”나쁜 선택을 한 사람들이 공짜로 집을 얻어도 되는가?”라는 반발이다. 이에 못지 않게,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통제하지 않고 허락하는 게 중독을 정상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서 HDI의 아킬라는 아래와 같은 점을 지적한다.

“(술이나 약을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술도 약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계속 노력한다. 이건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누구나 머물 곳은 있어야 한다.”

‘주택 우선’의 혜택을 받고 있는 홈리스들 중에서 제도의 헛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혼과 갑작스러운 실직이 겹쳐 홈리스가 된 이리 페카 푸르시아이넨은 지난 2년 동안 헬싱키의 정부 지원 주택 원룸에서 살았다. 은퇴자 주택을 용도변경한 것이었지만, 이리는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집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건물 전체에 곰팡이가 피었고 상태가 정말 안 좋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병에 걸린다.”

처음 입주할 때 그는 이곳이 임시 거처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2년 동안 살고 있는 지금도 언제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세 자녀가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원한다.

그러나 이리 역시 홈리스로 지낼 때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건물은 헬싱키 중심부에 있고, 월세는 331유로(약 42만원)로 인근 원룸 월세 시세의 3분의 1 이하다.

헬싱키 중심부 풍경. 전국 홈리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 헬싱키에 있다.
헬싱키 중심부 풍경. 전국 홈리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 헬싱키에 있다. ⓒHuffPost

‘주택 우선’ 정책의 지지자들도 이 방법에 문제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완벽하진 않을 것이고, 젊었을 때 품었던 꿈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긴 당신의 집이다.” 아킬라의 말이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택 우선’과 비슷한 해결법은 사실 핀란드 외에도 덴마크, 캐나다, 호주, 미국 등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NGO 브레이킹그라운드는 뉴욕주와 코네티컷주에서 4천 세대의 홈리스 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CEO 브렌다 로젠은 홈리스가 살 곳을 얻기 전에 개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비판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어떻게 끼니를 때울 것이며 또 한 번의 추운 겨울밤을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가장 온당하고 인도적이며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은 홈리스를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또다른 미국의 NGO ‘홈리스 근절을 위한 국민 연합‘의 CEO 난 로먼은 ‘주택 우선’ 접근법이 미국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핀란드의 경우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워낙 큰 나라인 데다 정치적 맥락이 다르다.

“홈리스를 우선 집 안으로 들이는 전략은 효과가 있다. 즉,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규모로 대처할 것이냐’다. 핀란드는 일반 국민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있고, 전국적인 규모로 접근해 성공했다. 미국은 아직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살미는 자신의 원룸을 '보호구역'이라고 말한다
살미는 자신의 원룸을 '보호구역'이라고 말한다 ⓒHuffPost

효과를 목격한 핀란드에도 아직 해결 과제는 있다. 예전과는 다른 이유로 사회안전망이 필요해진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의 인구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아킬라는 홈리스 중 여성과 청년층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현재 핀란드 홈리스의 23% 정도는 여성이다. Y재단 보고서에 의하면 주 원인은 가정폭력과 약물 남용이다. 주택의 수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 청년들은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있다.

“우리는 홈리스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 했으며 오로지 일부만 해결했다”고 말하는 비영리단체 VVA의 산나 티볼라는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응급 쉼터를 주요 해결 정책으로 삼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핀란드의 ‘주택 우선’ 정책은 살미의 삶을 바꾸었다. 그에게는 이제 욕심과 목표가 있고, 배관공이 되겠다는 계획도 있다. 술을 끊지는 않았지만 주말에만 마시고 있다. 아직 정신건강 문제가 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고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는 더이상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아파트는 내 보호구역이다. 집을 잃기 전에는 그 의미가 얼마나 큰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리에 사는 3년 동안 나는 인생의 작은 것들이 행복을 준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는 것, 냉장고에 나중에 먹을 빵이 있다는 것. 이런 작은 것들, 정상적인 것들 말이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의 How Finland Solved Homelessness를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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