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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걸이 팩트체크

미신 숭배 코리아

ⓒhuffpost

어머니가 금목걸이를 보냈다. 묵직한 목걸이다. 어머니는 전화로 말했다. “너는 몸에 금을 지녀야 돈을 잘 벌 수 있대. 항상 차고 다녀야 해. 잠잘 때도 차고 자라.” 나는 순간 멍해졌다. 사실 나는 사주나 점을 잘 믿지 않는다. ‘잘’이라고 쓴 이유는 사주나 점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사주나 점은 뭐 하나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없었다. 그러니 몸에 금을 지닌다고 돈이 들어올 거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내온 금목걸이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혹시, 정말로, 만약에, 이 금목걸이가 돈을 불러온다면?

새해에도 끈질긴 미신

한국인은 해가 시작되면 토정비결을 본다. 힘든 일이 생기면 점을 보러 간다. 집을 사거나 지을 땐 풍수지리를 참조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땐 굿을 한다. 사무실에 음식과 돼지머리를 차려놓고 절을 한다. 더 자잘한 미신들도 있다. 시험 치는 날에는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지 않는다. 4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에 F로 표시한다. 2019년이 왔지만 한국인은 도무지 미신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풍수 논쟁’을 불러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보류를 발표하며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의아한 기자들이 근거를 묻자 그는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만 했다. 그 수많은 근거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유 위원이 잠꼬대 같은 소리로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나는 도무지 자유한국당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는 인간이지만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중앙일보>는 조재범 성폭행 사건을 관상으로 풀이했다. <중앙일보>는 백재권 관상학 강사의 주장을 근거로 ‘순한 인상 뒤에 숨겨진 폭력성에 경악’이라는 기사를 냈다. 이 관상학자는 조재범 코치가 순박한 인상을 지녔다며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지도하는 코치, 감독, 교수, 선생의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게다가 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어릴 때의 폭력은 평생의 고통이다. 그 상처가 얼굴에 투영되기 때문에 관상을 보면 잡아낼 수 있다”고도 했다.

유홍준의 관상은 무얼 말할까

두 가지 에피소드는 한국이 아직까지 미신이 지배하는 국가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국가의 일을 맡은 위원이 풍수지리를 공개적인 석상에서 논한다. 주요 일간지가 중요한 사건을 두고 관상과 운명을 이야기한다. 나는 역으로 두 사람에게 제의하고 싶다. 유홍준 위원은 <중앙일보> 건물의 풍수지리로 왜 그 유력 신문이 관상 따위를 토대로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는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유홍준 위원이 대체 어떻게 국가의 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풍수지리를 말할 수 있는지 관상에서 캐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금목걸이를 걸고 있다. 올해에는 제발 좀 돈이 들어오길 빌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조차 이 한국 고유의 사주라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간다. 올해 말에도 이 칼럼을 계속 쓴다면 금목걸이를 걸기 시작한 이후 얼마나 자산이 불어났는지 지면에 공개할 생각이다. 기대해주시길.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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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