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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02일 17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07일 10시 16분 KST

나르시시즘으로 본 지구촌 지형

현재 최강대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예상과 달랐다

글을 읽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해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는 세계 역사에 몇%를 기여했다고 생각합니까?”

세계사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0%, 모든 사안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100%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를 백분율(0~100%)로 어림잡아 놓은 뒤 머리 속에 기억해 두자.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난 뒤 자신이 맨 처음 떠올린 백분율을 이 글에 소개하는 각 나라 사람들의 답변과 비교해보자. 이렇게 운을 떼는 이유는 한 국제공동연구진이 내놓은 국가 나르시시즘의 분석 결과와 비교해보라는 뜻에서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신화에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멋진 얼굴에 넋이 나가 몸살을 앓다 연못에 빠져 죽어버린 미소년 나르시소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기도취나 자기애(自己愛)를 뜻한다. 보통은 개인의 행동심리 특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지만 집단 차원에서도 나르시시즘은 얼마든지 나타난다. 과도한 애국심, 국가주의에도 이런 나르시시즘적 요소가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에코와 나르시소스‘(1903). 

 

 

합산하니 1156%...11배가 넘는 과장률

원래 이번 연구는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미국 예외주의′ 인식을 확인해 보려는 데서 시작됐다. 연구진은 미국 예외주의가 공식화한 건 1961년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한 연설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미국을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에 비유하며 미국이 세계의 신호등이 돼야 하는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후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 지도자들의 정책 결정에서 조타수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미국인들도 과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연구진은 35개국 대학생 약 7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는 세계 역사에 얼마나 기여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0~100%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답변을 분석한 결과, 세계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조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장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각자가 정확한 답변을 한다면 이론상 합산할 경우 100%에 가까운 수치가 나와야 한다. 세계 국가 수가 거의 200개에 이르므로 나라별 평균치는 0.5%여야 한다. 하지만 조사 대상 35개국 학생들의 대답만 합산했는데도 결과는 무려 1156%로 나왔다. 그만큼 다수의 사람이 자국의 세계사 기여도를 부풀려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러시아 61%로 가장 높고, 스위스 11%로 가장 겸손

한국 22% `밑에서 7번째’, 미국은 30%로 중간 정도

그런데 나라별 편차가 11~61%로 무척이나 컸다. 가장 겸손한 이들은 국제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온 스위스의 학생들이었다. 스위스 학생들의 평균치는 11%였다. 이어 노르웨이(12%) 뉴질랜드(18%) 헝가리(19%) 네덜란드(20%) 등이 낮은 비율을 보였다. 한국 학생들의 대답은 22%였다. 밑에서 7번째였다.

반면 20세기 초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하고 냉전 시대의 양대 축을 이뤘던 러시아의 학생들은 자국의 세계사 기여도를 61%로 높게 봤다.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러시아는 강한 국가를 추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년째 집권하고 있다. 이어 영국(55%), 인도(54%), 홍콩(51%), 말레이시아(49%), 이탈리아(44%), 중국(42%) 차례였다.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자국의 기여도를 매우 높게 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픽사베이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새겨넣은 러시모어산의 큰바위얼굴

 

2차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하는 미국의 학생들은 몇%로 답했을까? 연구진의 예상을 밑도는 30%였다. 미국 지도자들이 역설해온 미국의 역할과 비교하면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중간 정도로, 전체 평균 33%와 엇비슷했다. 연구진은 미국이 젊은 국가라는 점을 언급했을 뿐, 그 배경에 대해 분석은 하지 않았다. 미국 대학이 다양한 국가 출신들로 이뤄져 있다는 현실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일본은 34%, 독일은 33%로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아쉬운 건 국가적 자부심이 큰 프랑스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상대적 비교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나르시즘의 정도를 문화권별로 살펴본 결과도 흥미로웠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지배하는 개신교권 유럽국가들이 가장 낮은 비율(19%)을 보였다. 가톨릭권의 유럽국가와 중남미, 유교권 동아시아, 영어권 국가들은 31~32%대를 보였다.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건 정교회나 옛 공산권 유럽, 남아시아, 이슬람권 국가들로 40% 안팎이었다. 또 집단주의가 강하고 권력거리가 높은(high power distance), 즉 권력의 불평등에 순응하는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더 강한 국가 나르시시즘을 보여주는 경향을 띠었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들은 그 정도가 약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차이의 결정력은 5%에 불과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익숙한 것에 의지하는 `가용성 편향’의 결과

연구진은 이 결과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연결시켜 봤다. 예상대로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높을수록 세계사에 대한 기여도를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이 연관성 역시 나라별로 편차가 컸다. 오스트리아나 중국 같은 나라에선 세계사에 대한 기여도와 국가 정체성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도 여기에 속했다. 러시아, 이탈리아, 호주 등에선 상대적으로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과장된 평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연구진은 설명 가능한 여러 가지 가설 중 하나로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heuristic)을 들었다. 가용성 편향이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경우 신중하게 답을 찾아내기보다는 당장 머릿속에 잘 떠오르는 것에 의존하거나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가설을 이번 조사에 적용해 보자. 자국의 세계 역사 기여도를 계산하려면 분모와 분자를 알아야 한다. 분모는 세계의 역사, 분자는 자국의 역사다. 그런데 분모에 대한 정보는 분자에 대한 정보보다 극히 적다. 자신들이 아는 역사 정보는 대부분 자기 나라 역사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자국의 역사 비중, 즉 기여도가 자연스레 중요하게 부각된다.

물론 이번 조사는 과학적 결론을 내리기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질문으로 국가적 나르시시즘을 측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다. 나라별로 한 대학의 학생들한테만 물어본 방식도 조사의 대표성과는 거리가 멀다. 또 답변 내용이 건강한 자존감의 표현인지 진짜 나르시시즘인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망상이 아닌, 다른 세계관의 표현” 인정을

그러나 이번 조사는 사람들 사이에 자기중심적 편향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연하게 보여줬다. 연구진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망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특히 협상가들의 경우, 심지어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자국과는 크게 다른 협상 대상국의 신념과 인식,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그 예로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던 때 일어났던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기억이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픽사베이
지나친 나르시시즘은 타인에게 큰 피해를 준다. 영화 속의 나치군 행진 장면. 

 

하지만 지나친 자기애나 애국심이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독일의 나치는 이를 역사에서 참혹한 방식으로 보여줬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학술지 `기억인지응용연구저널’(Journal of Applied Research in Memory and Cognition) 2018년 12월호에 발표됐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