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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거는 기대

커피피커,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④

 

알바를 기다린다. 오겠지? 설마, 안 올까.

알바몬에 공고를 올리고, 결제를 한다. 시급이 센 편이라 새벽부터 지원자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경력이 6개월 이상이고 20대 중후반의 몇 분에게 연락해 나에게도 힘든 면접을 수어 번 본다. 저녁 시간에 일하는 거라 남자를 뽑고 싶지만 카페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분들은 거의 다 여자분들이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것은 오래 일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 그녀의 사정이다. 당장의 열정 같은 건 필요 없다. 돈을 버는 일은 언제나 현실이다. 이번에는 바로 옆 파스쿠찌에서 지난주까지 일했다는 대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맘에 들었다. 집도 가깝고 학교도 1년 넘게 남았고 휴학 계획도 없다 한다. 근처에서 알바를 하던 분이니까 일을 시작해도 일상에 큰 변화가 아니다. 경력도 충분하니 내가 잘만 가르치면 된다. 별 일없이 1년만 일해주면 좋겠다. 사실 1년도 욕심인 걸 안다.

이제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다. 같이 일하자고 문자를 보내고, 그녀의 첫 출근을 기다리는 며칠. 둘째 날 즈음까지 그녀가 제대로 출근하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이틀 치 급여를 포기하면서까지 갑자기 그만두진 않겠지. 이제 당분간은 별 걱정 없겠지.

 

 

실제로 무단결근을 하고 그대로 일을 그만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30대 중반에 아이가 둘 있는 주부였다. 나보다 한두 살 나이가 많았지만 막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며 자신의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와 비슷한 꿈의 반짝이는 눈에 넘어갔다. 매일 집안일을 하니까 청소도 손에 익을 거고 자기 카페를 하고 싶다니 일도 열심히 배우실 것 같았다. 하지만 한두 달이 지나면서 몸이 자꾸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리면 한 시간에 오십 개씩 샷을 내려야 할 때도 있는 카페였다. 온통 서서 하는 일이라 다리가 퉁퉁 부을 만큼 힘든 일이 맞았다. 꿈같이 시작했을 카페 일은 분명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을 거다. 자꾸 몸이 아프다던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도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었다. 무단결근임을 확신했을 때에도 나는 몇 번이나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맘 편히 쉬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날 저녁에, 자기가 자꾸 힘들다고 하니까 남편이 그만두라고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아프다고 지각을 했던 어느 날도 사실은 그냥 핑계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딴 식으로 일을 그만두면서도 그녀가 남편과 가정을 앞세운 것이 무엇보다 화가 났다. 그녀의 무책임한 태도는 돈을 열심히 벌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뒤에 숨을 남편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내게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점심때에만 백 잔씩 팔 때도 있는 여름 성수기였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뽑을 때까지 엄마가 며칠 동안 점심장사를 도와주셔야만 했다. 얼음 컵 담는 일을 수백 번하고 엄마는 원래 약하던 팔꿈치 연골이 다 닳아 한동안 고통스러운 연골 주사를 맞으러 다니셔야 했다.

화가 많이 났다. 무단결근과 상관없이 사장은 노동자에게 일한 만큼 돈을 주어야 했다. 열흘 정도 애를 태울까 하다 그냥 해결하고 잊는 게 나에게 나을 것 같아 바로 돈을 보내줬다. 다음번에는 제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근로계약서에 ‘무단결근을 하는 경우에 3일 치 임금 삭감‘, ‘위약금’ 등의 문구를 넣어보았지만 법적 효력이 없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근로계약서는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를 위해 쓰는 것이다. 무단결근도 어떠한 종류의 횡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 힘이 약한 건 돈이 많지 않은 자본가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방법으로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그만두고 엄마마저 아프자 나는 이 일이 너무 힘든 일인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하는 일인데. 나도 무리하고 있는 걸까. 힘든 일임을 알아서 최저임금보다 천 원씩은 더 주고 있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걸까. 무엇이 그녀를 도망치게 한 걸까.

다행히 지금은 그녀가 주부여서 무책임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힘든 아르바이트일수록 경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1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 분은 역시 나보다 나이가 살짝 많고 아이가 둘인 주부지만 레스토랑, 와인바와 카페 매니저 경력이 아주 긴 분이다. 이전에 바에서 일하는 남자분이 일을 잘해 준 적이 있어 솔깃했다. 주부라서 망설이는 나에게 꼭 일하고 싶다고 설득하는 그녀의 말을 반쯤 속아 넘어간다는 마음으로 믿어보았다. 깔끔한 성격도 커피에 대한 열정도 신메뉴를 나보다 더 열심히 팔아주는 마음들 다 그녀에게 고맙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에 생길 뻔했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 것이 가장 고맙다.

이 일이 힘든 걸까 고민을 하게 되면서 아르바이트생과 일할 때마다 손님 없을 땐 앉아서 쉬어라, 팔이 아프면 내가 샷을 내리겠으니 괜찮냐고 묻는 게 습관이 되었다. 누가 사장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구분이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더 열심히 일했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이 한번 그만두면 알바몬에 내야 하는 돈, 메뉴와 동선이 익숙해질 때까지 드는 교육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비용이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사장이 눈치 보는 게 이상해 보여도 결국엔 한번 뽑은 아르바이트생이 편하게 그리고 오래 일하는 게 나에게 이득이다. 다 계산된 행동들이다.

도망치듯 그만뒀던 아르바이트생도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아르바이트다. 힘들면 도망칠 수도 있지. 그날따라 눈을 뜨자 너무나도 일하러 가기 싫었을 거고 당장 오늘부터 나가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남편의 말이 달콤했을 거다. 아르바이트 하나 그만두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서글픈가. 나는 고용자일 때의 마음과 노동자일 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어느 순간에도 같은 잣대로 말을 하고 행동하고 싶었다. 그녀에게도 그녀의 인생이 중요했을 거니까,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거니까. 그녀가 무책임한 건 사실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욕하고 싶지도 않았다.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가라앉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렇게 밉지 않다.

처음 아르바이트생을 뽑았을 때에는 내 마음만큼 일하지 않는 그에게 화가 났다. 바쁜 시간 나와 동선이 맞지 않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일하지 않는 그들을 닦달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내 손발이 되어주길 원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걸 안다. 그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아니, 어떤 타인에게도 요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생각하는 프로세스와 속도가 다르다. 누구든지 이 공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나보다 환경과 동선에 능숙할 순 없다. 지금은 가장 바쁜 시간에도 일하시는 분이 가장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동선을 피해 주고 손을 거들어준다. 너무 바쁘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지시를 내리려고 노력한다. 무언가 개선했으면 하는 점은 며칠간 고민해서 대화하고 월급에 영향을 미칠 변화는 최소 2주 전에 말해서 생활에 대비를 할 수 있게 한다. 나라면 받고 싶은 대우를 진짜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다.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되었습니다. 아울러 이전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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