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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렉시트 협상에 또다른 장애물이 등장했다. 지브롤터다.

영국 정부는 "지브롤터는 식민지가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 허완
  • 입력 2019.02.01 15:18
이베리아 반도 끝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영국은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틈타 이곳을 점령한 후,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1713년에 공식 양도 받았다.
이베리아 반도 끝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영국은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틈타 이곳을 점령한 후,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1713년에 공식 양도 받았다. ⓒJORGE GUERRERO via Getty Images

그동안 영국 브렉시트 협상의 최대 장애물로 작용해왔던 건 바로 ‘아일랜드 백스톱’이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이 부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이 장치를 두고 영국과 유럽연합(EU)은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다. 

어쩌면 막 새로운 장애물이 등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지브롤터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새 법안에 ”지브롤터는 영국 왕령 식민지(a colony of the British Crown)”라는 문구를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질서 있는 브렉시트를 어렵게 하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3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식민지’라는 규정에는 마땅히 원래 주인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EU의 이같은 움직임은 스페인 정부의 ‘작품’이다. 스페인은 300여년 전 영국에 점령된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해왔으며,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을 지브롤터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기회로 삼아왔다. 

EU는 설령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노딜 브렉시트)하더라도 영국 국민들에게 EU 무비자 입국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불과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법안 마련이 지연되고 있는 배경에는 스페인 정부의 요구에 따른 EU 내부의 지난한 협상이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지브롤터-스페인 국경에 나란히 걸려있는 영국, 지브롤터, 유럽연합 깃발들. 2018년 11월30일.
지브롤터-스페인 국경에 나란히 걸려있는 영국, 지브롤터, 유럽연합 깃발들. 2018년 11월30일. ⓒNurPhoto via Getty Images

 

이에 따르면, 스페인은 만약 영국이 EU에 브렉시트 연장이나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지브롤터에 대한 양보를 더 받아내야 한다고 회원국들을 설득해왔다. 이같은 ”끈질긴” 로비는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FT가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이 법안 각주에는 스페인의 요구가 반영된 문구가 삽입됐다. ”지브롤터는 영국 왕령 식민지다. (...) 지브롤터 통치권을 놓고 스페인과 영국 사이에 논란이 있으며, 이 영토에 대한 해법은 유엔 총회의 관련 결의안과 결정을 고려해 도출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유엔 총회의 관련 결의안”은 1960년대에 유엔이 채택한 일련의 결의안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지브롤터를 ”탈식민지화(decolonisation)” 대상인 ”비자치지역(non-self-governing territories)”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스페인이 반환을 요구해왔던 핵심 근거 중 하나다.

애초 프랑스는 지브롤터에 관한 문구를 넣자는 스페인의 요구를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더 강한 표현, 즉 영국 입장에서는 더 도발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문구를 집어넣는 대신 유엔 결의안에 대한 언급은 완화하는 쪽으로 타협점을 찾았다고 FT는 전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나름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엔의 비자치지역 목록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뉴칼레도니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줄곧 이 지역의 독립 요구를 거부해왔다.

지브롤터 시내에 영국의 상징인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져 있다. 
지브롤터 시내에 영국의 상징인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져 있다.  ⓒPablo Blazquez Dominguez via Getty Images

 

만약 EU의 이 법안이 공식 승인되면 스페인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관계를 규정할 EU의 관련 법안들에도 똑같은 문구가 들어가리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지브롤터를 자국의 독립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영국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지브롤터는 식민지가 아니며, 그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반발했다. ”지브롤터는 영국 가족의 완벽한 일원이며, 영국과 성숙되고 현대적인 헌법적 관계를 맺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이것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EU 관계자들은 지브롤터 자치정부가 2017년 유럽사법재판소 소송에서 지브롤터는 영국과 ”분리된, 별도의” 영토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고 FT는 전했다. EU의 도박 관련 법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지브롤터는 별도로 다뤄야 한다며 자치정부가 근거로 삼았던 게 바로 유엔의 비자치지역 목록이라는 것.

일찍이 스페인은 영국-EU의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지브롤터를 영국의 EU 탈퇴와 별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브렉시트의 예외로 취급하지 않으면 영국-EU의 합의안을 승인할 수 없다고 위협한 끝에 영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지난 11월 타결된 브렉시트 합의안에는 브렉시트 이후 진행될 영국-EU의 미래 관계(무역 등) 합의에 지브롤터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지브롤터에 대해서는 별도 합의가 체결되어야 하며, 이 때 반드시 스페인의 ”사전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 영국 여야 정치인들은 테레사 메이 총리를 격하게 성토했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활주로'로 유명한 지브롤터 공항에 영국항공 여객기가 착륙하는 모습.
'도로를 가로지르는 활주로'로 유명한 지브롤터 공항에 영국항공 여객기가 착륙하는 모습. ⓒAllard1 via Getty Images

 

스페인은 브렉시트를 계기로 지브롤터 통치권을 영국 정부와 나눠 갖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브롤터는 브렉시트와 관련이 없다’고 못박아 둘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EU를 떠나는 건 영국 본토일 뿐, 지브롤터는 영국과 별도의 지위를 갖는 영토라는 논리를 구성해야 한다. 

반면 영국은 지브롤터에 자결권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강압적인 식민지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2002년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지브롤터 주민 98.9%는 스페인으로의 이양이나 스페인의 공동주권 행사를 반대했다. 1967년 주민투표에서도 99.6%가 영국 잔류를 선택했다.

다만 과거의 유엔 결의안은 지브롤터 주민들은 점령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정착민(settlers)에 불과하며, 탈식민화 여부는 이들의 의사와는 별도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한다. 

이베리아 반도 끝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영국은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틈타 이곳을 점령한 후,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1713년에 공식 양도 받았다. 이후 스페인은 줄곧 탈환을 시도했으나 영국의 거센 저항을 넘지 못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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