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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이 남긴 것

과잉불안의 끝에 ‘강준상’이 있다.

ⓒhuffpost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회 방영이 하루 남았다. 전국민을 드라마평론가이자 (결말) 추리 탐정으로 만든 <스카이 캐슬>. 입시경쟁을 둘러싼 상위 0.1% 부유층의 이야기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시청자들이 두달을 매달렸다. 드라마를 통해 ‘의사 집안’이라고 흔히 쓰이던 말은 ‘의사 가문’이라는 금테 두른 듯한 단어로 격상됐고 그중에서도 ‘서울의대’는 노벨의학상보다 휘황찬란한 트로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수십억원짜리 입시 코디를 붙여도 입학이 힘들다는 서울의대는 누가 들어가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서울의대생이 본 스카이 캐슬’이라는 유튜브 동영상까지 나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2019학년도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이 서울의대에 수석입학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중학교 때 학업 매진은 커녕 병상에서의 시간이 더 길었던 백혈병을 앓았고 헬리콥터맘은커녕 식당일로 바쁜 어머니 아래서 사교육이라야 인터넷강의 수강이 전부였다는 소년의 뿌듯한 성공 스토리다. 서울의대를 둘러싼 두개의 이야기, 하나는 허구이고 하나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전자인 허구다.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와는 정반대로 입시 코디를 문의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 실제 입학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원을 끊고 인강 정도만 시키자고 마음을 바꾼 사람은 한명도 없다. 드라마를 보면서 역시 학원 뺑뺑이만으로는 역부족인 건가 고민에 빠진 엄마들이 진짜 서울의대 입학생 이야기에는 ‘어차피 공부 머리는 타고나는 거’라고 간단히 정리해버린다.

왜 무리하지 말라는 ‘진짜’의 이야기에는 코웃음 치면서 더 달려야 한다는 ‘가짜’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일까. <문요한의 마음 청진기> <스스로 살아가는 힘> 등을 쓴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로 ‘과잉불안’을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조절하기 힘들 정도의 불안감 속에서 살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불안에 대처하려고 하는데 각기 다른 대처법에서도 공통된 특징은 과잉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불안은 남들만큼 하는 걸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학원 뺑뺑이를 돌면서도 잠을 줄여가며 학원을 추가하거나 코디를 붙이는 건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놓아버리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하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불안과 그로 인한 과잉행동, 과잉양육은 ‘서울의대는 이렇게 가는 것’이라는 사기꾼의 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일지언정 ‘서울의대를 이렇게 입학했다’는 경험자의 말은 무시하는 지경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JTBC

과잉불안과 과잉양육의 끝에 ‘강준상’(정준호 연기)이 있다. 드라마에서 그는 자신의 딸인 줄 몰랐던 혜나를 응급실에서 쫓아냈다는 사실에 가책을 느끼고는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운다. 엄마가 시킨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의대에 갔고, 엄마가 병원장 하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나이 오십줄에 든 ‘사회지도층 인사’가 내 인생은 뭐냐고 아이처럼 우는 장면이 기괴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사실 그는 우리 같은 과잉양육 사회에서 놀랄 게 없는 인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서울의대 또는 스카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만 경주마처럼 달려온 이들이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는 회피형 인간으로 자라는 건 당연한 결과다.

결론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병리화된 교육경쟁의 메시지가 남기보다는 상위 0.1%의 입시 비법만 폭로된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수학이나 영어 학원처럼 입시 코디(컨설팅)가 흔해지면 또 이런 주제의 드라마가 나와 우리의 불안감을 뒤흔들지 않을까? “쓰앵님~ 이제 코디로는 안 될 거 같은데, 좋은 비법 없을까요?”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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