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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30일 16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30일 16시 57분 KST

로마(ROMA) - 필름에 담긴 작은 역사

완주를 도와줄 5가지 포인트를 정리했다.

huffpost

“거시적 인류 역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수많은 다양한 개인의 삶의 역사가 존재할 뿐…” - 칼 포퍼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로마(ROMA)’에 쏟아지는 관심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멕시코 원주민 가정부가 주인공인, 영어 한마디 안 나오는 흑백 영화가 올해 91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 후보로 지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카데미 시상식이 한 달이나 남은 시점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남기는 이유는 ‘로마’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 역사를 쓰는 순간부터 폭포수처럼 쏟아질 비평 속에 내 글이 묻힐 것을 우려함이다. 스포일러?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걱정 마시라. 2시간 10분 동안 펼쳐지는 흑백의 정적이거나 지루한 롱테이크 화면에 담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끝까지 완주하는데 도움을 줄 테니까.

1. ‘로마’는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는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영화이다. 쿠아론 버전의 시네마 천국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영화 전편에 걸쳐 ‘마름모’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필름을 상징한다.(마름모가 몇 번 등장하는지 세어보면, 끝까지 완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이다. 나는 근육질 여자 주인공이 변태 남자들을 통쾌하게 때려눕히는 것은 바람직한 여성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여성영화는 ‘남성’이 공감해야 한다. 이 영화 속 남자들은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나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남자인 내가 봐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 저런 놈들 있어.)

이 영화는 ‘그땐 그랬지’ 류의 영화이기도 하다. 71년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중산층과,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비되는 정치적 혼란기를 그린다. 태평양 반대쪽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보면 묘한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아, 다들 그땐 그렇게 살았구나.

로마의 수평적 롱테이크는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2. ‘로마’는 비주얼 마스터피스이다.

‘그래비티’로 쿠아론의 작품세계에 입문한 사람은 ‘도입-전개-갈등-해소’라는 전형적 할리우드 문법을 벗어난 전개에 실망감을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은 화면의 아름다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영화는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촬영상 후보에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전속 촬영기사(?)인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아닌, 쿠아론 자신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사연인 즉, 스케줄 때문에 치보(루베즈키의 어릴 적 별명)의 참여가 어려워지자, 본인이 직접 촬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촬영 스태프와 언어적 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치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전설적인 롱테이크(‘그래비티’의 오프닝과 ‘칠드런 오브 맨’의 전투장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로마’의 롱테이크는 사용 목적이 전작들과 전혀 다르다.

전작들이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1인칭 롱테이크를 활용한 반면, ‘로마’에서 사용되는 평면적 롱테이크(‘올드보이’의 도끼 격투신을 떠올리자)는 관객이 화면 속에 함께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영화는 쿠아론이 자신을 위해 만든 ‘타임머신’이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게 우리에게도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자고 손짓을 하고 있다.

3. ‘로마’는 정치적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영화 ‘1987’을 떠올리자)를 창밖의 장면으로 처리할 만큼, 이 영화는 철저히 개인의 시선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멕시코 원주민 가정부이다. 그녀는 자신이 모시는 백인 주인집 가족과 인종적으로 명백히 구분된다. 주인집 부인이 주인공을 가족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현실의 역사는 그들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1970년대 부정부패, 80년대 경제위기, 90년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으로 멕시코 경제는 완전히 붕괴한다. 자신들이 모시던 ‘백인 부잣집’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백인 부자 국가’를 찾아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야 했다.(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은 값싼 노동력의 수입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호황을 누린다.)

이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 수상 또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면, 굴곡의 삶을 살아온 불법 이민자들은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셧다운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이민자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해온 트럼프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펀치가 될 것이다.

최근 나온 ‘영화 ‘로마’ 배우가 미국 비자 발급 거부당한 사연을 털어놨다’는 기사는 이미 정치적 공세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야리트사 아파리시오와 알폰소 쿠아론 감독)

4. 새로운 영화 자본의 도래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면, 전통적 영화 스튜디오가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OTT·Over-The-Top)가 제작한 첫 번째 작품상으로 기록된다. OTT의 아카데미 입성은 이미 시작되었다. 2017년 케이시 애플렉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아마존이 제작했다.

OTT가 제작한 두 작품의 공통점은 대중 평점이 극과 극을 달린다는 사실이다.(별 5개 아니면 1개) 기존 영화 제작 환경에서는 작가주의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영화사는 영화 한편 당 손익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흥행공식으로 감독을 압박한다.

결국 제작자는 말 잘 듣는 신예 감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값도 싸다.) 하지만, 영화 한번 찍으면 신예 감독 딱지가 떨어지고, 그 뒤에 예비 신예 감독들이 말도 안 되는 제작 환경을 견디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풀빵처럼 찍어내는 국산 영화를 돈 내고 볼 이유가 없다. 작년 한국 영화 성적이 최악이라는 기사를 보고 내가 놀라지 않은 이유다.

5. 예술과 자본의 새로운 동거

혹자는 작가주의 작품은 저예산으로 찍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로마’는 흑백영화로 찍어서 저예산 영화처럼 보이지만, 결코 작은 영화가 아니다. 온라인 스트리밍 공룡들의 비지니스 모델은 가입자 방식이다. 그들은 독점 콘텐츠로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재능 있는 예술가’에게 백지 수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로마’가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 일부 영화인들은 넷플릭스 광고효과를 준다는 이유로 비난을 퍼부었다.

예술가의 의무는 자신의 치열한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은 예술가들이 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게 왜 비난 받을 일인가?

나는 오히려 OTT가 던진 백지수표를 손에 쥔 ‘거장’의 작품이 나태와 자만으로 채워진 것을 목격할 때 슬픔을 느낀다. (아무도 그 작품이 졸작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두 배로 슬프다).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로마’는 아카데미 수상 여부와 별개로, 새로운 문화 자본의 시대에 예술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