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커피랑 맥주는 소확행이니까

커피피커,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③

나는 B양이 음악 선곡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 이런 곡을 어디서 찾아 듣는 거냐고 묻게 되는 그녀의 재즈 취향이 사랑스럽다. B양의 남편과 함께도 좋지만 단둘이 있을 때만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아서 일 년에 몇 안 되는 그 시간은 왠지 항상 아쉽다. 툭 하고 놀리고선 농담이었으니 기죽지 말라고 몇 번이나 사과해주는 것도 좋고 그래서 나도 덩달아 그녀에게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좋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B양과 천천히 취향을 발전해나간 편인 나는 그래서 아주 천천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아직도 ‘어? 너도 차 마시는 걸 좋아해?’라며 서로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곤 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타향살이하는 동창들 중에서도 유독 B양과 오래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비슷한 구석이 겉으로 보기보다 많은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한 두 사람과의 깊고 오랜 유대를 원하는 것, 조용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아 오던 각자의 취향들, 밴드를 하면서 또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을 즐겨오던 나름의 방법들.

카페 이야기로 돌아오면, 두 달안에 카페를 오픈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급한 것은 디자이너였다. 카페를 한다면서 디자이너가 왜? 싶을 수 있지만 잘 나가는 카페는 전직 디자이너나 광고회사 출신이 차렸다던가 하는 곳이 많다. 원두 정기배송으로 눈여겨보던 빈브라더스가 대표적이었는데, 커피맛은 둘째치고 지금도 콜드 브루 패키징을 보면 너무 예뻐서 빈병이라도 하나 갖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카페랑 커피 패키징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나는 커피와 맥주가 비슷한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부를만한 일상적이고 작은 소비 단위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개인의 취향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브랜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커피든 맥주든 잘은 몰라도 많이들 마신다. 스페셜티 원두나 에일 맥주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커피나 맥주가 점점 다양해지고 맛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건 알겠다. 내 취향이 어떤지 기꺼이 도전할 의향이 있어, 이런 것이야말로 내 일상의 행복이니까!

잘 모르는 소비자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있어 보여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뿐이면 몰라도 원두 정기배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꿈을 가지고 있던 내게 브랜딩을 맡길 디자이너는 중요했다.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최소한 나의 부족함은 알았기에 가장 가까운 디자이너인 B양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B양아, 살려줘...

명조체로 비교적 쉽게 ‘반차’ 간판을 만들려고 하다 커피피커로 옮겨가자 만들 것이 너무 많아졌다. 우선 폰트 콘셉트부터 잡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시크 모던 깔끔하면서도 차갑기보다는 좀 귀여운 느낌 어떨까? 철없는 고객의 요구에도 B양은 프로답게 여러 가지 폰트와 간판들을 보여주며 내 취향을 찾아가려 도와줬다. 손으로 직접 써보기도 해 보고,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의 폰트 홈페이지에 가서 coffee picker를 수십 번 써보며 고통에 시달렸던 이 부분은 살짝 넘어가자. 가장 어려웠던 로고 만들기가 완성되자 스티커 네 종류에 명함, 쿠폰에 홀더, 텀블러까지 촥촥 완성되었다.

가까운 사람과 일하면 안 된다는 조언이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싫은 소리 먼저 안 하는 그녀의 기분을 짐작하느라 나는 나름 부지런하게 그녀가 시키는 데로 핀터레스트도 열심히 찾고 그림도 그려보고 그녀의 사무실에도 귀찮을만치 왔다 갔다 했다. 재밌는 것은 여러 가지 대안들을 볼수록 나는 점점 내 심리안에 절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가 예쁜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어떤 결정도 혼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페인트칠 벽돌 하나하나까지 응, 이뻐, 응, 이건 이게 더 나은 듯, 하고 흔들림 없이 길을 안내해준 B양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B 양, 언제든지 놀러 와, 이 카페 지분의 1/4 정도는 언제나 네 것이야(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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