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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을 구해준 가족과 다시 만났다

  • 이원열
  • 입력 2019.01.29 11:38
  • 수정 2019.01.29 11:43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샬럿 아델만의 삶에는 반전이 가득하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난 덕분에 아델만은 미국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몬트리올에서 몇 년을 지낸 아델만은 현재 아들, 딸, 두 손주와 함께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살고 있다.

이제 86세의 노인이 된 그에게 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그의 생명을 구해준 가족을 재회한 것이다.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한 건, ‘페이스북’이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일어났다.” 아델만이 허프포스트 캐나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아직 프랑스 억양이 남아 있다.

체크 무늬 옷을 입고 있는 왼쪽 소녀가 샬럿 아델만, 맨 앞의 소년이 알랭 콰트레비유다.
체크 무늬 옷을 입고 있는 왼쪽 소녀가 샬럿 아델만, 맨 앞의 소년이 알랭 콰트레비유다. ⓒCHARLOTTE ADELMAN

보몽탕아르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944년 아델만의 아버지는 아내를 찾으러 떠났다. 아내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는 건 전혀 몰랐다. 아버지는 12세였던 아델만을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마을 여인에게 맡기고 갔다.

겁에 질린 여인은 아델만을 다른 이웃에게 넘겼다. 아델만이 알랭 콰트레비유의 가족과 지내게 되었을 때 콰드레비유는 4세였다. 지금 그는 78세다.

“그는 ‘샬럿’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로테’라고 알았다.” 아델만의 말이다.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숨기다 들키면 체포, 구타, 심지어 살해까지 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콰트레비유 가족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델만을 안전하게 지켰다.

비누 하나가 아델만의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다

그 지역은 폭격 당했다. 천장이 날아간 이웃 집은 버려졌다. 아델만은 매트리스, 등유 램프, 욕조, 양동이를 가지고 그 집 지하실에서 9개월 동안 살았다.

거의 언제나 지하실에만 있었지만, 밤이면 나치들이 찾아왔다. 나치들이 도망자가 없는지 총검으로 집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동안 아델만은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알랭 콰트레비유가 뭔가 말을 하려 했으나, 콰트레비유의 할머니가 소년의 입에 비누를 밀어넣었다고 한다. 그 비누가 아델만의 생명을 구했을 수도 있다.

파리에서 재회한 알랭 콰트레비유(좌)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샬럿 아델만(우). 콰트레비유의 가족이 아델만을 나치로부터 숨겨주었을 때 아델만은 12세, 콰트레비유는 4세였다.
파리에서 재회한 알랭 콰트레비유(좌)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샬럿 아델만(우). 콰트레비유의 가족이 아델만을 나치로부터 숨겨주었을 때 아델만은 12세, 콰트레비유는 4세였다. ⓒCHARLOTTE ADELMAN

아델만의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 오빠와 재회할 수 있었다.

아델만은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갔다. 프랑스를 떠나 몬트리올로 갔다. 퀘벡 북쪽의 로렌시아 산맥을 여행하다 미국인 남성 알렉스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알렉스가 2011년에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함께 했다.

아델만의 이름은 어린 시절 이후 몇 번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 이름은 전쟁 당시의 보몽탕아르곤에 대한 책에 들어가 있다. 콰트레비유는 그 정보를 사용해 페이스북에서 아델만을 찾았다.

아델만은 그의 메시지를 보고 “진짜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내 몸을 꼬집어 보았다.”고 한다.

콰트레비유는 세 자녀를 둔 은퇴한 수학 교수다. 아델만에게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는 짧지만 감동적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우리는 지금도 당신을 생각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늘 샬럿 이야기를 하며 샬럿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걱정했다고 한다.

아델만은 ‘멋진’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을 좋아하며, 친구들과 소통할 때 쓴다고 한다. 운좋게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손자 중 한 명이 페이스북 직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아델만의 딸이 프랑스 여행 계획을 짰다. 모녀는 희생자 76,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 벽이 있는 파리의 쇼아 기념관에서 알랭을 만났다. 아델만의 어머니 이름도 벽에 새겨져 있다.

딸과 함께 파리 쇼아 기념관을 찾은 아델만.
딸과 함께 파리 쇼아 기념관을 찾은 아델만. ⓒCHARLOTTE ADELMAN

파리에 있을 계획이었지만, 콰트레비유가 아델만이 보몽탕아르곤에 있는 자신의 92세 누나를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다. 누나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다. 재회는 감동적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그녀를 보러 갔더니 마을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보몽탕아르곤에 대한 책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지하실에 숨어 살던 소녀로 알고 있었고, 인근 마을에서도 아델만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온 아델만은 콰트레비유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삶은 아주 행복하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홀로코스트 기사가] 신문에 실려도 읽지 않는다. 일어날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기억은 나와 함께 한다. 내 안에 있다.”

* 허프포스트 캐나다의 French Holocaust Survivor Used Facebook To Reconnect With Family Who Saved Her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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