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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리던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다

1992년 피해 사실을 공개한 김 할머니는 이후 여성인권운동가의 삶을 살아왔다.

ⓒ뉴스1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리던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저녁 별세했다. 향년 93세.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28일 오후 10시41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게 속아 성노예로 끌려갔으며, 1948년 8월 15일 광복 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1992년 성노예 피해자임을 밝혔으며,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인권운동가로 살아왔다.

또한, 본인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분쟁지역 아동과 전쟁 중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인권 활동에 매진해 왔다.

김 할머니는 2015년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겨레 1월 28일)

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보통 저희가 ‘할머니’하고 부르면 눈을 뜨시는데 어제(28일) 오후 다섯시쯤 스스로 눈을 뜨시고 말씀을 시작하셨다”며 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전했다.

윤 대표는 ”(김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끝까지 해달라‘는 말씀과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 지원하는 것도 끝까지 좀 해달라’, 그리고 그 말씀 끝에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표현하셨다”고 밝혔다.

ⓒ뉴스1

윤 대표는 ”그 뒤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수많은 말씀을 굉장히 길게 하셨는데, 너무 기력이 쇠약해진 뒤라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김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했다.

이어, ”그동안 할머니께서 사회에 기부한 것만 약 2억원 정도가 된다”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내어놓고 가셨다. 시간마저도 저희 활동가들을 배려해 저희가 다 모인 가운데서 떠나셨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아무개(93) 할머니도 28일 오전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17살에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가 피해를 겪었다. 두 할머니의 별세로,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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