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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스타의 #미투 :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폭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스포츠에서 지도자와 선수는 '종속적 관계'다. 피해 폭로는 곧 '선수 생활의 마감'을 뜻해,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심석희 선수 
심석희 선수  ⓒMinas Panagiotakis - International Skating Union (ISU) via Getty Images

2019년 1월 8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의 스타 선수가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를 공개적으로 말했다. 거의 모든 한국인을 놀라게 만든 충격적인 폭로는 국제 경기에서 여러번 금메달을 딴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심 선수는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미성년자이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4년간 조재범 전 코치에게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심 선수가 지목한 피해 장소에는 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 포함돼 있다. SBS에 따르면, 심 선수 변호인인 조은 변호사는 ”심 선수가 스포츠계에서도 피해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고 대신 전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직전 선수촌에서 이탈해 조재범 코치의 폭행을 폭로했던 심 선수는 정확히 1년 뒤, 성에 대해 말하길 꺼리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용기 있는 폭로를 다시 한번 들려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첫 미투 운동 이후 1년 만에 나온 최초의 ‘스포츠 미투‘는 한국 역사에 분명 기록될 만한 일이다. (폭행 혐의로 구속 중인 조재범 전 코치는 변호인을 통해 ‘폭행은 인정하지만 성폭행은 없었다’는 간략한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세계적 스타의 용기 있는 폭로에,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도 ‘미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4일 전직 유도선수였던 신유용씨는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언론을 통해 ‘코치의 성폭행‘을 폭로했다. 신씨 역시 미성년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0차례 성폭행을 당했으나, 코치로부터 ”누군가에게 말하면 너랑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다”라는 말을 듣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신씨는 유도를 그만뒀으며, 코치를 경찰에 고소했다. (코치는 미성년자였던 제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Jean Chung via Getty Images

세계적 빙상 스타의 폭로에 유도·태권도·세팍타크로 등에서도 ‘미투’

16일에는 한국 고유의 스포츠인 태권도 분야에서 ‘미투‘가 나왔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대한태권도협회 고위 임원을 지낸 A씨로, 15명이 ‘피해자 연대‘를 꾸려 A씨를 고소했다. 태권도 선수인 이지혜씨 역시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피해를 알렸다. 이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A씨에게 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 이씨에게 ‘감옥에서 나오면 죽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세팍타크로, 축구 분야에서 남자 감독이 선수를 성추행했다는 고발이 나왔다. 그동안 나온 ‘미투’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남자 지도자이며 피해자는 모두 여자 선수들이다.

왜 이들은 몇년 동안, 미성년자 시절부터 피해를 보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엘리트 선수 육성‘을 목표로 하는 한국 스포츠 시스템 속에서, ‘피해 폭로‘는 곧 ‘선수 생활의 마감‘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매진해온 선수들에게 ‘선수 생활의 마감‘은 곧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또한,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한국에서 스포츠 지도자와 선수는 ‘수평적 관계‘가 아닌 ‘종속적 관계’로 지내게 된다. 지도자는 △선수 선발 △선수 관리 △대회 출전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며,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선수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구조다.

구속 중인 조재범 전 코치의 모습 

지도자와 선수의 ‘종속적 관계’, 그리고 여성들의 낮은 지위

여성들의 낮은 지위로 인해 여자 스포츠 분야에서 ‘여자 지도자’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8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한국 지도자는 총 1만9,965명으로, 그중 여자 지도자는 3,571명(17.9%)에 불과하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같은 해 선수로 등록된 13만5637명 중 여자는 3만1,572명(23.3%)로, 여자 선수에 비해 여자 지도자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독보적인 성적을 보여주는 빙상계 역시,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보다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의 성별 불균형은 심각하다. 예를 들어, 심석희 선수가 소속된 쇼트트랙에서 여자 선수는 223명이지만 여자 지도자는 0명이다. 골프 역시 여자 선수가 47.8%(1,015명)로 절반에 달하지만, 여자 지도자는 10%(14명)밖에 안 된다.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인 임신자 경희대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체육계는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여성 지도자들이 기량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도,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도 너무 부족하다”며 ”여자지도자가 역량을 발휘할 생태계를 만들어야 여자 선수에 대한 폭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세계 성격차 보고서 2018’에서 전 세계 149개국 중 115위로 하위권이다.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면 이후 고발한 여성을 ‘창녀’라고 비난하는 2차 피해가 거의 자동으로 따라붙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종합적인 대응에 나선 한국 정부

들끓는 여론 속에서 한국 정부는 스포츠 분야의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응에 나섰다. 국가인권위가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만들어 1년간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하기로 했으며, ‘스포츠 혁신위원회’를 통해 엘리트 육성 시스템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은 ”더는 선수들이 스포츠 강국이라는 미명 아래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앞장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겠다”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스포츠 본연의 가치를 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서야 수면 위로 빙산의 일각을 드러낸 성폭력 문제가 앞으로는 사라질 수 있을지, 많은 한국인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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