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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25일 16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25일 16시 14분 KST

[뉴디터의 신혼일기] 점쟁이가 결혼하지 말라던 사람과 결혼했다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나세요~

4X-image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huffpost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에디터가 되고, 친구들보다 좀 일찍 결혼도 하고, 이렇게 ‘뉴디터의 신혼일기’ 같은 것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5년 전 대2병 걸려 있던 시절, 너무 깜깜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도 안 되는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는 건 너무너무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으로 가득하기도 한 일이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점집에 가서 사주를 봤다. 역시 불안하면서도 희망찬 미래를 고민하며, 이미 몇 차례 답을 구하고 온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이었다. 푸근한 인상의 점집 아저씨는 내가 마주앉자마자 마치 원래 절친했던 사이인양 이렇게 말했다.

“얘, 너 나이 너무 많은 남자는 절대 안 된다. 여섯살 위가 딱이네. 호랑이띠 죽여주는 놈 있다 너한테.”

EBICHU

네?

갑자기?

대뜸?

게다가 나는 죽이는 놈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찬란하고 쾌적하거나, 혹은 암흑의 진창이거나 할 내 미래에 대한 답을 구하러 왔는데?

그러나 나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이성애자였고 싱글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러 간 게 아니었으나 나는 이미 빠져들어 있었다. 

Reuters

네, 죽이는…. 호랑…이….띠….. 놈이….. 제 눈 앞에....

강렬한 첫방문 후, 1년에 한두번 정도는 그 아저씨를 찾아가게 됐다. 아저씨는 내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관상을 봐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내가 들어서기만 해도 늘 똑같은 소리를 했다. “너 여섯 살 많은 놈이 딱인 거 알지? 너 곧 죽여주는 호랑이띠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굳게 믿었다. 신봉했다. 1년에 한 번 가도 이렇게 얼굴만 보고 같은 말을 할 정도면, 그분은 정말 대단한 능력자인 게 분명해!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호랑이띠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어쩌다 내 이상형에 가까운 소띠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걸 들은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곧 죽이는 호랑이띠 온다니깐. 그 새를 못 참었니 이 녀석아.” 그래도 연애 중이었던 그가 너무 좋았기에, 궁합이 궁금해서 물었다.

“어, 그래. 얘는 너랑 궁합 괜찮네. 얘랑 결혼할 생각 있냐? 근데 할라믄 최대한 늦게 하는 게 좋아. 서른 많이 넘어서 하는 게 좋다 너. 근데 난 너 얘랑 결혼 안 하믄 좋겠어. 죽이는 호랑이띠 있다니까? 곧 온다구!!”

그놈의 죽이는 호랑이...

곧 온다던 죽이는 호랑이는 결국 5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앞으로는 못 올 것 같다. 그 사이 무탈하게 소띠 남자랑 연애를 해 온 내가 딱히 미룰 이유도 없어 그냥 20대에 결혼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그 아저씨가 굉장한 싸이비 같긴 한데, 사실 인터넷 사주나 결혼을 앞두고 한 번 가 본 무당집에서도 죄다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사주라는 것 자체가 같은 생년월일시를 대입하면 거기에 맞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랬을 터다.

나는 내 앞날에 대한 희망을 점집에서나마 찾고자 하는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구했지만, 그래도 결혼에 대한 말만큼은 쿨하게 쌩까고 내 마음대로 질러버렸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에 금방 흔들리는 귀 얇은 인간이었지만 어디서 읽은 게 있었기 때문에 나온 자신감이었다. 옛날옛적에 읽은 거라 책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에세이집에 나온 내용이다.

요약) 하루키는 결혼 전 아내와의 궁합을 보러 점집에 갔는데, 두 사람이 결혼하면 최악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답을 들었다. 다른 점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에세이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그는 결혼한 지 30년이 다 돼 가고 있으며, 여느 부부들처럼 가끔 싸우는 일은 있었어도 누군가 ‘최악’의 상황에 놓이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결혼생활이라는 건 운명에 맡기기보다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게 훨씬 합리적인 게 아닐까요, 뭐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스럽게 마무리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대로, 결혼 후의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것 같다. 상대에 따라 충분히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고, 내 변화에 따라 상대의 하루하루도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같이 살다 보면 당연히 생활수준이 같아지고, 어찌저찌 행동이 닮아가고, 생각이 비슷해지니까 말이다. 결국, 잘 맞는 사주궁합과 행복한 결혼생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거잖아요...☆★

물론 가끔은 대체 내 사주에 있다는 그 호랑이는 어떤 호랑이였을까, 우리 남편보다 더 내 이상형에 가까웠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근데 앗, 설마 내 이상형을 닮은 수준이 아니라 이상형 그 자체가 그 호랑이였나? 내 이상형은 축구선수 혼다 케이스케인데 혼다 선수는 진짜 호랑이띠다.

EBICHU

읭 설마...?

EBICHU

아…!

그럴 수 있다...!

볼 때마다 호랑이가 온다고 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넌 평생 호랑이띠의 팬으로 다음 시즌에도 혼다 유니폼을 또 사게 될 거란다”라는 뜻인 게 아닐까? 그런 의미로 지난 시간 동안 내게 ‘곧’ 죽이는 호랑이띠 만날 것이라고 말한 거라면, 꽤 잘 맞아떨어진 점괘인 것 같기도 한데...

또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다 틀려먹은 게 되고...

그럼 또 그게 맞다고 하면 맞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으면 또 아니고....

그게 맞는 걸까? 맞나? 뭘까? 내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우리는 이 말도 안되는 쓸모없는 고민을 통해, 점집에서 해 준 말은 해설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말도안되는 소리를 했어도 내가 갖다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너무 사랑하고 사이 좋고 몇 년 이상 같이 살아보니 더 잘맞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사주궁합이 나빠서 결혼이 꺼려지신다는 커플이 있다면 그런 거쯤, 그냥 무라카미 하루키 센세의 말씀 받들어 쌩까버려도 될 것 같다. “나쁠 수도 있다”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확실히 지금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떠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좋은 사주라면 111%, 그 이상 믿어도 해될 건 하나도 없다.

사주궁합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나세요~~~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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