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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요리와 청소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행운아'는 아니다

행운은 즉석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다. 성인이 자기 집안일을 하는 건 행운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PEOPLEIMAGES VIA GETTY IMAGES

남편이 퇴근하고 귀가한 시간은 저녁 7시였다. 가게에 들러 우유, 달걀 생리대를 사서 오느라 평소보다는 조금 늦었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빨래를 개던 나는 남편에게 어서 오라고 인사한 다음 “저녁 해줄래?”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울 코트를 벗고 셔츠 소매를 걷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저녁 준비를 하려고 물을 틀고 손을 씻고 있었다. “하고 있어.”

만약 파트너가 축구 중계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동안 당신은 몇 시간이고 요리, 빨래, 화장실 청소를 한다면 유감이다. 우리 부부의 가사 분담을 당신에게 과시하려는 건 아니었다.

남편이 시나몬 롤을 만든다거나, 자기 양말을 직접 서랍장에 넣는다는 걸 어쩌다 말하면 나는 ‘행운아’라는 말을 듣곤 한다.

“우와.” 여성들이 말한다.

“넌 행운아야. 내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

젠더와 사회 저널에 최근 실린 연구에 따르면, 우리 부부는 확실히 드문 경우다.

시카고 대학교 연구자들은 197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조사한 데이터를 살핀 결과, 미국에서 젠더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일을 나누어야 한다는 태도는 확실히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인 대다수는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미국 아버지들이 육아에 쏟는 시간은 1965년의 아버지들에 비해 3배나 많지만, 그조차 자신들이 직접 대답한 수치이며(오차가 클 수 있다) 일주일당 8시간에 불과하다.

참고 : 통계청 201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한국 맞벌이 부부 중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40분인 데 반해 아내의 가사 노동 시간은 4배를 뛰어넘는 3시간 14분이다. OECD 2015년 통계에서도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6개 국가 가운데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기가 태어나자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가사 분담은 자동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힘들게 얻어낸 것이다.

ⓒMotortion via Getty Images

시어머니는 주로 전업주부로 생활했고, 시아버지는 그걸 선호했다. 그 밑에서 자란 남편은 나와 결혼할 당시 가사노동에 대해서 거의 몰랐다. 요리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했다.

결혼 후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신문기자로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요리, 청소, 남편이 벗어둔 양말 줍기 등등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딸이 태어났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아이는 소리 지르고, 똥을 쌌다. 나를 붙잡고 매달리며 언제나 안아달라고 졸랐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내 목소리도 따라서 커졌다.

제발 식기세척기 비워줘. 제발 치즈 소스 좀 저어줘. 제발 치즈 소스 좀 만들어줘. 제발이라고 말하게 하지 말아줘. 제발..........

육아 초기, 나는 수동공격적이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 화장실 바닥에 쌓인 빨래들을 못 본척했다. 남편이 며칠 동안 그릇이나 빨래에 손대지 않으면, 나의 침묵은 점점 길어졌다. 아이를 키우자니 그릇과 빨래가 점점 더 많이 나왔다. 남편이 내게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얘기하기 싫어.”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사실 내 말에 담긴 뜻은 이거였다.

“모든 게 다 문제야. 나한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그는 내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빨래와 설거지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는 걸 몰랐다.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남편의 시도는 어설펐지만, 의도는 좋았다. 내 기분을 낫게 해주려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들을 퇴근길에 사왔다. 저녁으로 피자를 사가면 어떨지 집으로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그런 행동은 얼음장 같은 내 태도를 녹였고, 나는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진공청소기와 먼지떨이로 청소를 했다. 하지만 집안 꼴은 다시 엉망이 되었고, 이런 사이클이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모든 게 문제였지만, 말하지 않으면 남편은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부부 카운슬링도 받으러 갔다.

말다툼을 통해 나는 남편이 내가 더 많이 말하길 바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싸움이 아닌) 말다툼은 우리에게 있어 생산적이었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고 우리의 언어를 썼기 때문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갈수록 남편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예측하게 되었다.

ⓒAudtakorn Sutarmjam / EyeEm via Getty Images

결혼 후 18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부부는 아직도 불완전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배워가고 있다.

우리 집에서 생계비를 주로 벌어오는 사람은 나다. 18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이 나보다 돈을 많이 번 기간은 딸이 태어난 직후의 2년에 불과했다. 나도 가사를 맡지만, 내가 투잡, 가끔 쓰리잡까지 할 경우엔 남편이 가사를 더 많이 한다.

남편은 주말이면 향기로운 빵을 굽고, 평일 저녁에는 소스를 만든다. 퇴근 후 장을 봐오고 우리 세 가족을 위한 건강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늘 건강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 가사 노동을 하는 아내를 둔 수많은 남성보다 내가 더 운이 좋은 건 아니다. 지금까지도 여성들은 그래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나는 행운인 게 아니다. 평등한 것이다.

성인이 자기 집안일 하는 걸 ‘행운’이라고 불러야 하나?

엄마가 언제나 쓰리잡을 하고 아빠는 한 가지 일만 하는 집에서 자란 우리 딸에겐 이게 표준이다. 엄마가 저녁에 사진을 편집하는 동안(쓰리잡 중 하나는 사진가다) 아빠는 부엌 바닥을 걸레로 닦고 오븐에서 라자냐를 조리한다. 평일 5일 동안 장시간 근무하고 토요일에는 결혼식 촬영을 하느라 지친 엄마가 일요일 오후 쉬는 동안 아빠가 잔디를 깎기도 한다.

우리 딸은 공정한 리듬을 찾아낸 부모를 보며 자란다. 정말 멋진 일이지만, 이게 행운은 아니다.

ⓒLightFieldStudios via Getty Images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게 행운이다. 즉석복권 당첨이 행운이다.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 사거리를 지나가는 게 행운이다.

40대인 남편이 직접 저녁을 해먹을 수 있고, 자기 수건을 욕실 바구니에 넣는 걸 행운이라고 한다면, 남편이 성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셈이다. 내가 시리얼 박스를 열었다가 행운권을 발견했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침을 먹으려고 시리얼 박스를 열었더니 콘플레이크가 있었다는 건 전혀 행운이 아니다. 상자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게 문제다.

* 허프포스트 US의 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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