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1980년의 존 레논이 2019년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허무맹랑해 보일지언정, 다변화된 요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말해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얘기해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더욱더 ‘존 레논’이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자주 빠지고 만다.

“비틀즈는 위대하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이를 뛰어넘는다”
1974년 8월 29일 뉴욕에서 (photo by ©Bob Gruen/via 한솔비비케이)
때때로 지난날의 말과 행동을 후회했던 날도 있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그럼에도 존 레논은 언제나 ‘사람’ 그 자체를 가장 중요시했음엔 변함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는 소리 높여 얘기했다. 목숨에도 값이 매겨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부끄러운 입들을 바라볼 때면, 거울을 들이밀고 '방패막이 현실이 여기 있네요'라고 오지랖 떨고 싶은 요즘. 비록 그는 1980년 12월, 총기 사고로 죽었지만, 그가 세상에 뿌려놓은 소리는 4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의미 있게 들린다.
(Photo by. Francesco Piacentini / EyeEm via Getty Images)
존 레논이 피살당한 뉴욕 다코타 빌딩 건너편 센트럴파크에는 그를 기리는 추모 공간, '스트로베리 필드(Strawberry Field)'가 마련됐다. 존을 죽인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018년 4월 기준으로 가석방 신청을 10번 했으며, 10번 모두 거부됐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분명해져”
1969년 3월 20일, 지중해에 위치한 ‘지브롤터’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결혼 증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는 존 레논과 그의 옆에 오노 요코 (Photo by. Simpson/Express/Getty Images)
그가 본디 혁명적인 평화주의자였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청년들처럼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곡을 썼고, ‘반전’을 외치긴 했어도 ‘폭력’을 행사하고 ‘약물’에 빠졌던 과거가 아름다운 노래 뒤편에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를 바꾼 것은 ‘오노 요코(Ono Yoko)’였다. ‘일본에서 온 희대의 마녀’라고 불리었던 그녀. 존이 요코를 만난 건 1966년이었다. 존은 데뷔도 하기 전인 1962년에 캠퍼스 커플이었던 ‘신시아(Cynthia)’와 결혼했으므로 둘은 불륜이었다. 첫 만남에 사랑은 아니었다고 했으나, 어찌 됐건 세기의 커플이 되었으니 할 말이 없다. ‘평화’를 외치던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에 빠진 ‘존’은 그녀로 인해 비틀즈 멤버와 불화를 겪었고, 생각과 생활 방식 모든 것이 변했다.
존 레논, 신혼 첫날밤에 기자들을 초대하다
존과 요코는 신혼 첫날밤을 미디어에 공개했다. 당시 침대 위에서 찍힌 둘의 발이다. 존 발바닥이 좀 시커멓다. (Photo by. Bettmann via Getty Images)
(Photo by. Keystone via Getty Images)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였던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 902호를 모든 이에게 공개했다.‘베드 인 피스(Bed-in peace)’라 하여 평화를 위한 침대 위에서 존과 요코는 7일간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세계의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의미였다. 당시 기자 등 미디어 관계자들을 초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5월엔 캐나다 몬트리올의 퀸 엘리자베스 호텔 742호에서 동일한 퍼포먼스를 시행했고, 현장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부른 ‘기브 피스 어 챈스(Give Peace A Chance)’를 싱글 앨범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Photo by. Central Press via Getty Images)
아쉽게도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시위 방식은 아니었다. 그저'존이 또 재미있는 일을 벌였구나' 정도로 인식됐다. 베트남 전쟁에서 학대받고 폭력에 노출된 수많은 사람에게 이런 퍼포먼스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Photo by. Mark and Colleen Hayward via Getty Images)
하지만 존 레논은'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며 비폭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항상 주장했다. 행위의 합당성 여부를 떠나 그들만큼 현재까지 '비폭력'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해주는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편견과 선입견을 없앤다
(Photo by Tom King/Mirrorpix/Getty Images)
부부는 1969년 4월 1일에는 영국 런던의 지역방송이었던 '템스 텔레비전(Thames Television)'의 '투데이(TODAY)'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이먼 엔드류(Eamonn Andrews)라는 진행자는 침대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뒤이어 침대 밑의 가방에서 나온 존과 요코가 함께했다. 전위예술이자 평화 운동인'배기즘(Bagism)'의 시작이었다.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배기즘(Bagism)'은 ‘인종, 성별, 차림새, 나이 등 겉모습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자루 속에 들어가 겉모습을 보지 않으면 상대방과 편견 없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온다는 의미의 캠페인이었다.
'딕 카벨 쇼(The Dick Cavett Show)'에 출연해 '배기즘'을 소개하는 모습.
그들은'배기즘이 편견 없는 완전한 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둘은 늘 '인종 차별적'인 비난에 시달렸다. 요코에게는 '동양에서 온 못생긴 여자'라 하고, 존 레논에겐 '금발의 미녀를 만나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존은 그런 반응에도 '요코만큼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람은 없다.'며 선을 확실히 했고 수많은 유색인종의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원한다면 끝낼 수 있어!’
(Photo by. Three Lions via Getty Images)
12월에는 세계 곳곳에서‘종전’ 캠페인을 펼쳤다. 미국이 무려 10년간 베트남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그곳에 청년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존과 요코는 런던, 뉴욕, 로스엔젤레스, 토론토, 몬트리올, 파리, 로마, 베를린, 도쿄 등 세계 주요 13개 도시에‘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WAR IS OVER! IF YOU WANT IT)’라고 적은 문구를 빌보드 광고판을 비롯한 신문 전면에 게시하고, 포스터를 배포했다.
런던의 애플 레코드사 건물 계단 위에서 베트남 전쟁에 항의의 일환으로 만든 포스터 중 하나를 들고 있는 두 사람. (Photo by. Frank Barratt via Getty Images)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온 세상의 광대가 되겠습니다. 전쟁은 끝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끝난 겁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존과 요코"
1969년 12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평화유착 기자 회견 동안 존 레논과 오노 요코. (Photo by. Keystone-France via Getty Images)
존 레논은 비틀즈 멤버로서 1965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받은 ‘대영제국훈장’을 반납하기도 한다. 영국이 비아프라 내전(분리 독립)에 간섭하고, 베트남 전쟁 지원하는 것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한 행동이었다. 영국인에게 있어 훈장의 명예란 상상 이상의 것이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폭력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존 레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뉴욕 센트럴 파크에 모인 자리에서 한 남성이 '폭력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Can you see how stupid violence is?)'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다. (Photo by. Luiz Alberto/Keystone/Getty Images)
1980년 12월 8일, 아침에 만나 사인을 받아간 팬이 집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총을 겨누리라고 존은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을 거다. 전 세계 사람들 또한 그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버렸음을 믿을 수 없었다.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진지한 인생에서 어린아이 같은 예상 밖의 쾌활함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죠." - 존 레논
(photo by 한솔비비케이)
1980년 12월 14일 일요일에는 전 세계가 존의 죽음을 애도하는 10분의 묵념 시간을 가진다. 뉴욕 센트럴파크에는 10만 명의 인파가 모였고, 그가 태어난 리버풀에선 2만 명이 모여 6시간 동안 존 레논과 비틀즈의 음악을 불렀다.
"기적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게, 일상 속에서 나타난답니다." - 존 레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센추리 시티(Century City)'에 모인 2,000명의 사람은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 행사를 열기도 했다. (photo by. Bettmann via Getty Images)
'평화에게 기회를, 민중에게 권력을'
Imagine - John Lennon and The Plastic Ono Band (with the Flux Fiddlers)
1971년 존 레논이 발표한 첫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 '이매진(Imagine)'.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국가도 종교도 없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전하는 이 곡.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여전히 이 곡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단순히 음악가 비틀즈(The Beatles)의 존 레논이 아니라,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세상 안에서 변화하며 성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 레논. 아직까지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존 레논의 전속 사진작가의 작품과 소장품 총 340여 점으로 구성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로 오노 요코와 함께했던 ‘베드 인(Bed in)‘, ‘종전(WAR IS OVER)’ 등의 평화 퍼포먼스를 경험해볼 수 있다. 또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인정한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존 레논의 판화 작품을 볼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음악과 사랑, 평화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색다른 ‘이매진 존레논 展’은 3월 10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