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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22일 11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22일 12시 11분 KST

20대 남성의 보수화, 기성 세대 진보의 책임이다

'약자들의 연대'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http://www.fotogestoeber.de via Getty Images
huffpost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이슈다. 근래에는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모든 세대, 성별 중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가 주목받기도 했다. 정치적 보수화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사회적 보수화 경향일 수도 있다. 여러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20대 남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이미 일관되게 보수적이다. 여성에 대해서는 물론, 장애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난민, 노인 등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다.

사실 20대 남성은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할 강자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성평등, 다문화, 국민연금 정책 등에 따른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시험으로 선발하는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서민층 청년에게 최고의 직장인 시대다. 20대 남성은 국가에 ‘충성’한 시간을 보상받기는커녕 충성의 결과로 평생을 좌우하는 취업 경쟁의 대열에서 여성에게 밀리고 있다고 여긴다. 한국이 여전히 남녀 불평등한 사회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세대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피해의식에서 분노가 자란다. 아마 필자도 포함될 듯한 남성 진보 지식인의 이중성에 가장 분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은 남녀 불평등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채, 그 원죄의식을 젊은 남성들의 희생을 통해 씻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다.

피해의식과 분노의 밑바탕에는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에 닥친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인식도 있다. 각론은 다를지언정 진보와 보수의 엘리트들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양성평등 정책을 통한 여성 고용률 상승, 다문화 정책을 통한 이민자 수용, 북한과의 경협 추진 등은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값싼 노예로 부리기 위해 벌이는 좌우합작의 셈법이라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의 피해의식과 분노의 저변에는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있다. 노력한 만큼, 능력대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공정성의 논리는 세대를 넘어 폭넓게 공감을 받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이들에게 공정성이란 ‘개인들 간의 공정한 경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범한 20대 남성들도 재벌과 대형 교회의 세습에 분노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세상에 분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더 특권과 반칙에 반대한다. 이들의 보수화를 특권계급이나 노년 세대의 보수성과 동일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들이 양성평등 정책, 군 복무 가산점 폐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진보적 정책에 분노하는 이유는 ‘개인들 간의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빼앗는 반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학 서열화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대학 서열에 분노하는 세대다. 부모의 경제력이 인생을 좌우하는 데 반대하는 만큼이나 성별이 인생을 좌우하는 변수가 되는 데 분노한다. 남자라고 우대받는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데, 남자라서 역차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오직 점수로만!”이 이들의 슬로건이다.

경쟁은 계급, 성별, 인종 따위의 비개인적 요소와 무관하게 공정해야 하고, 그 결과와 책임 또한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자유주의 정의론의 전형적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역사적·누적적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들이 실행될 때면 가장 강력한 반론의 근거가 되는 신념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자유주의적 신념에는 모순이 있다. 개인은 진공이나 무중력 상태에서 행위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수많은 자산과 부채의 그물망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흑인 노예 차별의 교정을 현세대 미국인에게 묻고, 제3세계 국가들의 빈곤과 분쟁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을 현대의 서구 국가들한테 따지며, 현세대 일본인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선조가 저지른 범죄를 사죄하는 독일인들을 칭송한다.

안타깝지만 자유주의적 공정성의 모순에 대한 지적은 20대 남성에게 거의 설득력이 없다. 개인 간 공정한 경쟁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20세기 말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시작한 이래 보수와 진보가 경쟁적으로 퍼뜨려온 믿음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시장경쟁의 분배적 합리성을 찬양했다면, 진보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며 맞섰다. 신지식인론을 내세우고, 평생학습 체계와 대학 개혁을 주도했다. 사람은 경쟁력의 원천이라서 소중해졌다. 소위 인적자본론이다.

개인 간의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 차별적 분배는 자유주의화된 한국 진보진영에서 폭넓게 수용된 신념이었고, 기득권 비판의 핵심 논리였다. 정권은 오갔으되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기조는 도저했다. 그사이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수사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은 은폐되어왔다. 이제 와서 20대 남성들에게 구조적 모순을 떠들어봐야 ‘설명충’ 소리만 돌아올 뿐이다. 우리 세대가 그렇게 키웠다. 나는 안 그랬다고 말해도 소용은 없다.

이제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어온 역사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대 남성들이 보여주는 분노는 찬성했건 반대했건 우리 자신이 선택했던 한국 사회의 경로가 초래한 필연적인 되먹임이다. 역사에 외상은 없다. ‘공정한 경쟁’을 넘어서는 ‘약자들의 연대’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늦었고 오래 걸리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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