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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플랜 B'를 내놨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압도적으로 부결됐던 브렉시트 합의안에서 크게 진전된 내용은 없었다.

  • 허완
  • 입력 2019.01.22 15:12
ⓒNurPhoto via Getty Images

‘플랜 A 같은 플랜 B’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21일(현지시각) 공개한 브렉시트 합의안 수정안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영국 근대 의회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기록된 ‘플랜 A’에서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다는 얘기다. 

메이 총리는 기존 합의안에서 “3가지 큰 변화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2차 국민투표나 브렉시트 연기는 불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노딜(no deal) 브렉시트 가능성을 배제하라는 요청에도 재차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메이 총리가 자신의 ‘레드라인‘에서 물러서지 않은 탓에 ‘플랜 B’가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보인다.

브렉시트 날짜가 다가오는 가운데 메이 총리가 시간을 끌면서 의회와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메이 총리의 ‘레드라인’

메이 총리는 ”지난주 표결 이후 정부의 접근법이 달라져야만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정부는 그렇게 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메이 총리의 설명은 그와 달랐다. 무려 230표차로 부결됐던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안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여야 의원들이 제기해 온 다양한 대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앞서 여러 차례 밝혔던 자신의 ‘레드라인’들을 강조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메이 총리는 우선 ”영국이 합의안 없이 EU를 떠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널리 퍼져있다”며 ”하원에는 정부가 이 가능성을 배제하기 원하는 여야 의원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민들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메이 총리는 말했다.

그는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는 ”올바른 방법은 하원이 합의안을 승인하는 것”이며, ”다른 유일한 방법은 리스본조약 50조를 철회해 EU에 잔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 뿐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브렉시트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선을 그었다. 상당수 여야 의원들은 합의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 일단 리스본조약 50조를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이는 ”노딜 가능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그저 결정 시점을 늦추는 것일 뿐”이며 ”우리가 어떻게 합의안을 승인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없이 EU가 그냥 연장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딜을 배제하라’는 주장은 의회가 합의안을 승인하지 못하면 브렉시트를 철회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는 게 메이 총리의 논리다. ”이는 국민투표 결과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며, 우리가 취하거나 하원이 지지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차 국민투표 주장도 재차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우리의 임무는 첫 번째 투표의 결정을 이행하는 것”이라며 2차 국민투표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킴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메이 총리는 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하원 다수를 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이게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NurPhoto via Getty Images

 

‘플랜 B’는 없었다

메이 총리는 기존 합의안의 쟁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반대에 막혀 있는 쟁점은 물론 아일랜드 백스톱 문제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이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저 북아일랜드 및 아일랜드 주민들의 우려를 잠재우면서도 ”하원의 지지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검토한 다음 그 결과를 가지고 EU 측과 만나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진행될 영국-EU 미래 관계 협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협상 과정에서 의원들의 발언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메이 총리는 전문가와 노동계 등 정부 바깥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고, 하원 ‘비공개 위원회’를 통해 협상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는 한편,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의회에 보고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노동자 권리 및 환경 보호 기준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노동당의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앞장서 관련 법안 통과에 힘쓰겠다는 것.

이날 연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새로운 발표는 EU 회원국 시민들에게 부과할 계획이었던 거주 등록비를 면제해주겠다는 부분이었다. 메이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계속 영국에 거주하기를 원하는 EU 주민들에게 16세 이상은 65파운드(약 9만5000원), 16세 이하는 32.5파운드를 내도록 할 계획이었다.

″정부는 3월30일부터 전면 시행될 이 제도의 신청비를 면제해 (영국) 거주를 원하는 EU 시민들에게 재정적 장벽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이미 신청을 했거나 할 사람들은 비용을 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게 끝이었다.

 

‘플랜 B’ : 플랜 A 밀어부치기? 

곧바로 발언에 나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 총리가 지난주의 기록적인 패배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압도적으로 부결된 안을 거의 그대로 들고 왔을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수당 사라 월러스턴 의원도 ”지난주의 표결이 전혀 벌어지지 않은 것만 같다. 플랜 B는 플랜 A”라고 트윗에 적었다. ”총리의 오늘 입장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이었던 건 (EU 시민들의) 거주 등록비를 면제하기로 한 결정 뿐이었다.”

보수당 내 친-EU 그룹을 이끌고 있는 애나 소브리 의원은 브렉시트가 영국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며 메이 총리가 시간을 끄는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의 폴 존슨은 ”(메이 총리의) 플랜 B는 플랜 A에 동의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것”이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세바스티안 페인은 ”메이의 플랜 Z도 플랜 A”라고 촌평했다. 

 

메이 총리가 이같은 반발과 혹평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그럼에도, 즉 반대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유럽개혁센터(CER)’의 아가타 고스틴스카-야쿠보프스카 선임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설명했다. 

”막판까지 표결을 미뤄서 합의안에 부정적이지만 노딜 브렉시트는 원하지 않는 의원들이 끝내 반대표를 던지기를 주저하도록 만드는 게 메이 총리의 일관된 전략이었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찬성(=합의안 승인) 대 반대(=나머지 모든 주장)’로 구도를 단순화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합의안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강경파든 온건파든 끝내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계산일 수 있다.

그러나 강경파 의원들은 ‘합의안이 부결되면 노딜 브렉시트도 괜찮다’는 입장이어서 메이 총리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영국 하원은 29일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안에 대한 표결을 벌일 예정이다. 다만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승인투표는 아니다. 의원들은 각자 수정안을 제출하고 이를 토론, 표결에 부칠 수 있다.  

 

허완 에디터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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