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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영국 메이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 배제' 요청을 거부했다

메이 총리는 자신의 브렉시트 '레드라인'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9.01.18 15:50
  • 수정 2019.01.18 15:54
ⓒASSOCIATED PRESS

영국과 유럽연합(EU)이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의회에서 부결된 다음날인 16일, 금융시장은 잠잠했다. 파운드화는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질서있는 브렉시트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던 합의안이 휴지 조각이 됐는데?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졌는데? 

가디언의 경제 담당기자 래리 엘리엇은 이렇게 해석했다.

″금융시장이 받아들이기로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테레사 메이 총리의 탈퇴 합의를 의원들이 부결시킨 것은 브렉시트 연기, 더 온건한(softer) 브렉시트, 혹은 아마도 노(no) 브렉시트를 뜻한다. 영국에서 만만치 않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브렉시트가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것을 항상 우려해왔다. 이제 그들은 현재 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아니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상황이 시장의 해석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메이 총리의 ‘고집’ 때문이다.

합의안 부결에 이어 정부 불신임 위기에서 겨우 살아남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여전히 ‘레드 라인’을 고수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브렉시트 연기나 더 온건한 브렉시트, 혹은 브렉시트 취소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듯 말이다.

영국의 EU 탈퇴 날짜가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영국이 어떻게 EU를 떠날 것인지, 혹은 정말로 떠나기는 하는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총리 : ‘노딜 브렉시트 배제 못한다’

17일(현지시각)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노딜(no dela) 브렉시트’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의 요청을 거부했다.

앞서 정부 불신임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직후, 메이 총리는 여야 정당 지도자들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제쳐두고”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모으자고 한 것이다.

그러자 코빈 대표는 ”재앙적인 노딜 브렉시트 위협을 배제하는 것이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모든 대화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메이 총리가 이를 수용해야만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는 것은 정부의 권한에 없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전제조건”이라고 답했다

″왜 그런지 설명드리겠습니다. EU에 관한 리스본조약 제50조와 영국의 EU 탈퇴법(Withdrawal Act 2018)에 따르면, EU와의 합의안을 의회가 승인하거나 영국이 제50조 발동을 철회해 영구적으로 EU에 잔류하기로 하지 않는 한, 우리는 3월29일에 합의 없이(no deal) EU를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의회가 합의안, 구체적으로는 EU와 합의된 ‘탈퇴 합의(Withdrawal Agreement)’에 동의하거나 제50조 발동을 철회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는 것입니다.”

메이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우리에게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는 언제든 응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메이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 배제 요구를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야당과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 대신 보수당 내 강경파와 연정 파트너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을 설득하는 데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EU와 깔끔하게 결별할 수 있다면 노딜 브렉시트도 괜찮다. 그래도 큰 혼란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을 설득하려면 부결됐던 합의안보다 오히려 더 강경한(harder)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다른 여야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내기는 더 어렵게 된다. 단순하게 숫자를 계산해보면 합의안 통과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는 구도다.

ⓒASSOCIATED PRESS

 

재무장관 : ‘노딜 브렉시트는 벌어지지 않을 것’

메이 총리의 입장은 유출된 자료에 나오는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해먼드 장관은 경제계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며칠 내로 ”논의 대상에서 배제될 것”이며, 브렉시트가 연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건 한 마디로 ‘여러분들이 걱정하는 노딜 브렉시트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주요 기업들의 임원들을 재차 안심시키기 위해 해먼드 장관은 여당 의원들이 노딜 브렉시트를 원천 차단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로 보수당 닉 볼스 의원은 노딜 브렉시트를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의회에서 끝내 브렉시트 합의안(수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정부가 브렉시트를 연기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가디언은 이 법안이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브렉시트 연기(리스본조약 50조 연장)를 위해서는 EU의 동의가 필요하다. 

ⓒASSOCIATED PRESS

 

메이 총리의 레드라인

그런가 하면 메이 총리는 코빈 대표가 의원들에게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할 때까지 정부와의 협의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만나서 대화하자는 요청도 거부하고, 정부와 해법을 찾지 말라고 소속 의원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정말 생각하십니까?”

코빈 대표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의원 이베트 쿠퍼와 힐러리 벤은 이날 브렉시트 관련 논의를 위해 총리실을 찾았다. 두 의원은 대화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정부가 실제로 (기존 입장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쿠퍼)

″정말 중요한 질문은, (대화의) 문은 열려있는데, (기존 입장을) 바꿀 마음의 문도 열려있는가?” (벤)

메이 총리는 기존 입장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어보인다. 여야 지도부 및 의원들과의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는 ‘EU 관세동맹 잔류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관세동맹 잔류는 더 온건한 브렉시트를 원하는 여야 의원들이 선호하는 옵션이다. 

메이 총리는 2차 국민투표 가능성도 일축해왔다. 노딜 브렉시트 배제 불가, 관세동맹 잔류 불가, 2차 국민투표도 불가. 메이 총리의 ‘레드라인’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대화가 성과를 낼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총리실 관계자는 메이 총리가 여야 의원들과의 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취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각자 기존 입장들이 있으니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려 할 것이고, 총리는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리가 고수하고 있는 원칙들을 이해해야 한다. 총리는 그게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메이 총리는 21일 의회에 브렉시트 합의안 대안(플랜 B)을 제출할 예정이다. 의원들은 그 자리에서 이에 대한 수정안 또는 새로운 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정부의 대안과 의원들이 낸 수정안들에 대한 표결은 29일로 미뤄졌다고 정부는 밝혔다.  

시간은 분명 영국 편이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메이 총리는 별로 급해보이지 않는다.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가디언 칼럼니스트 마틴 케틀은 ”메이 총리가 지금 누구랑 대화할 건지 고를 때가 아니”라며 ”타협하고, 레드라인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한다(now or never)”는 얘기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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