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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커플이 각각 다른 스포츠팀 팬일 때 일어나는 일들

근데 가끔 좋을 때도 있다.

  • 김현유
  • 입력 2019.01.18 15:02
  • 수정 2019.01.18 17:33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중인 전북현대 이동국 선수의 아들 이시안군, 울산현대 박주호 선수와 박나은양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중인 전북현대 이동국 선수의 아들 이시안군, 울산현대 박주호 선수와 박나은양 ⓒ뉴스1
ⓒhuffpost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종종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는 커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한 팀이 점수가 나면 한 쪽은 쌍수를 들어 기뻐하고 다른 한 쪽은 표정이 일그러지며 좌절하는 모습이 고대로 TV를 통해 나온다. 꽤 재미있는 데이트,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축구는 그게 불가능하다. 일단 훌리건이라는 말이 왜 축구팬들로부터 나왔는지 생각해 보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은 가운데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채 앉아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기든 지든 거의 ‘다굴‘을 당하는 수준으로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장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다고는 하는데, 9회까지 느긋하게 가는 야구와 달리 전후반만 딱 놓고 ‘쇼부’ 치는 축구는 아주 성질이 급한 스포츠라 아마 승부를 앞에 둔 팬들의 성질머리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야구는 일주일에 여섯 번이나 하니까 오늘 져도 내일 이기면 되지 싶지만 축구는 오늘 지면 다음 주까지 낮아진 순위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졌는데 옆에서 상대팀이 신나가지고 깝치고 있으면 야마가 개 돌아 안돌아? 그건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K리그에서는 애초에 홈팀이 아닌 팀의 유니폼을 착용한 경우 원정석에만 앉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규정은 정말 빡세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세상에 이런일이!] 여기 축구장에서 서울 팬으로 오인받아 쫓겨난 남자가 있다는데!

(재연) 축구는 좋아하지만 야구 직관만 가보고 축구 직관은 안 가봤던 인천 출신 지인 정모군(자칭 인천 손흥민). 그는 숭의아레나서 인천 대 서울의 경기가 열리는 날 집에 굴러다니던 서울FC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야구처럼 아무 유니폼이나 입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당연하게도 직원들은 혼자만 빨간 옷인 그를 저지했다. 몇 차례 손흥민을 닮은 월드클라스 미소로 입장을 시도한 정모군… 그러나 직원은 강경했고 정모군은 결국 울부짖기 시작했다.

“저 인천사람이예요오오오! 인천 응원하러 왔는데 이건 그냥 집에 있길래 입은 것뿐이예요오오!!!!!!”

그는 포효하며 ‘인천광역시장’ 직인이 찍힌 그의 주민등록증을 내밀었으나 인천광역시장은 커녕 문재인 대통령께서 오셨어도 얄짤은 없을 것이었다. 결국 경기 시작 직전 서울 유니폼을 벗고 프레디머큐리 같은 나시티를 입은 꼴로야 그는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매우 흉측한 복장이긴 하지만, 서울 유니폼보다는 나시티가 인천 팬들에겐 덜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축구장에 가지 않았다.

즉 같은 팀을 응원하지 않는 한, 대통령 부부라고 해도 함께 축구 직관을 즐기기는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헌데 나는 강원FC(aka 감자국FC)의 팬이며 신랑은 울산현대(나은이네 아빠 팀)의 팬이다.

ⓒKBS

어느 팀 선수의 딸이든 간에 너무 사랑스러운 나은이...

다행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우리가 처음 만난 해부터 두 시즌이 흐를 동안은 강원FC가 2부에 있었다. 그 2년은 우리 연애의 축구 황금기였다. 맞붙을 일이 없었으니까, 서로 경기가 열리는 날 서로의 팀을 응원해줄 수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강원FC 4년 만에 K리그 클래식 승격]압박과 패스 점유율 축구로 `강원의 힘′ 완성! - 강원일보(2016. 11. 21.)

강원FC ‘강원도 힘 보여주며 클래식 승격’ - 스포츠조선(2016. 11. 20)

ⓒ뉴스1

승격이 확정되자 신난 강원FC 팬들과 최윤겸 당시 감독

(샤이니 민호우! 아버지로도 유명)

2017년은 그렇게 오렌지빛으로 밝아왔다. 개막전에서 강원은 상주를 2-1로 꺾었고, 같은 날 울산도 포항에 2-1 승리를 거뒀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 다음 주는 둘 다 패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팀을 응원해 줬고, 졌을 때는 서로 격려했다.

문제는 한 달이 지나 발생했다. 울산 문수구장에서 울산 대 강원의 경기가 진행된 2017년 4월 2일 일요일. 물론 비인기종목(?)이지만 우리 커플의 최대 빅매치라는 소식이 방송국에도 다 울려퍼진 모양인지 경기 중계가 될 예정이었다.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우리는 엠비씨스포츠를 켰다. 그리고 켜자마자 휘슬이 울렸다.

잠깐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응시하다가 눈이 건조해져서 인공눈물을 찾으려고 잠시 두리번 대는 사이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오~~~르샤아아아아~~~~~~~~~~~!!!!”

그리고 눈이 건조한 것도 잊고 벙쪄버린 나를 끌어안았다. “이얏호! 우리 현유 사랑해~~~~~”

“울산현대 오르샤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강렬한 첫 골을 기록했습니다. 스코어는 1-0입니다.”

아니 내가 진짜 얼마나 그때 빡쳤냐면 지금 2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일희일비하진 않는 스타일이다. 자 선수단 여러분 집중! 영어로는 컨센트레이트! 이 정신사나운 글을 읽는 동안 뭐 하나라도 얻는 것은 있어야 할 테니 박항서 감독님의 베트남어로는 집중을 ‘딱중’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떤 팀이었습니까,,,.. 도민들의 마음을 모아 만들어졌던 도민구단 아닙니까!!! 그렇게 조용히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내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냐면 텔레비젼이 부서질 정도였다. 하지만 문화시민이라면 빡친다고 텔레비전을 부수면 안 되겠죠?^^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결국 기나긴 딱중타임 끝에 전반 종료 직전, 갓-에고께서 동점골을 기록하셨다. 갓... 왠지 한국어도 좀 할 것 같은 그남자…

ⓒ뉴스1

킹갓...

하지만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오버하며 골을 넣은 걸 기뻐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건 사실 너무 매너가 없는 행동인...데... 근데... 디에고의 골이 들어가자 갑자기 그는 자기 팀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저런 멍청이들. 밥 먹고 축구만 하는 X끼들이 왜 저것밖에 못 하는 거야?” 그건 당연히 우리 팀 선수들도 밥 먹고 축구만 하기 때문이겠지만 별다른 말은 안했다. 그는 일희일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절대 토토충은 아니지만 나는 오늘 무 간 사람마냥 경기가 그렇게 끝나길 빌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 다른 팀을 이기면 되니까 우리 커플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지 않도록 해줘… 이게 바로 2부에서 승격한 팀의 팬과 계속 1부에서도 상위스플릿에 있어서 제정신 못차려본 팀 팬의 차이일까? 그는 계속 궁시렁거리기만 했다. 내 깊은 속마음을 알기는 할까? 저 승리에 미쳐버린 흑우…

하지만 목돌아간 흑두루미는 나였다. 후반 종료 직전 울산은 또 골을 넣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다가 다시 주저앉아서 나를 붙잡고 끌어안았다.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난 몇 년의 연애가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날 무렵 나는 옆에 드러누워서 텔레비젼을보며 헤헤 웃고 있는 그를 보게 됐다. ‘허프 셀프디펜스 기획’으로 복싱을 신나게 배우고 있던 때였다. 이성적인 생각보다 본능적인 셀프디펜싱이 앞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헤헤 웃고만 있었다. 문자 그대로, 리터럴리, 목 돌아가도 웃고 있는 흑우 없제?

그러나 진짜 흑우는 나였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르고 내가 결혼에 골인을 할 동안 강원은 단 한 번도 울산에 이기지 못했다. 남편은 강원 춘천송암경기장에 직관을 간 날에는 나를 속여서 표를 끊어온다더니 원정석에 앉혀놓고 목청높여 응원을 했고- 심지어 내 옆에는 울산 선수의 어머니가 계셨는데 내가 울산 팬인 줄 알고 너무 살갑게 챙겨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달 울산이 FA컵 우승에 실패했을 땐 “하긴 현유네 팀 같은 약체도 있는데 내가 준우승이라고 이렇게 속상해할 건 아니지”라고 말해 나를 빡치게 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약팀은 이렇게 가슴 아픈 것이다.

이렇게 커플이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은 당연히 빡치고 큰싸움이 벌어질 뻔한 위기가 많지만 가끔 좋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왜 우리 구단은 이렇게 일을 안 해” 싶은데 다른 구단은 어떤지 몰라서 눈치 살살 보고 있을 때 캐치를 금방 할 수 있다. “울산은 후드티도 굿즈로 내놓았는데 왜 강원은 그런 것도 못해!” 같은... 작년에 산 롱패딩은 프린팅된 패치가 너무 약해서 지 혼자 반쯤 떨어져나가버렸는데 울산은 자수 패치라서 떨어질 염려가 없던데(궁시렁궁시렁)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와 리그에 아예 관심이 없는 배우자보다는 같은 리그의 다른 팀을 응원하는 배우자가 훨씬 낫지 않을까. 스포츠와 사랑, 그 모순의 줄타기란…♥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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