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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후 10년, 생존자는 끔찍한 소외를 겪었다

생존자 5인은 ‘공동정범’으로 구속됐다.

ⓒhuffpost

“아빠도 젊었을 때 화염병깨나 던졌다.” 최근의 화제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에서 로스쿨 교수가 두 아들에게 건넨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만난 오십대 엘리트 어른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물론 이들은 “청춘은 눈 깜짝하면 지나간다”는 둥, “밑바닥에서는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서는 누리는 거다”라는 둥 직설 화법을 내뱉진 않았다. 술 한잔 걸치고 87년 6월의 무용담을 얘기할 땐 지구를 제 손으로 떠받친 양 심각해졌다가, 자녀 교육과 부동산으로 화제가 바뀌는 순간 평범한 소시민을 자처하며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나약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러다 펜과 마이크를 쥐면 어느새 고뇌하는 지식인이 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와 탈정치화에 비탄을 금치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들은 블랙 코미디로 만들기엔 너무나 극적이고 과도하기까지 하다. 부동산이 특히 그렇다. 우리 모두 경쟁적 입시제도의 희생양이라며 피해자 연대를 호소해봄직한 교육과 달리, 부동산은 확실히 집단 공모의 결과다. 화염병의 패기를 추억하는 지금의 어른들은 80년대 말 권위주의 정권이 시행한 중산층 육성 대책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주택 200만호 건설을 비롯해 노태우 정부가 주도한 내 집 마련 지원으로 자가 소유자로 거듭난 민주화의 주역들은 이제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수호하는 데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촛불’을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만들 만큼 대정부 저항에도 적극적이지만, 쓰레기 소각장에서 특수학교까지 내 재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떤 잡음에도 투사의 각오로 임한다. <자본론>을 몇번이고 읽었든 교환가치가 주인이고 사용가치가 노예가 된 재개발을 세상만사의 상식으로 접수하고, 강제철거의 아비규환에는 가끔 도덕적 연민을 보탤 뿐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았다.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역 앞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망루에서 강제철거 반대 시위를 하던 5명의 시민과 이를 진압하던 1명의 경찰특공대원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직후 생존자 5인은 ‘공동정범’으로 구속된 반면, 조기 과잉진압과 여론조작으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도 회부되었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염력>의 흥행 실패에서 보듯, 불타버린 남일당 건물은 초능력 히어로가 등장해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관심은커녕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분리 프레임에 갇힌 채 지난 십년간 끔찍한 소외와 갈등을 겪었다. 정부는 이른바 ‘상습시위꾼’을 적발하겠다며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을 비난한 네티즌들의 손발을 묶었고, 언론은 철거민이 화염병을 던지고 망루가 불타는 자극적인 장면만 부각했다. 청(소)년, 여성, 장애인 권리운동에 긴요했던 ‘당사자’ 프레임도 용산의 소외를 부추겼다. 상가 세입자들을 도왔던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은 ‘당사자’도 아닌 주제에 끼어든 “외부세력”이자 “전문시위꾼”으로 매도당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사이, ‘공동정범’으로 연대책임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쟤 때문에”라는 피해의식과 “나 때문에”라는 죄책감을 오가며 정신적인 수렁에 빠졌다.

이렇게 십년이 흘렀지만, 오래전 발의된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20대 국회에서도 논의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법의 관할 상임위원회인 국토위 소속이란다. 그야말로 막장 코미디인데, 아무도 웃을 수가 없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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