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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16일 10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16일 10시 48분 KST

‘노동 존중’의 추동력, 시민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Leontura via Getty Images
huffpost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한테서 가끔 듣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수들의 복장만으로도 그 교수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바지 등 편한 복장을 즐겨 입고 학생들과 이름 부르며 친하게 지내는 교수들은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이고, 정장 차림을 즐기고 학생들에게 ‘교수님’(professor)이라고 불리기를 바라는 교수들은 대부분 공화당 지지자라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수들은 복장만으로 지지 정당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 지지자들의 복장이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이달 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앞에 거론한 우리나라 각 정당의 지지도를 합하면 80%가 넘는다. 정의당 지지율은 9.1% 남짓이다. 매우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80% 이상은 미국 민주당보다 ‘보수’에 속한다는 뜻일 수 있다.

2015년 9월7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노동절을 맞아 광역 보스턴 노동협의회에서 한 연설이 화제가 됐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톰 브래디는 노조가 있어서 행복했다. 브래디에게 노조가 필요하다면 여러분도 필요한 것이다.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동조합이 없거나 금지한 나라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는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늘 산재를 입고 보호받지 못한다. 노동조합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톰 브래디’는 연소득이 줄잡아 500억원가량 되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이다. 굳이 그 이름을 언급한 것은 “1년에 500억원 정도를 버는 사람도 자신을 노동자라 생각하고 노조에 가입해 도움을 받고 있다. 소득이 많다고 노동조합이 필요 없다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라는 취지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 한국의 대통령들 중에서는 이 비슷한 말조차 한 사람이 없었다.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조차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바라보는 시각은 ‘고액 연봉을 받는 기득권 귀족 노동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8일 KB국민은행 노조가 19년 만에 벌인 단 하루 파업에 대해 “고액 연봉을 받는 ‘귀족 노동자’들의 파업”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낸 한국 유권자들 중에서 오바마의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자부하는 ‘촛불시민’들의 시선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이 전개하는 노동운동이 미국 노동조합들보다 훨씬 과격하고 이기적인 양태를 보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통계를 들여다봐도 한국의 노동운동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과격하고 이기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분류하는 것은 사실 국제 기준으로는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의 정당들은 국제적 기준으로 어디쯤 위치할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논란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고 김용균씨가 담당했던 정비·수리 업무는 외주·하청을 제한하는 업무에서 제외됐다. 보수 야당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 내용 자체가 그러했다. 문재인 정부의 개정안으로는 김용균씨가 담당했던 업무의 외주화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하자 ‘촛불시민’들조차 “하도급 금지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청업체가 안전·보건 책임을 지게 되니 김용균씨가 담당했던 업무도 보호받을 수 있다” “하도급을 금지하면 그 업무를 담당하던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비정규직이 안전 업무를 담당하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비정규직이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것이다” 등의 반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성향이 정부로 하여금 ‘김용균법’을 더욱 강화된 내용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게 한 동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촛불시민’ 대다수가 “김용균씨 사건 때문에 법 개정이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었고 법 이름조차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데 김용균씨가 담당했던 업무가 외주·하청 제한 범위에서 제외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정부를 압박했다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민이 요구하지 않는 일을 정부가 굳이 할 리 없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