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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15일 17시 42분 KST

박찬숙 본부장은 "여성 지도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찬숙 본부장은 12년 전 '남성 지도자들의 성범죄'를 강력히 경고했던 여자 농구계의 대모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제공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박찬숙(60)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은 최근 불거진 체육계 성폭력 파문에 대해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15일 오후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2007년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박아무개 감독의 성폭력 사건 당시 “남성 지도자들의 여성 선수 성추행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다.(당시 기사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박 감독이 그해 4월 미국 전지훈련 도중 만 19살의 신인 선수를 자신의 호텔방으로 불러 성폭행을 시도했던 사건이다. 당시 피해선수는 불안한 마음에 미리 도움을 요청했던 동료가 방문을 두드려 간신히 성폭행을 면했다. 박 본부장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다”고 돌아봤다.

박 본부장은 남성 지도자와 여성 선수간의 그릇된 주종 관계가 자신의 선수 시절이던 1970~80년대와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그래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 그런 일이 없었지만 다른 팀에선 여성 선수에게 안마를 시키는 일이 흔했다. 남성 코치나 감독이 선수의 신체를 주물럭거리는 추행도 비일비재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내가 은퇴한 이후에도 어떤 팀에선 여성 선수가 감독 방 문을 두드리면 남성 감독이 거리낌없이 팬티 바람으로 문을 열어준 경우도 있었고, 아파트에서 숙소 생활을 하는 팀에서 이런저런 사건도 많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12년 전 박아무개 감독 사건 이후에도 온갖 대책이 다 나왔지만 무엇이 달라졌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성폭력 가해자의 영구 제명 △선수 접촉 및 면담 가이드 라인 제시 △성폭력 신고 센터 설치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이번에 나온 대책을 보면 대부분 재탕, 삼탕이다. 정책만 내놓아선 안된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성폭력 파문으로 물러난 박 감독 후임 감독에 응모했지만 탈락했다. 그는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의 도움으로 우리은행 감독 선임과정에서 고용차별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그는 당시 “감독 최종 후보 2인까지 올랐지만 결국 남성 후보에게 또 밀렸다. 이전에도 번번이 뚜렷한 이유 없이 탈락했다.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상징’ 같은 존재이지만 프로팀 감독 문턱은 높기만 했다. 20년 역사의 한국 여자프로농구에서 역대 여성 감독은 딱 1명 뿐이었고, 그나마 딱 한시즌 뒤 잘렸다.

박 본부장은 정책적으로라도 체육계의 여성 지도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도자가 선수를 가르치다 보면 유도 등 투기종목을 비롯해 대부분 종목에서 신체 접촉이 일어난다. 그만큼 성폭력의 위험도 높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경각심을 가지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여성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거쳐 더 많은 연봉과 권력을 가진 실업·프로팀으로 갈수록 여성 지도자 수는 적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12년 전 사건 이후에도 여성지도자 20% 할당제가 대책으로 나왔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여성지도자 50% 할당제까지 도입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