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9년 01월 18일 16시 48분 KST

인도의 시골 마을에서 '결혼'을 선언한 레즈비언 커플을 만났다 (인터뷰)

원하지 않는 남성과의 결혼, 모욕, 협박, 조롱을 끝없이 받고 있다.

BETWA SHARMA/ HUFFPOST INDIA
압힐라샤(오른쪽)와 디프시카(왼쪽) 

하미르푸르, 우타르 프라데시주, 인도 지난해 12월 28일, 인도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에서 두 젊은 여성이 몰려든 기자들에게 “우리는 미디어 앞에서 부부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관청에서는 그들의 결합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압힐라샤(Abhilasha, 22세)는 아내인 디프시카(Deepshika, 22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어딜 다녀왔니?’라고 물었다. 나는 ‘미디어 앞에서 결혼을 선언했고, 이제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난 6년 동안 압힐라샤와 디프시카는 강제 별거, 원하지 않는 남성과의 결혼, 모욕, 가족들의 끝없는 조롱을 견뎌왔다.

그들이 미디어 앞에서 결혼을 선언한 것은 △둘 사이의 사랑 △가족들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동성결혼이 인도에서 법제화됐다는 착각의 결과물이었다.

인도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동성 섹스를 금지하는 식민지 시대의 법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이 났을 때 두려웠다. 나는 누나가 이럴 줄 알았다.” 압힐라샤의 남동생 프라디프(Pradeep)의 말이다.

“이제 그들에겐 데리고 살아줄 남편조차 없다.”

“우리가 사는 곳에선 여성 두명이 결혼한 적은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우린 그렇게 해야만 했다.” 디프시카의 말이다.

 

부모 만나기

결혼 2주 후, 허프포스트 인도는 압힐라샤와 디프시카를 만났다. 그들은 하미르푸르의 작은 마을인 라트(인구 약 65,000명)에 있는 압힐라샤의 집에 살고 있었다.

압힐라샤의 집을 고른 이유는 디프시카가 집에 돌아가면 학교 교장인 아버지가 자신을 때리고 집에 가둘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힐라샤의 집에서도 두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육체적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들어, 쉴 새 없이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안전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Vyacheslav Argenberg (www.vascoplanet.com) via Getty Images

압힐라샤의 가족도 몹시 불편해한다. 어머니인 프리얀카 데비(Priyanka Devi)는 하루 200루피(한화 약 3,150원)를 받는 육체노동자다. 아버지 프리탐 싱(Pritam Singh)은 석공으로 일하며 하루 400루피(한화 약 6,300원)를 번다.

압힐라샤가 디프시카를 데리고 와서 ‘결혼했다’고 선언한 날, 어머니  데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집에서 떠나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문을 잠그라’고 했다.

결혼 소식이 퍼지자 디프시카의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디프시카의 오빠 바누 프라타프(Bhanu Pratap)는 데비에게 ‘두 사람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했다.

“디프시카의 가족들이 와서 죽일까 봐 두려웠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 딸을 납치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애 아버지는 여기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압힐라샤와 이학사 과정 중이던 디프시카는 작고 어두침침한 방에서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직업이 없었으며, 그들의 마을에서는 의미 있는 직업을 찾기 힘들다. 군데군데 겨자밭과 불법 모래 채굴장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유머만이 제정신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우리는 계속 웃는다. 우리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는가? 웃기 아니면 울기, 살기 아니면 죽기밖에 없다. 우리는 웃기와 살기를 선택했다.” 압힐라샤의 말이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빨간 저지와 흰 바지를 입은 압힐라샤는 자라날 때 긴 머리를 쪽 찌고 다녔다. 자신이 여자아이들에게 끌린다는 건 언제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표현할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나는 여자아이들을 만지고 키스하는 걸 좋아했다. ‘레즈비언’ 같은 이름이 있다는 건 몰랐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당연하게 느껴졌다.”

압힐라샤는 디프시카와 사랑에 빠지기 전 다른 여성들과도 접촉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상당수의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의 감정은 억압된다.”

둘 중 더 조용한 편인 디프시카는 17세 때 압힐라샤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이들은 6년 동안 만났다. 압힐리샤의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만났고, 길게 전화 통화도 했다. 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아냈다.

Dua Aftab / EyeEm via Getty Images

“우리가 같이 다니면 다른 여성들이 ‘쟤들이 키스하던 애들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압힐라샤가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만남을 금지당했지만, 그 명령을 따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압힐라샤는 자기 고향과 라자스탄의 주술사를 억지로 만나야 했다. 자신의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주술사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결혼

압힐라샤가 19세가 되자, 부모는 남편감을 찾아왔다. 12학년까지 다녔고 무직인 남성이었다.

“나는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같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얘(압힐라샤)는 가족에게 굴복했다. 한 달 동안 전화가 없더니, 다시 전화해서 자살하고 싶다고 했다.” 디프시카의 말이다.

몇 달 동안 압힐라샤는 억지로 결혼시키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약혼을 거부하자 아버지가 때렸다. 결국 집의 상황이 악화되자, 압힐라샤는 감정적 협박과 위협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2년 뒤에는 디프시카가 가족들에게 빌게 되었다. 그녀를 기계공인 남성과 결혼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결혼식 전에도, 결혼식 날에도, 결혼 후에도 나는 자살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압힐라샤와 같이 살고 싶다고 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동생의 좋은 짝을 찾아주었다. 그는 글을 못 읽는 사람도 아니었다.” 디프시카의 오빠 바누 프라타프(Bhanu Pratap, 24세)의 말이다.

“기계공이었는데, 동생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

디프시카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단지 자기 짝이 아닐 뿐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내가 섹스하기를 거부하면, 그는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압힐라샤에 대해서도 알았다. 내가 압힐라샤와 통화할 때 그가 내 옆에 있곤 했다.”

압힐라샤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 했고, 그녀의 부모들 역시 죄책감을 씌워 남편과 성관계를 갖게 만들려 했다.

“상황이 정말 나빠졌고, 때로는 서로 때리기도 했다. 내 부모는 우리의 ‘명예’(izzat)를 위해 ‘그냥 하지 왜 그러냐’고 했지만, 잘못된 것으로 느껴졌고 난 결코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압힐라샤는 2016년 이혼했다. 디프시카는 압힐라샤와 살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왔으나, 법적으로는 기계공인 남편과 결혼한 상태다.

 

‘교육의 남용’

현재 무직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디프시카의 오빠 바누는 디프시카가 가족들, 특히 학교 교장인 아버지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고 말한다.

“수치스러운 행동 아닌가? 여성과 여성의 결혼은 자연과 신에 반하는 것이다. 대법원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마을에 산다.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디스피카가 그 생각을 했을까?”

압힐라샤의 남동생 프라디프는 대학생이고, 바누와 다르지 않다. “여긴 분델칸드다. 분델칸드에서 여성의 90%는 지금도 남성을 섬긴다.”

프라디프는 누나가 감히 결혼할 용기를 낸 것이 교육 때문이라고 믿는다.

“인도에 이런 여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10명 중 1명? 하지만 실제로 결혼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되나? 100명 중 1명? 심지어 그런 여성들도 남성과 결혼하고 결혼 상태를 유지한다. 난 이런 걸 ‘교육의 남용’이라고 부른다. 누나가 문맹이었다면 혼자 살았거나 남편과 함께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경제적 골칫거리

압힐라샤의 가족들을 괴롭히는 건 망신살만이 아니다. 그들은 두 사람 때문에 가족의 돈이 새나간다고 생각한다.

프리얀카 데비와 남편은 압힐라샤의 네 동생을 키우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한다. 압힐라샤를 남성과 결혼시키면, 겉보기에 그럴싸할 뿐 아니라 경제적 책임을 넘길 수도 있다.

Philippe Marion via Getty Images

압힐라샤의 동생 프라디프는 말했다. “직장을 구한 다음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하라. 왜 아버지에게 짐이 되는가?”

아버지 프리탐은 압힐라샤의 결혼식에 돈이 3~40만 루피(한화 약 5~6백만원) 들어갔다고 말했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저질렀다. 그들은 떠나야 한다. 계속 이 집에 살게 할 여력이 없다. 알아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두 사람은 원래 취직을 하고, 결혼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남성과 결혼시켜 묶어두려는 음모가 끝없이 이어져서 결국 최대한 일찍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두사람은 델리의 공장에서 일할 의사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지 겁에 질려 있다.

“여성에 대한 범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디프시카의 말이다.

“내가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도와달라.” 압힐라샤의 말이다.

 

아직도 위험하다

디프시카는 압힐라샤의 집에서 외부인이다. 자신을 향한 반감과 적대감에 짓눌리는 느낌이다. 압힐라샤의 부모들은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지만, 집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족들은 두 사람을 조롱해댔고, 이 상황은 언제든 더 나빠질 수 있다.

“우린 여기서 살 수 없다. 이건 고문이다. 빨리 떠나야 한다.” 디프시카의 말이다.

“나는 놀림과 조롱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디프시카에겐 끔찍한 일이다. 디프시카가 우는 것을 난 견딜 수 없다.”

압힐라샤는 디프시카가 엄격한 얼굴의 장인을 피하며 지내는 모습을 거의 코믹할 정도로 묘사했다.

“아버지가 안에 있으면 디프시카는 뜰로 나간다. 아버지가 뜰에 있으면 디프시카는 지붕에 올라간다. 아버지가 지붕에 올라가면 디프시카는 집안으로 달려 들어온다.”

이들은 경멸받는 데 지쳤다. 그들만의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적 독립이다.

디프시카가 압힐라샤에게 기댄다. 압힐라샤는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맹세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얘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얘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

디프시카는 “나도.”라고 말했다.

* 허프포스트 INDIA의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