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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곁을 지키는 이들과 동행하기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Westend61 via Getty Images
ⓒhuffpost

재일조선인 사상가 서경식과 한국의 철학자 김상봉의 대담을 담은 『만남』을 읽으며 심한 부끄러움과 괴로움에 빠진 적이 있다.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통한 만남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김상봉과 반대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서경식 사이의 위태위태한 대담은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를 묻게 했고 그 답할 수 없음에 며칠 앓아눕게 하였다.

고통을 나누는 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을 만드는 현실은 김상봉의 주장과는 달리 서경식의 말에 더 가깝다. 내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이란 만나기 위해서는 말을 나눠야 하는데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을 통한 연대는 종종 “너희가 내 고통을 아느냐?”는 울부짖음으로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통이 공동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있던 공동마저 깨버리는 경우가 많다. 깨지는 순간에야 사람들은 그 공동이 자기들의 머릿속에서 그리던 그런 공동이 아니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동이 깨지는 것이 더 큰 고통이 되어 고통의 당사자들을 덮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고통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고통이 발생했다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하는 순간, 공동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특히 그 고통이 자신이 있는 곳의 비리나 부정, 폭력으로부터 야기된 피해로 인한 고통일 경우에 고통의 당사자는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공동을 깰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멈칫거리게 된다. 고통에 관해 말하고 난 다음 공동이 깨지면 그것을 깼다는 죄책감에 새로운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 점을 노리고 많은 조직들은 고통에 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억압한다. “너 하나만 입 다물면 모두가 편안하다”는 말로 아예 입을 봉해버린다. 가뜩이나 자기가 입을 열 경우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는 사람들은 이런 협박 앞에서 더욱 입을 다물고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제거되거나 스스로 사라진다. 고통을 말할 수 없다는 실존에 부딪히기도 전에 고통을 아예 말해서는 안 된다는 폭력에 의해 말소된다. 이런 폭력의 가장 잔인한 측면이 바로 고통의 당사자로 하여금 그 실존성에 다다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런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 고통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피해를 말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고통의 극한 지점이 개인의 실존에 닿아 있다면, 피해는 그것이 야기하는 고통의 크기와 정도와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응답되어야 한다.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말이 고통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그것은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말로 둔갑해서 피해에 대해 입 다물게 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고통과 피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피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고통은 언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조직이 억압하지 않더라도 고통을 말하는 순간 공동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마치 고통이 없었던 것처럼 고통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쓰는 동안 나는 이에 대해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한 분으로부터 들었다. 그분은 외딴 섬에서 나고 자랐다. 그분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동생이 부모님이 뭍으로 출타한 사이에 열병에 걸려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부모는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아이의 상을 치른 후 부모가 한 일은 나에게 말을 전해준 분을 포함하여 자식들을 뭍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동생이 죽은 그 고통의 현장에 다른 자식들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장소에 있는 한 계속해서 그 죽음이 회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이 가족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아무런 죽음도 없었던 것처럼 살았다고 한다. 뭍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집으로 찾아갈 때도, 뭍으로 자식들을 보러 부모가 나올 때도, 대학에 진학하고 결혼을 하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 명절에 방문할 때도, 아무도 그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지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역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늘 그들 근처에 머물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그 죽음을 늘 의식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죽음이 없었던 것처럼 매일 연기하고 연기하는 만큼 죽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하나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아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을 잃은 내 슬픔이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 견줄 수 있을까. 아이를 잃은 내 슬픔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죽음을 목격한, 그것도 부모가 부재한 상황에서 죽음을 목격한 자식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또 정반대의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면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내 고통을 아느냐?”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 말이다. 이 두 마음 사이에서 가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만이 이 가족의 ‘공동’을 파괴하지 않는 일이었다.

고통을 통한 연대가 아니라 슬픔을 같이 공유할 수 없다는 그 침묵으로 이 가족은 서로에게 곁이 되었다. 그 고통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무도 누구에게도 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곁이 되었다. 모두가 고통의 당사자인 이 가족은 침묵으로 슬픔을 공유할 수 없는 슬픔을 공유하며 곁이 되었다.
이 가족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곁, 즉 유대와 연대의 가능성에 관해 배우게 된다. 고통을 통한 연대, 정확하게 말하면 고통을 통한 직접적인 연대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고통을 통해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곁이 만들어지고 그 곁으로부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회’만을 통해 가능하다. 고통의 곁에 곁이 되는 연대를 통해서, 혹은 슬픔을 공유할 수 없다는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동행과 연대는 고통으로부터 한 다리 건넌 우회만을 허락한다.

이 우회를 통해서만 우리는 고통과 동행할 수 있다. 그 동행을 견딜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고통이 만드는 절망을 동행이 주는 기쁨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그나마 생긴다. 그리고 혹여라도 고통이 끝난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아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을 계속해서 도모하다가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면 고통을 끝맺을 수 있다.

이 가족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죽음으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난 어느 명절에 부모가 계신 섬에 방문했다. 노년에 집을 개조해서 숙박업을 하고 있던 이 집에 웬 낯선 청년이 한 명 있더란다. 어느 날 섬에 흘러 들어온 청년인데, 청소하며 일을 도울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찾아왔단다. 그날로 이 집에 눌러앉게 되었고 밥을 먹는 것에서부터 잠을 자는 것에 이르기까지 스스럼없이 부모와 너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같이 하였다고 한다.

“OO가 돌아왔네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몇 십 년 만에 죽은 동생의 이름이 가족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다. 그리고 그 숱한 세월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차마 말을 꺼내지 않았던 이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환생해서 돌아온 자식을 두고서야 가슴에 묻었던 자식의 이름을 꺼냈다. 그리고 이 환생한 자식과 더불어 그들은 더 단단한 ‘공동’이 되었다.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언제 고통에 관해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것은 고통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될 때다.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는다면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말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무 가치가 없는 일이기에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끝나지 않는다면 말할 이유가 없다. 말할수록 상처만 더 깊어진다.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말이다.

고통은 끝나고서야 말할 수 있다. 고통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서야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함몰되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고통은 끝나지 않으며, 고통이 끝나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도모하다가 그것이 시작되었을 때 고통은 끝날 수 있다. 환생한 자식과 함께 살아가며 죽은 자식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며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

나는 오랫동안 인권 활동의 곁에 머물러왔다. 감히 인권 활동을 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책을 읽고 사람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의미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인권 활동의 변두리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 변두리에서 인권운동을 하다가 지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많이 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는 타인의 고통, 그 곁에 머물다가 자신의 곁을 구축하지 못한 경우가 꽤 많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절망에 자신들도 함몰되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이와 동행하다가 자기가 붕괴해버리는 것이다.

인권 단체에 있다 보면 수도 없이 전화를 받게 된다. 고통의 당사자들이거나 당사자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걸려온 것이다. 이들은 한도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원한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듣다가 “선생님, 이제 그만하시지요”라고 하면 벼락같이 화를 낸다. “인권 단체라고 했으면서 이 이야기도 들어주지 못하냐?”고 말이다. 자기 이야기는 한두 시간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하더라도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말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지쳐 나가떨어진다.

고통과 동행하려는 이들이 몰랐던 것이 있다. 바로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는 점이다. 고통과 동행하려다가 끝끝내 그 고통이 동행을 모르게 되어 자기가 망가지고 난 다음에야 이것을 알게 된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고통은 동행을 모르기에 끝끝내 동행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렇게 곁과 동행을 파괴한 다음에는 그래서 자기가 고통스럽다며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하고 다시 다른 동행을 집어삼키려고 한다.

그렇기에 고통과 동행하려는 인권활동가들은 늘 자기가 파괴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실제로 많이 파괴되었다. 나는 이 현상을 오랫동안 목격하며 나의 위치와 의무에 관해 묻곤 했다. 고통과 동행하려는 이에게, 그 곁에 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특히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 언어를 만드는 게 임무인 나 같은 인간,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그들과 함께 고통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동행하는 그들에게 동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고통의 자리에 아직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곁이 되는 것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숙고하여 다른 이야기로 변위해 돌려주고, 그들이 거기에 다시 응답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 말이다.

* 필자의 저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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