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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을 보고 떠오른 오싹한 기억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장르는 스릴러다.

ⓒhuffpost

생각해보면, 오싹한 공포 괴담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 늦은 밤, 교실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 쿵쿵쿵쿵.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교실에는 전교 2등이 있었다더라. 쿵쿵쿵 가까워져오는 소리는 억울하게 떨어져 죽은 전교 1등이 머리로 서서 뛰어오는 소리였다더라. 초등학교, 중학교를 배경으로는 이런 종류의 괴담이 없는 이유가 고등학교엔 ‘야간자율학습이 있어서’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그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괴담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장르는 스릴러다. 드라마 'SKY 캐슬'을 보고 오랜만에 그 오싹함이 기억났다. ‘공부하는 뒤주’라고 불리는 가정용 독서실 박스.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붙여 놓은 협박성 격언.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유행했던 삐삐삐 소리가 나는 귀에 끼우는 기계. 주변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앞만 봤다. 수백명이 함께 자습을 하던 독서실에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는 행동이 금지였다. 스스로를 방해 자극으로부터 고립시켜야, 그렇게 고생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공식을 교육받았다.

학생의 자율성을 박탈해주고 돈을 받으면서, 종종 이걸 교육이라고 부른다. 방학에 성행하는 공부 캠프에 ‘자율’학습 멘토로 돈을 벌러 간 적이 있다. 합숙소 주변에는 편의점도 슈퍼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국도뿐이었다. 운동장에서 뱀이 나오고 개구리가 나왔다. 그런 곳에 캐리어를 내려놓고 부모님이 떠나가면, 학생들은 10박11일 동안 형광 조끼를 입은 멘토 선생님들과 공부를 위해 고립되었다. ‘여기서 집중할 것은 공부뿐’이라고 선전했다. 자율학습이란 이름을 달고 하루 8시간, 10시간씩 책상에 앉혀 공부를 시키면서 화장실 갈 때도 허락을 구하게 했다. 고립시키고, 통제하고, 절박하게 만드는 것을 ‘집중력을 키우는 일’이라며, 교육이라고 불렀다. 방해되는 것은 모두 대신 치워주고, 대신 통제하고, 자율성을 박탈하는 걸 좋은 교육이라며 홍보했다. 오싹하다.

방학이면 학원가엔 ‘자물쇠반’ 마케팅이 유행한다. 대학 입시반뿐만 아니라 토익 공부, 공무원시험 공부에서도 자물쇠반이란 키워드를 쓴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가둬놓고 공부를 시켜주는 반이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수험생에게 돈을 받고 자율성을 박탈해준다. 시험으로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공식은 십대로 끝나지 않고 이십대로 옮아왔고, 성공을 위해 많은 사람이 또다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뒤주로 들어간다.

일자리를 향한 또다른 ‘합격’을 준비하면서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이들은 주변 사람과 모든 연락을 끊고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진다. 아직 합격을 못한 면구스러운 상황이니 가족과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원에서도 괜한 낭비일까 싶어 친목을 경계한다. 자신을 끝까지 고립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해서 스스로 절박하게 만든다. 고립된 곳에서 혼자 노력한다. ‘내겐 이 길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시간, 돈을 모두 투자한다.

고립이 오래되면 점점 더 고립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이들 중엔 합격 소식을 들고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대로 사라지는 사람도 많다. 다시 돌아오지 않고. 우리는 그 수가 얼마인지도 알지 못한다. 이런 현실의 장르도 스릴러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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