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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여학생회 폐지, 백래시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서울권 대학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총여)가 출범 3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4일 밤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및 총여 관련 규정 파기, 후속기구 신설의 안’ 학생총투표 결과 찬성 78.92%(1만763명), 반대 18.24%(2488명), 기권 386표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앞서 비대위는 지난 2일부터 이날 밤 9시까지 온라인 전자투표 방식으로 총여의 존폐를 결정하는 학생총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는 투표권자의 54.88%인 1만3637명이 참여했다.

이로써 1988년 출범 이후 31년간 명맥을 이어온 연세대 총여는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성폭력담당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이다. 총학생회장단 산하에 꾸려질 위원회는 연세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다룬다.

 

 

그 많던 총여는 어디로 갔나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한때 30여개가 넘는 대학에서 총여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서울대는 총여 회장에 출마하는 후보가 없어 1993년 없어졌다. 고려대는 총학생회 산하에 여성위원회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총여 폐지가 시작됐다. 건국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는 2013년, 홍익대학교는 2015년 총여를 폐지했고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2014년 독립기구였던 총여를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편입했다. 숭실대는 2016년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총여 폐지를 결정했다. 경희대는 2017년 총여 ‘우리사이’가 있었으나 이후 입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아 지난해 3월과 5월, 11월 3차례 선거가 무산됐다. 성균관대도 지난해 10월 학생 총투표를 진행한 끝에 83.04%의 찬성률로 총여가 폐지됐다. 동국대는 11월 학생 총투표를 진행하고 찬성률 75.94%로 총여 폐지 안을 가결했고, 광운대 역시 10년 넘게 공석이던 총여를 공식적으로 없앴다.

특히 2018년에 도미노처럼 폐지된 총여는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의 확산과 맞닿아 있다. 페미니즘이 사회 주요 의제로 부상한 때 대학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되는 듯한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3월,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는 2015년 당시 이경현 전 성대 문화융합대학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밝히며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일부 성대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성균 미투’를 조직해 함께 시위를 하며 남 교수의 복직과 이 전 대학원장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 쪽은 성균 미투의 일부 참가자를 “선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막아섰다고 한다.

성대의 총여는 1985년에 생겼지만 2009년부터는 입후보자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 상태로 활동했다. 2012년에 마지막 후보가 출마했지만 투표율이 미달돼 학칙에만 존재할 뿐 없는 기구로 지속돼왔다. 결국 성균 미투에서 활동한 학생을 비롯한 독립적인 여학생 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모여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라는 모임이 지난 9월 만들어졌다. 이들은 ‘우리에게는 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란 슬로건을 내걸고 재학생 노서영(23)씨를 총여학생회장 후보로 내세웠다. 성성어디가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총여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있으면 총여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단과대 대표가 ‘총여학생회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폐지 총투표 발의안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재적 인원 3분의1이 동의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총여 폐지 투표가 이뤄지게 됐다. 남 교수의 미투 폭로를 계기로 학칙에만 존재했던 총여를 부활시키려 입후보를 문의했다가, 오히려 총여 자체가 없어져버린 셈이다.

연세대 총여는 과거 총학생회 산하에 있던 여학생부가 독립해 1988년 출범했다. 연대 총여의 운명이 투표에 맡겨지게 된 건 지난해 5월24일 총여가 작가 은하선씨의 교내 강연인 ‘대학 내 인권활동 그리고 백래시’를 주관하면서다. 당시 일부 학생들은 기독교 학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은하선씨의 강연을 여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대했고, 급기야 강연 이튿날인 25일에는 ‘총여학생회 퇴진 및 재개편 추진단’이라는 학내 단체가 꾸려졌다. 이 추진단은 현행 총여를 학생인권위원회로 재개편한다는 것을 뼈대로 서명운동을 벌였고, 총학생회 회원의 1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지난해 6월 학생총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총여 재개편’이 가결됐는데, 결국 총여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총투표가 이뤄져 통과된 것이다.

동국대는 총여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총여 폐지 여부가 투표에 부쳐져 폐지가 결정된 경우다. 성균관대, 연세대, 동국대의 총여학생회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폐지 됐다. 세 학교의 학생대표자들이 ‘학생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총여 폐지 총투표를 했고, ‘학생 다수의 판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총여학생회 폐지가 받아들여졌다. 다수의 결정이 곧 민주주의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실제로 총여가 폐지된 후, 총여 폐지론자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왜 총여가 폐지될까?

총여 폐지의 흐름은 대학 내에서 여성이 더이상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과거와 달리 대학 내에서 여성과 남성이 대등한 비율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대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지난 10월 만1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라는 데 남성의 39%만이 동의했다. 특히 20대 남성의 동의율은 23%에 불과해 전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또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의 3분의 1 이상(35.4%)이 “남성이 (여성에 비해)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처럼 20대 남성들은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남성이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페미니즘 논의가 사회 전반에서 활발해지면서 백래시(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최근 총여가 폐지되는 모습도 이와 관련된 흐름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익명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백래시가 활발했다.

대학생 인증을 받은 가입자 수가 280만명이 넘는 어플인 ‘에브리타임’은 대학 시간표 서비스와 학교별 게시판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 익명게시판에서 총여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에브리타임 익명 게시판을 보면 ‘페미 대자보를 찢고 그래야 가오가 산다’, ‘페미고 나발이고 취직 걱정이나 해라’와 같은 글들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대학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선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기에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익명이란 점을 활용해 페미니즘이나 총여에 대한 혐오발언도 쉬워졌다.

 

 

총여 폐지 흐름의 배경에는 여학생 복지사업에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총여 폐지론자가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투표권이 여학생한테만 있는데, 학생회비는 같이 내서 쓰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학생 휴게실 설치나 생리대 배부 등 총여가 진행하는 여학생 복지사업에 대한 반감이 컸다.

하지만 대학생 김민정(22)씨는 “총동아리연합회 또한 총여학생회와 마찬가지로 중앙동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학생회비를 쓰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일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국, 남자>의 저자 최태섭씨는 “총여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총여는 학생회비로 존재하는 기관인데 여학생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주장이 가장 강하고 힘도 있다”며 “안티페미니즘이 자신들의 핵심인데도 학생회비 사용 같은 문제들을 집요하게 걸고 넘어져서 자신들의 진짜 목적을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성차별적 주장을 다른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하고 동시에 작은 사실관계를 물고 늘어지면서 논점을 이탈하는 요즘 온라인의 논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 사회의 붕괴’도 총여 폐지의 한 이유로 꼽힌다. 총여 뿐만 아니라 학생회 같은 ’학생공동체’ 자체가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재학생 이 아무개씨도 “총여 뿐 아니라 학생회 자체에 관심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들이 학생들의 대의기구라기보다는 민원처리 기관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는 지난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총여학생회를 없앤 논리를 보면 이제 더이상 유니온샵 형식의 학생회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든 듯하다. 보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생대표체제에 대한 고민,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386체제를 진짜 넘으려면. 그러니, 총여는 없어진 게 아니라, 다시 세워지는 중이다.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지 아닐지 그 부분만 불확실할 뿐.”

성성어디가도 총여학생회 자체를 재건하려는 노력보다는 대학 내에서 총여가 도맡아 온 역할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노서영씨는 “앞으로 학생회가 아닌 방식으로 학내에서 성평등 의제로 활동할 계획이고, 3월 페미니스트 캠프를 기획하고 있다”며 “타대학들과 연대해 에브리타임 내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무분별한 인신공격,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대응은 물론 혐오발언 규제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캠페인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내 페미니스트들 간의 연결망을 구축해 사실상의 총여 역할을 할 연대체도 구성할 예정이다. “학생자치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지금 ’총여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말은, 총여에 버금가는 새로운 학생회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총여를 구성하던 이들이 모이고 커지고 강해져서 학생회 밖, 제도권 밖 정치를 해나가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미나를 이어 나가고 학내외 그룹으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활동하겠다.”(노서영씨)

동국대·연세대·성균관대 총여학생회는 지난 12월 공동성명을 내고 “한 해 동안 페미니즘의 진보와 혐오세력의 반동 가운데서 인간의 안전과 평등, 존엄성을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연대의 손길과 함께 했으며 또 하나의 거대한 여성주의 물결을 만들어나갈 가능성을 보았다”며 “우리는 거센 백래시를 맞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틀렸다’고 기꺼이 말하며 다시 경계 밖에서 행동할 것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여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다시 세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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