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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종이다" 10년 전 보도로 살펴본 스포츠계 성폭력의 구조

폭력, 협박,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폐쇄적인 사슬

  • 박세회
  • 입력 2019.01.09 13:29
  • 수정 2019.01.09 13:38
ⓒKBS 방송화면 캡처

또 10년이 지났지만, 무엇이 변했나?

10년 전에도 어린 선수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 폐쇄적인 수직적 구조 속에서 성폭력의 피해자로 방치됐다.  

2008년 2월 11일 체육계의 성폭력 사례를 폭로해 큰 관심을 끌었던 KBS의 ‘시사기획 쌈-스포츠와 성폭력에 관한 인권보고서’에는 한 스포츠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가족의 충격적인 증언이 담겨 있다.

″합숙소에서 저녁마다 하나씩 끌려가는데 알고서 잠을 못 자고 손을 다 묶고서 서로 안 끌려가려고 그러고 있었답니다.”

해당 사건은 2006년까지 스포츠계의 성폭력 사건 중 거의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건으로, 당시 피해 학생들은 미성년이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자료 영상에 육성으로 증언한 부모의 말을 들어보면 피해자가 처하는 물리적·심리적인 상황은 이렇다. 

1. 아이들은 서로가 혼자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으로 수치심 때문에 누구에게도 얘기를 못 했다.

2. 안 끌려 나오고 반항을 하면 다음 날 훈련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구타를 했다.

3. 구타가 무서워서 끌려가도 말을 하지 못했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성폭력 피해 사례를 조사한 후 KBS 측은 병폐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1. 합숙과 수업 결손, 그리고 구타가 만연한 비인간적인 훈련 환경.

2. 출전과 진학, 취업 연봉 문제까지 결정하는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하는 감독.

3. 결국 반인권적인 엘리트 스포츠 제도와 관행이 만들어낸 구조적인 문제. 

해당 보도가 이어진 후 스포츠 엘리트들의 행위보다 사고가 더 무섭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문제에 큰 목소리를 냈던 동아대학교 스포츠학부 정희준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팩트(fact)보다 그 공간에 횡행하는 멘탈리티(mentality)가 더 무시무시하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에는 이들의 정신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몇몇 발언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됐는데, 아래와 같다.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 여자 중등학교 운동부 감독, 회식 자리에서

″전 룸살롱 안 가요.”

-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 신문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KBS 영상캡처

‘시사기획 쌈’에서 한 증언자는 한 감독으로부터 ″선수는 자기가 부리는 종이다. 육체적인 종도 될 수 있다. 선수 장악은 성관계가 주 방법이고 둘째가 폭력이 있어야 확실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폭력 혹은 성폭력 사건이 만연하고 가해자들이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살 수 있는 이유에는 ‘묻고 가자’는 집단의 논리가 작용한다. 

‘시사기획 쌈’에서 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배구 선수는 ”피해사실에 대해 호소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라며 ”구단 총무 부장 등이 내려왔지만, 그 위에서 커트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사실 역시 공포다. 이 피해자는 “9인제 배구 시합을 나가게 되면 (나를 성폭행했던 가해자가) 공무석에 떡하니 앉아 있다.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라고 말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SBS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징계받은 체육계 인물 가운데 징계 직후 체육계로 돌아와 재취업한 사례는 38%”에 달한다. 이중에는 성폭력으로 제명됐다가 다시 코치로, 심지어 임원으로 승진해 재취업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뉴스1

여전히 어린 선수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 속에서 성폭행력의 피해자로 방치된다.  

지난 8일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22)씨가 2014년 만 17세이던 때부터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최초보도한 SBS의 8일 기사를 살펴보면, 이미 폭행 건으로 조 코치를 고발한 심 선수가 성폭행 사실을 적은 추가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지난해 12월 17일이다. 조 전 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던 날이다. 

이 기간 동안에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공론화를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측은 ”심석희 선수가 혹시 자기 말고 혹시 더 있을지 모를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변호인을 통해서 저희에게 보도해도 좋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심 선수가 폭로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한 팬의 편지 때문으로 보도됐다. 심 선수 변호인인 조은 변호사는 ”(한 팬이) 심 선수가 심하게 폭행을 당했음에도 올림픽이든 그 이후에든 선수 생활을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는 게 너무 큰 힘이 됐다면서 고백하는 편지를 주셨다”며 ”(심 선수는) 자기로 인해 누가 힘을 낸다는 걸 보고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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