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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08일 14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09일 09시 53분 KST

불신과 체념을 넘어서 한일협의체를 만들자

중요한 건 결과보다 대화 자체다.

뉴스1
huffpost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제국/식민지시대가 야기한 여러 문제들이 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한국과 일본양국정부는 초기에는 비교적 공조하는 듯 했다. 정부간 공조가 엇나가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일본정부가 주도해 민간기구형식으로 만든 “아시아여성기금”이 지원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한국정부가 대신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보상금을 실시하게 된 이후부터다(그래도 이때 60여명 할머니들이 기금과 일본총리의 사과문을 받았다). 그럼에도 2002년에 월드컵축구대회를 한일양국이 공동개최할 수 있었던 건, 당시엔 아직 정부간 공조틀이 기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도 존경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05년에도 독도문제가 일촉즉발의 사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당시엔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노력한 이들이 있어, 사태는 일단락되었었다. 평화로운 해결 뒤에는, 사려깊고 유능한 외교관들이 있었다.

갈등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했던 한일관계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1년말,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부터다. 일본측에서 체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나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은 언제까지고 일본을 미워한다.”는 것이 관계개선희망을 버리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목소리였고, 그건 노련한 정치가부터 젊은 학생까지 예외가 없었다. 그들은, “이제는 한국과 어떻게 사귀어야 할 지 방도를 모르겠다.”고 슬픔 혹은 분노를 담아 말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그런 생각은 한국사회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어쩌다가 일본의 분노 혹은 체념이 전해져도, 90년대와 2000년대에 ‘피해자’ 지원단체의 주장이었던 “사죄하지 않는 일본/뻔뻔한 일본”의 이미지를 내면화하게 된 대부분 한국인들은 그저 적반하장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일본과의 관계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자존심’ 가득한 태도로 일관했다. 일본은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식민지지배라는 과거가 만든 필연적 ‘감정’을 더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한국은 현대일본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려 하지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상대를 우선 제대로 보려 하는 사려깊은 태도를 갖는 이들이 양쪽에서 함께 적어진 건 그 결과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지금 양측 국민들이 상대에 대해 갖게 된 인식이 대부분 학자와 지원단체등 ‘당사자 주변인’들, 혹은 일부 역사학자/법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언론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식을 경쟁하듯 확산시켰는데, 그 경쟁은 좌우싸움, 다시 말해 냉전체제 종식 이후의 아이덴티티 싸움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금 문제시되고 있는 징용판결은, 전적으로 일부 좌파학자들이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시각에 기반한 판결이다. 다시 말해, 한일합방불법론, 1965년한일협정파기론,그리고 위안부문제등 과거의 ‘국민’동원 해결책으로서의 법적배상/책임론을 이 판결들은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 물론, 지금 병행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거 사법부와 정부관계자들에 대한 ‘재심’ –조사/수사/처벌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판결들이 철저하게 우파적 시각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좌파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문제는 ‘좌파’의 시각이거나 ‘우파’의 시각 자체가 아니다. 그 시각들이 (1)학문적으로 올바른지, (2)아직 진행중인 학문적논의중 일부를 사법부가 무비판적으로 가져와 판결을 내려도 되는지, (3) 좌파와 우파가 혼재된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그러한 사법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에 있다. 그리고 나는, 현정부가 지난 정부의 우행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징용판결의 핵심은 배상금 요구가 과거의 학대와 차별에 대한 “위자료”라는 데에 있다. 일본이 이번 판결을 무조건 비난하는 건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의 취지는 스스로 명확히 밝혔듯,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아직껏 일본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지는 못했던, 식민지배치하에 놓였던 이들의 정신적/물리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 요구였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가 일어난 건 냉전체제때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했을 때 ‘식민지지배’에 대한 배상금요구를 징용자등 일제에 ‘국민’으로서 동원당한 이들이 대표해야 하는지는 별개문제다. ‘식민지 지배’가 만든 차별이 야기한 최대 피해자는, ‘제국국민’으로 간주되어 동원되었던 이들 이상으로, ‘제국’을 위협하는 ‘적’으로 표상되어 길가다 살해당해야 했던 관동대지진 피해자라고 해야 한다. 혹은 물리적인 고통이 없었어도 총체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야 했던 모든 피지배자들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국회가 그러한 과거에 대한 총체적인 사죄의 마음을 담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국회결의라는 형식에 담아 했으면 좋겠다고 최근 몇 년 주장해 왔다. ‘국회’야말로 말 그대로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란 주관적인 것이기도 해서, 타자가 그 크기를 단정할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피해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그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말없는 죽은 자들도 떠올려야 한다. 동시에, 개인의 피해가 정치/외교문제가 되어 ‘국민’의 문제로 비화한 이상,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한일합의’는 양국 외교관들이 노력해 만들어낸 성과였지만, 올바른 사태이해에 바탕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들의 생각을 ‘국민상식’화하는데 성공한 일부 학자/지원단체의 반발이 정부를 움직여 결국 합의를 뒤엎게 한 건 예견된 일이었다.

한일 양국은 과거에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접점찾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런데 그 실패는 상대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기주장 내세우기에 급급했던 결과였다.

따라서 제안한다. 다시 한번 과거역사가 만든 여러문제들을 논의하는 한일협의체를 만들자고. 그리고 정부와 학자들이 지금의 불화를 슬기롭게 넘어설 방도를 찾아 보자고. 언론은 문제의 논점이 어디에 있는지 그 논의를 경청하고, 각 문제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고작 몇사람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전국민의 인식이 되고 마는 이제까지의 구조를 깨뜨릴 수 있다.

중요한 건 결과보다 대화 자체다. 대화가 이어지는 한, 과거의 불행한 시간들은 극복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 4반세기의 갈등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늘 발밑 아래 있는 법이다.

다시, 대화를 위한 한일협의체를 만들기를 제안한다. 양쪽정부와,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는 한일 학자와, 그 외 관계자들이 함께 하는 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 화해치유재단이 남긴 금액과 정부가 새로 마련한 금액을 그 대화에 사용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갈등이 남긴 유산으로도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양국정부가 차세대에게 보여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