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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교수는 마지막까지 의사였다

임 교수의 유족이 슬픔 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huffpost

2013년 처음 정신과 보호(폐쇄)병동을 방문했다. 진정사건 조사를 위해서였다. 문을 열자 병동 전체를 가득 채운 지린내가 엄습했다. 환자들은 한방에 7명씩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았는데 산책을 나설 장소도 없었다. 병동은 도심 한가운데였다. 옥상에서 몇 사람이 담배를 피울 시간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만난 환자는 3개 병원을 회전문식으로 돌며 461일간 입원해 있었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 중 4~5명이 조현병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질환을 경험한다. 그 수만큼이 오줌 냄새 나는 병동에서 오래 생활하는 건 물론 아니다. 특히, 부유하고 사회적 지지망이 넓은 사람은 빨리 병을 발견하고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초기 진료를 적절히 받아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가난한 정신질환자 중 다수는 치료 시기를 놓치고 증상이 심해진 상태로 병원에 끌려와 그저 병원을 수용소처럼 이용한다. 2016년 기준 정신과 병동 전체 입원환자의 66%는 의료급여 환자였고 의료급여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 대비 입원 기간이 2배나 길었다. 최근 개선되고 있지만 2년 전까지 의료급여 환자에게 지급되는 약값과 치료비는 하루 2770원이었다. 정신질환의 치료와 회복은, 여느 질병 이상으로 계급화되어 있다.

열악한 재정 여건하에서도 병원 규모와 관련 없이 질 높은 진료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이 적지 않다. 잘 알아보되 진료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병원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럼에도 의료급여 환자들을 주로 수용하는 작은 규모의 병원들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일이 암이나 척수 손상 같은 중대한 질병이나 사고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연 그런 강제수용은 치료의 효과가 있을까? 환자들은 질병이 만성화되면서 사회, 가족, 자신의 인격으로부터도 소외된다. 어떤 환자들은 오히려 원한만 품는다. 회복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사회.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의 범죄가 터질 때마다 모든 언론이 그 위험성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왜 정신보건 시스템을 이런 상황으로 존속시켰는가? 2015년까지 우리나라의 강제입원 비율은 73.5%로 10~20% 내외의 미국, 대만, 영국, 이탈리아 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일본도 60% 내외였다) 정신질환에 걸려 일할 수 없게 된 가난한 사람들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격리하는 데만 성공한 것이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니 강제입원을 더 쉽게 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같은 강제입원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환자들을 더 위험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발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환자조차 병원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위험을 증가시키지는 않는지에 관한 고려가 없다. 2017년 새로운 법 시행 이후 감소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높은 강제입원이 이뤄지는 나라라는 점도 간과한다.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임세원 교수의 사망 후 나는 이 주제에 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위에 서술한 모든 내용을 확신하지만, 평생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진료를 본 사람이 바로 그 진료실에서 살해당한 이 사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싶었다. 그때 임 교수의 유족이 슬픔 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고인의 뜻이라고 했다. 임세원 교수는 사후에도 상처받은 사회를 그 뜻으로 회복시킨다. 마지막까지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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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정신질환 #임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