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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07일 15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1월 07일 15시 17분 KST

왜 이렇게 너나없이 젖가슴이란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우리의 문학엔 여성혐오가 만연했다

huffpost

 


각 대학원이나 국가기관, 혹은 한겨레 문화 센터 같은 곳에서 문인 육성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나라에 문학중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과거에 훌륭한 문학청년, 문학소녀였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업으로 인해 잠시 꿈을 접었다가 이제 좀 먹고살 만해지자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그곳으로 모였다. 나라고 뭐 달랐겠는가. 어릴 때부터 무수하게 책을 읽었고, 책이 내 인생을 구원했다고 믿었고, 그렇게 나 역시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남성 문학 중년들에게서 높은 빈도로 젖가슴이란 단어를 접했다.

둥그렇게 솟아 있는 건 모두 젖가슴으로 비유되고 있었다. 동산은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이었고, 둥그런 과일들은 탱글한 젖가슴이었다. 그때 알았다. 젖가슴은 유행어였다는 걸.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으면 그 앞에 젖가슴이란 글자를 붙이면 되었다. 신선한 느낌을 주고 싶으면 소녀의 젖가슴이라고 표현하면 되었고, 아스라한 그리움을 주고 싶으면 어머니의 늘어진 젖가슴이라고 표현하면 되었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힘들게 써온 글일 텐데 더럽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합평시간엔 입을 다물었고 식당에서 만나면 자리를 피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친구들하고 어울렸다. 그리고 그들과 그 단어의 저속함을 논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던 문학중년들은 수업시간에도 그 단어를 썼다. 더 나아가 여성혐오 발언과 성희롱 발언도 종종 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변한 세상에 적응을 못 한 사람들이었을 뿐, 결코 변태들은 아니었다.

st_lux via Getty Images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너나없이 젖가슴이란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누가 시작했을까. 기원을 찾아보기 위해 책장을 둘러보았고 서재를 뒤져보았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오래전에 쓴 글에도 젖가슴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문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문학엔 여성혐오가 만연했다. 비판의식 없이 그냥 읽으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젖는 거다. 다른 눈으로 집안 곳곳에 꽂힌 책을 둘러봤다. 내가 힘들 때 읽고 희망을 얻었던 에세이들이 여성혐오를 내뱉고 있었다. 재밌어서 만나는 사람에게 추천했던 소설들 여성혐오를 하고 있었다. 과거 페미니스트로 활동했던 작가의 기행문 또한 여성혐오였다. 새로운 잣대로 집안을 거닐어보았다. 거실의 책장을 둘러보고, 침실의 책장을 둘러보고, 서재를 둘러보았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책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많이 씁쓸하고 허망했던 날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미문(美文)을 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미문에 능한 작가가 젖가슴이란 단어를 썼고, 그것이 독자의 뇌리에 깊게 남아서 시도 때도 없이 각자의 문장에서 소환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혐오의 의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 단어가 들어가는 문장은 추문(醜文)이 된다. 추문일 뿐 아니라, 상식에도 맞지 않고 여성을 모독하는 문장이 된다. 그렇게 된지 오래다. 그 사실을 본인들만 모른 채 오히려 독자들에게 문해력이 모자란다며 큰소리치는 판국을 보고 있자니 오늘도 가슴이 썩는다. 물론 문학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이 시대에 맞춰 업데이트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은 한국문학을 읽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시대다. 그래도 나는 말하련다. 나는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다. 계속해서 한국 문학을 읽을 것이고, 그곳에서 접한 여성혐오를 고발할 것이다. 부디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란다. 김연수 작가가 그랬던가. 미문(美文)을 쓰고 싶으면 미생(美生)을 살라고. 글에선 그 사람의 품성이 드러나니,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으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믿는다. 새로운 시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일도 아름다운 인생에 포함될 것이라고. 이 시간에도 문학이란 이름으로 여성혐오를 내뱉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