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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롤모델로 언급하는 '밥블레스유'를 보면서 드는 생각

서른이 넘자 '친구 커뮤니티'에 변화가 생겼다.

  • 홀로
  • 입력 2019.01.06 19:07
ⓒ올리브TV
ⓒhuffpost

서른이 넘자 나의 ‘친구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결혼한 친구와 안 한 친구로 나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안 한 사람’에 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혼 친구들끼리 더 자주 모이게 된다. “집에 언제 들어오냐”고 채근할 사람이 없는 1인가구들은 주로 누군가의 집에 음식과 술을 싸 들고 모여 새벽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먹고 마신다. 그리고 자리가 무르익으면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 귀결되곤 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삶의 태도, 방식 등을 비롯하여 주거, 커리어, 보험과 건강, 은퇴 뒤 삶에 대한 불안과 각종 신세 한탄까지 포함된다.

다들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라 “나이 들어서도 혼자이면 가까이에 살면서 서로 돌봐주고 계속 즐겁게 살자”며 실현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마을 공동체’ 이야기까지 하면서 술잔을 부딪치게 된다. 그때 ‘○○○ 사람들처럼 우리도 친구들끼리 즐겁게 살면 되잖아’라고 롤모델로 언급하는 것이 <밥블레스유>의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얼마 전부터는 장도연도 추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 혼자 살 때 ‘이 사람들처럼 살면 재밌겠다’라고 상상할 만한 롤모델이 없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처럼 ‘혼자이지만 함께 즐거워 보이는’ TV 속 여성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밥블레스유>는 송은이가 대표로 있는 비보TV에서 제작하고 <올리브TV>에서 방송하는 푸드예능 프로그램이다. 송은이와 김숙의 팟캐스트 ‘비밀보장’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고민 상담을 해주면서 ‘그럴 땐 이걸 먹고 풀어’라고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들이 위로해주는 형식이다. 남성 MC 군단이 TV 예능을 점령한 한국 현실에서 설 자리가 없었던 여성 예능인이 직접 판을 짜고 친한 친구들의 특징을 발굴해 자기 방송에서 알리고 그것을 지상파로 확장해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방송했던 <김생민의 영수증>과 <밥블레스유>는 여러모로 칭찬받아 마땅한 프로그램이다. 연초부터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 ‘올해 목표는 영자 언니 대상 만들기’라더니 정말 연말 시상식에서 이영자가 2관왕을 하게 만든 건 또 어떻고. 비록 본인은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지만 송은이가 제작자이자 기획자로서 활약하고 이영자와 최화정 등 지인들의 커리어에 꽃을 피워줬다는 것은 콕 집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밥블레스유>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바로 “인생 뭐 있니,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 되는 거야”다. 정말이지 명언이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누구 하나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맘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삶. 음식만으로 3차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위장이 아직 튼튼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도 대화 소재가 떨어지거나 서로 멱살 잡을 필요가 없는, 대화의 ‘티키타카’(마음이 잘 맞는 사람끼리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한 친구가 2명 이상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 만들기보다 어려운 것이 이런 친구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이다. 친구가 여럿일수록 모든 관계가 편안하기 어렵고 그중 ‘난 걔 싫더라, 걔 좀 변한 것 같아’라며 서로 험담하는 친구가 한두명씩 생길 수도 있으며 거기에 금전 관계나 연애 관계, 사소한 말실수나 서로 다른 정치적 소견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 관계란 송은이 언니가 와도 봉합하기 어렵다.

사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 역시 TV 밖에서 얼마나 친하고, 돈독한지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나 저 언니 3년 안 봤잖아”라고 이영자가 툭툭 말하듯이, 이들 역시 서운해서 몇번은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 또다시 붙인 관계를 아끼고 조심하며 지금과 같은 친구 커뮤니티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 속사정을 다 알고, 서로 밟으면 안 되는 지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친구일수록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밥블레스유>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는 삶’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올리브TV

<밥블레스유>의 언니들은 모두 40대 이상이다. 이들은 모두 안정적으로 자기 일을 하고 있으며 주기적인 수입이 있고, 내 취향대로 꾸미고 친구를 초대해 요리를 해줄 수도 있는 집이 있다. 누구 한명이 ‘이번에 우리 어디로 여행 가자’라고 계획을 냈을 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케줄 조정이지 여행 경비가 아니다. 적어도 이들 가운데 돈이 없어서 그 여행에 동참 못 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하다못해 내 현재 일이 불안하거나, 돈이 없으면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 가는 것도 불편한 일이 된다. 친구 한번 만나면 3만원에서 5만원이 깨지기 때문에 나도 생활비를 쪼개 살던 시기에는 친구 만나기를 일부러 피해야 했다. 그렇게 몇번 만남에서 멀어지면 그 관계에서 나만 제외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내가 <밥블레스유>의 멤버가 아니므로 이 모든 것은 방송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한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도 밝혀둔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고 있어서 고민을 토로했을 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고, 누구 한명이 자기보다 앞서 나간다고 해서 시샘하거나 감정이 틀어져 멀어질 염려도 없어 보인다. 적어도 서로 금전적인 채무 관계가 없고, 만났을 때 돈, 직업적으로 부담을 주는 사이도 아니다. 이런 관계가 되기까지는 10년 이상 지켜본 시간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 신뢰에는 무엇보다 ‘서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관계의 철칙이 깔려야 할 것이다. 필요할 때 그 친구를 내가 도울 수 있다는 마음은 있되, 그 친구가 나를 도와주겠지 하는 헛된 기대는 품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일. 마음에 부스러기를 만들지 않고 웃고 즐기며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가만, 오래 지켜봐온 친구들이 주기적으로 모여서 맛있는 걸 먹는 관계. 나는 이미 아주 어릴 때 이런 커뮤니티를 본 적 있다. 부모님의 ‘계모임’. 이들은 한달에 한번 모여서 왁자하게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고 부부끼리도 친한 오래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 계모임은 종내에는 누가 누구를 시샘하며 험담하거나 거나하게 취해 ‘너 왜 내 돈 안 갚아’로 멱살 잡으며 끝났던 기억이 난다. 아, 여럿이 모였을 때 온화하게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기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구나.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갑자기 아플 때 ‘이 친구는 달려와주겠지’ 싶은 사람들을 주변에 만들어두는 것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친구들은 나이 들어 어디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적금 붓듯이 오랫동안 얼굴 보고, 자리를 만들고, 나 또한 그 친구들에게 보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쓰고 보니 역시 <밥블레스유>의 언니들처럼 멋있게, 재밌게, 맛있게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구나. 어쩌면 영자 언니가 말했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는 삶’이란 연말 한국방송, 문화방송 연예대상에서 2관왕 하기보다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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