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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꼰대일지 모른다

취향을 뽐내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조금은 있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huffpost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면 꼭 잔소리를 듣는다. “아니 어떻게 그 쓴 걸 마셔요?”라며 엄청나게 과장하며 놀라는 사람이 꼭 있다. “스타벅스는 원두를 로스팅한 상태로 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향이 새어 나간다”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리아에는 스타벅스가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기가 이탈리아 사람이야 뭐야!

일부 이탈리아 사람이 ‘에스프레소의 원조인 이탈리아에서 스타벅스가 웬 말이냐’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지난해 밀라노에 이탈리아 최초로 스타벅스 매장이 생긴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차라리 멕시코에 타코벨(미국의 멕시코 음식 체인점)을 차려라”라며 비아냥거린 사람들도 꽤 있었다. 타코가 원래는 멕시코 음식이라는 점을 들어 비꼰 것이다.

하지만 밀라노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는 꽤 성황 중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허세의 욕구가 골수에 흐르는 나 역시 남 욕할 처지는 아니다. 그래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참 많다. 오래전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2가 재밌다는 한 선배에게 “전 한국 드라마 안 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

마치 한국 드라마는 전부 수준 미달이라는 듯, 나는 그런 드라마 안 보는 고매한 취향이라도 가진 것 마냥. 그래봤자 집에 가서 <빅뱅 이론>(미국 <시비에스>의 시트콤)이나 보는 주제인데.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5년 후에 너는 한국 드라마 없이는 살 수 없어!’라며 뺨을 세차게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요새는 술을 마시다가도 〈SKY 캐슬〉 본방송을 사수하려고 모범택시라도 잡아타고 집에 들어간다. 대체 5년 전의 난 왜 한국 드라마는 안 본다고 뻐겼을까?

은연중에 다른 사람의 취향을 살짝 깔보는 건 결국 자기 취향을 슬쩍 뽐내는 수법 중 가장 만연한 방법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기자 선배는 영화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유·무언의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빵 박사’이자 <허프포스트>의 기자 중 유일하게 뉴욕의 <미쉐린 가이드> 별 세개 레스토랑에서 식사해본 나름의 미식가 후배는 설렁탕을 먹으러 갈 때마다 자꾸 깍두기 국물을 부어 주려는 동석자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후배가 바로 나에게 “스타벅스는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이 후배가 사석에서 넷플릭스의 <굿 플레이스>가 재미있다고 할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넌 참 그런 걸 좋아하더라”라고 피식 웃는다.

홍상수가 별로라는 영화 기자 선배는 나에게 “어떻게 <스타워즈>가 재미없을 수가 있어?”라고 악을 쓴 적이 있고, 나는 또 꽤 오래전에 그 선배에게 “그래도 한국 감독 중엔 홍상수가 제일 웃기다”라고 우긴 적이 있다. 우리가 숨기고 살아서 그렇지 까놓고 보면 가끔 취향 꼰대가 된다.

직업 때문일까? 안 그런 사람을 찾기가 참 힘들다. 이쯤 되면 모두가 취향의 허세를 부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세상보다는 서로가 상대의 허세를 조금씩 봐주며 사는 세상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취향을 뽐내려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조금은 있으니까. <와이어드>, <슬레이트>,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톰 밴더빌트는 <취향의 탄생>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넷플릭스를 찾았다가 제품 혁신 담당자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설문을 해보면) 꽤 많은 응답자가 국외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답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말로 하는 취향은 허세거나 자랑인 경우가 많다. <호텔 르완다>에 별 5개를 주고 <캡틴 아메리카>에는 별 2개를 주지만, 사실은 훨씬 많은 사람이 <캡틴 아메리카>를 본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저녁에 밥상에 앉아 켄 번스의 <베트남 전쟁> 10부작을 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저 ‘다큐멘터리 취향’이라고 별점으로 뽐내고 싶은 사람이 많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사석에서 나도 몇 번인가 “켄 번스의 <베트남 전쟁> 10부작 봤어? 정말 최고더라”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아직 5편까지밖에 보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에 끝까지 다 본 넷플릭스 영화는 <나 홀로 집에>고, ‘내가 찜해둔 콘텐츠’는 <황당한 외계인 폴>이다. 크리스마스였으니까, 라고 마지막 허세를 부려보고 싶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을 일부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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