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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교수 피습사건을 두고 대한의사협회가 '스카이캐슬'을 언급했다

'스카이캐슬'의 난동은 의료진들에게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 이진우
  • 입력 2019.01.02 14:31
  • 수정 2019.01.02 16:30
ⓒJTBC

2018년의 마지막날, 서울 대형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살해됐다. 가해자 박모씨는 몇달 전 이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환자로, 수개월간 병원을 찾지 않다가 이날 병원에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인 임세원 교수는 박씨가 임 교수를 해치려 하자 간호사를 비롯해 밖에 있는 이들의 안전을 우려해 대피공간으로 피하지 않고 ”빨리 피하라”고 외친 후 칼에 찔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1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3가지 입장이 담겨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사건이 예고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의료인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이 수시로 이루어져왔음에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던 현실을 개탄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책을 마련하라는 촉구가 담겨 있다. 세 번째는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사회적 편견을 강화를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였다.

성명서의 두 번째 입장은 JTBC 드라마 ‘SKY캐슬(스카이캐슬)’을 겨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동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송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한바 있다”고 밝혔다. 

둘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동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송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한바 있다. 이번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송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진료 결과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부추기는 언론의 행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된 장면은 지난 12월 8일 방영된 ‘스카이캐슬’ 8회에 나왔다. 주남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인 강준상(정준호)가 외래진료를 보며 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환자에게 차도를 묻는 강준상의 등 뒤로 ”박준상, 이 돌팔이 새끼야”라는 고함소리가 꽂힌다. 강준상이 뒤를 돌아보자 군복을 입은 남자가 다리를 절면서 강준상에게 다가온다.

강준상이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몇번을 설명드려요”라고 묻는다. 군복을 입은 남자는 ”너한테 수술을 받고 다리 XX이 됐어. 멀쩡한 다리가 마비가 됐다고!”라고 외친다. 강준상은 ”수술동의서 받을 때 신경손상 올 수 있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라고 말하지만 그의 말은 ”백명에 세명 정도는 합병증..”에서 멈춘다. 군복을 입은 남자가 칼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 망쳐놓고 책임을 없다고?”라고 외치는 군복 입은 남자에게 강준상은 ”도의적인 책임은 몰라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니까”라고 항변한다. 그러자 군복 입은 남자는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격전. 

강준상은 허겁지겁 도망을 다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지만, 미리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주남대학병원 원장은 ‘열림’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추격전은 다시 이어진다. 원장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서 칼을 든 환자에게서 쫓기고 있는 강준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찬다. 추격전은 강준상이 여자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가 군복 입은 남자에게 가스총을 발사해 제압한 후에야 끝이 난다. 

의협에선 사건 발생 전에도 이 장면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신문에 따르면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난 28일 ”모방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회 의장 역시 ”환자가 칼로 의사를 위협하는 장면이 방영돼 모방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방송국에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말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여론은 갈리고 있다. ‘스카이캐슬’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에게 공식 사과하라‘는 요구가 주를 이루고 있고, 털 뉴스의 댓글란에서는 ‘드라마가 죄가 없다’는 의견이 공감을 받고 있다. 

의협은 왜 굳이 ‘스카이캐슬’의 장면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을까. 의료계 관계자들에게 해당 장면은 단순히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아니라 자주 목격하고 경험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의료진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포가 드러난다. 진료실에서 의료인을 향한 폭력은 매년 급증했다. 2016년 578건에서 2017년 893건으로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6월까지만도 582건에 달했다. 지난해 실시한 대한응급의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들었고, 63%는 폭행을 경험했으며, 55%는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의료계는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대한신경정신학회 측은”진료실에서 보다 안전하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법 제정 추진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위급상황 시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대피할 수 있는 뒷문 같은 안전장치를 두는 등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한 인력과 시설을 마련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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