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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 11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31일 11시 37분 KST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 이젠 기업이 바뀌어야 할 때다

구제 절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wutwhanfoto via Getty Images
huffpost

드디어 국회에서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직장 갑질 119’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조직적이고 끈질긴 문제 제기가 법제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괴롭힘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되고 금지되었으며, 괴롭힘이 업무상 재해에 추가된 것도 중요한 성과다. 직장 안에서 ‘인간 존엄’의 보장이라는 취지가 법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 정도면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괴롭힘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괴롭힘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여전히 문제다. 개정법에 따르면 괴롭힘 사건 발생 시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그런데 괴롭힘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해서 당장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행 사내 고충처리 절차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괴롭힘 같은 까다로운 문제가 사내에서 제대로 처리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회사 밖에서도 근로감독관, 국가인권위원회, 노동위원회 등이 일정한 구실을 할 수 있겠지만, 괴롭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역량이 축적되어야 하고 입법적 보완도 필요한 상황이다.

구제 절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괴롭힘 같은 새로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고용정책에 괴롭힘 대응 정책을 포함시키고, 관계자 협의체 설치, 실태조사, 홍보와 계도, 가이드라인 제공 등을 통해 기업의 관행 개선을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괴롭힘 예방을 위한 기준 마련 및 지도·지원이 정부의 책무에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결국 최종적인 문제 해결은 기업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처를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사내 규정을 만들고 구제 절차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제에 사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 구성원 각자의 인권이 존중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토론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괴롭힘이 발생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조직이 더 좋은 생산성을 낸다는 것은 이미 ‘경영’의 관점에서도 입증된 바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3%가 최근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한 바 있다고 답했고, 46.5%가 여러 유형의 괴롭힘 행위 목록 중 한 가지 이상의 괴롭힘을 월 1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이 괴롭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 임금, 노동시간 등 계량화될 수 있는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지만,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무환경에 대한 요구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가 경제문제고 법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라면, 후자는 문화적 요소가 강하다. 기업의 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법 하나 만들고 끝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오랜 시간 끈질기게 달려들어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고용되었다는 이유로 군말 없이 온갖 부당한 대우를 용인해야 했던 시대는 끝났다. 고용되었다는 것은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기로 약속한 것이지 존엄한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제정은 직장에서 무엇을 지시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규범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